지역사회 공동보육의 혁신 하나금융 어린이집이 떴다 [0.7의 경고, 함께돌봄2024]
인근 기업 자녀 비율 56% 달해
7시30분부터 21시까지 돌봄 운영
외벌이 부모 자녀 수용도 최대한 노력
교무실 안마의자 마련 교사 복지지원
2층 계단 북카페 부모들도 독서·휴식
털모자와 마스크·목도리·장갑을 두른 2세 어린이들이 종종걸음으로 어린이집에 들어왔다. 잔디가 넓게 깔린 어린이집 주변 산책로는 날씨가 풀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새해를 맞아 찾은 인천 서구 ‘청라 하나금융 공동직장어린이집’은 연면적 3960㎡(1200평)에 300명의 어린이를 돌볼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 어린이집이다. 그러나 규모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지역에서 유일한 상생 공동직장어린이집이라는 데 있다. 하나금융은 자사 직원 자녀 뿐 아니라 주변에 위치한 중소기업 114개 직원의 자녀들도 함께 어린이집을 다닐 수 있도록 문을 열었다. ▶관련기사 4·30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칼럼)
공동직장어린이집은 통상 원아 1명이 등록하면 해당 부모가 소속된 각 회사에서 지원금을 마련해 충당한다. 하지만 청라 하나금융 공동직장어린이집과 협약을 맺은 중소기업은 일체의 운영비를 내지 않는다.
기업 입장에서는 직장어린이집 설립 부담이 줄어들고, 소속 직원은 입학비만 내면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아이를 맡길 수 있다. 야간에는 신청자에 한해 최대 오후 9시까지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석식도 물론 제공된다.
하나금융은 본사와 중소기업에서 오는 원아 비율을 5:5로 맞추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때문에 주변 중소기업 직원들이 먼저 회사에 협약을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 어린이집 관계자는 “주변 직장어린이집이 6개 정도 있는데, 상생 공동직장어린이집은 이곳 뿐이라 원아모집 관련 문의가 갈수록 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현재는 중소기업 직원 자녀 비율이 56%에 달한다.
등원 시간도 따로 정해진 게 없다. 오전 7시 30분부터 정규 돌봄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오전 9시까지 부모들의 출근 시간에 맞춰 아이들도 순차적으로 어린이집에 발을 들인다. 양은희 청라 하나금융 공동직장어린이집 원장은 “원아 부모들이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어 편리하다고 자주 말한다”고 했다.
▶한 아이 키우려면 온 ‘마을’ 필요...“최대한 많이 품어야”=청라 하나금융 공동직장어린이집 현관은 총 두 곳으로, 긴 복도 양쪽 끝에 1~3세 영유아와 4~5세 유치반 입구가 따로 마련돼 있어 가까운 곳으로 오면 된다. ‘종이접기’를 형상화한 건물은 높은 층고와 이리 저리 꺾인 천장이 특징이다. ‘하나의 마을’이라는 콘셉트로,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각 반이 ‘집’이 되고 중간 중간 광장과 같은 곳에는 놀이터가 마련돼 있다. 긴 복도로 연결된 각 반엔 ‘베란다’나 마찬가지인 실외 놀이터와도 곧바로 연결돼 있다. 아이들은 통창으로 이뤄진 실내에서 놀이 수업을 듣다가, 실외 수업이 필요할 경우 언제든 이 문을 열고 나갈 수 있다.
총 18반이 마련돼 있지만 개원 3년차 어린이집이어서, 현재는 200여명의 아이들이 12개 반만 쓰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한 달 동안 접수한 올해 원아 모집에서는 평소보다 더 많은 원아들이 몰려 유아·유치반이 꽉 찼다. 모든 직장어린이집의 원아는 기본 3년이 지나면 추가로 2년을 더해 최대 5년까지 다닐 수 있다. 직장어린이집의 돌봄 혜택을 더 많은 부모들이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모든 직장어린이집은 일반 어린이집처럼 대기 시스템을 쓰지 않는다. 수시로 입소 문의도 받고 있다. 매년 10월 선착순 신청이 이뤄지지만, 조손·한부모 가정, 맞벌이 부부가 최우선이다. 돌봄 서비스 사각지대로 불리우는 외벌이 부모 자녀들도 수용하도록 최대한 노력 중이다.
등원을 마친 아이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통합보육과정에 따른 정규반 수업을 듣는다. 법에서 정한 교사 대 아동 최대 비율은 1:5지만, 청라 하나금융 공동직장어린이집은 이 비율을 평균 수준인 1:3까지 낮춰 쾌적한 교육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한 반에 9명의 아이들이 있다면 정담임 교사 3명과 보조 교사가 배치되는 식이다.
이는 학부모 만족도를 높이고 있기도 하다. 한 원아 부모는 “시설적인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든다”면서 “법 규정대로 원아를 몰아 넣어 교실이 좁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교사 한 명이 돌보는 원아 수가 많지 않다. 꼭 5년 내내 다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직장어린이집의 최대 장점은 원장을 비롯한 모든 교사들이 어린이집의 운영 수익보다는 양질의 교육과 먹거리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금융그룹은 푸르니어린이재단과 협업해 어린이집을 설립했는데, 원장은 재단 소속으로 어린이집 경영에 참여하되 비용 등의 부분은 전적으로 하나금융이 책임진다.
현재 어린이집 원아 1명 당 국가에서 지원하는 보조금은 28만원 수준이다. 하나금융은 정부 보조금의 1.5~2배 수준의 지원금을 추가로 지급하고 있다. 어린이집 관계자는 “여타 어린이집들과는 다르게 남는 예산을 0원으로 처리하는 게 목적”이라며 “필요하면 특기교육은 부모 부담이지만 그 이외에는 모두 어린이집 안에서 지원하고 있다. 교재·교구를 마음껏 살 수 있고, 먹거리도 친환경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도 행복한 어린이집…꾸준한 교육과 처우·복지 보장= 31명 정교사와 8명의 보조교사들은 모두 유아교육과·아동학과·보육학과를 졸업해 경력을 쌓고 투입된 아동 교육 전문가다. 교사들은 매일 같이 지금 이뤄지고 있는 수업 내용이나 프로그램에 대한 회의를 진행하고, 위탁사를 통해 추가 교육도 받는다.
최근 어린이집에서 발생하는 사고가 빈번한 가운데, 청라 하나금융 공동직장어린이집은 교사의 컨디션까지 고려하고 있다. 최대 12시간 동안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들이 지칠 경우 수업의 질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교무실 한켠엔 안마의자도 마련돼 있다.
‘직장인들은 복지를 위해 아이를 직장어린이집에 보내지만, 직장인인 어린이집 교사들은 복지를 누리지 못한다’는 역설적 상황이 되지 않도록, 하나금융은 관리감독 주체로서 아이들 다음으로 교사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또 전기·가스 등 어린이집 전반의 시설 문제가 발생할 경우 즉시 그룹 내 관련 팀과 소통해 해결해준다.
원아 부모와의 소통도 이원화돼있다. 학부모들은 어린이집 뿐 아니라 하나금융 ESG기획팀 어린이집 담당자들과도 수시로 소통하고 있다. 부모 입장에서 어린이집에 대한 궁금증을 곧바로 해소할 수 있고, 문의 창구가 하나금융과 어린이집으로 분산돼 어린이집도 부담을 덜 수 있다.
▶퇴근한 부모도 쉬다가는 어린이집…지역사회에 녹아들다=오후 4시 정규 수업이 끝난 아이들은 간식을 먹고 다시 놀이 수업에 참여한다. 직장어린이집의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의 퇴근시간에 맞춰 하원하기 때문에, 누구 하나 홀로 남아 기다리는 시간은 거의 없다.
야간 돌봄을 받게 되더라도 당직 선생님의 돌봄 아래 저녁 시간을 보낸다. 반대로 가끔 일찍 퇴근한 부모들은 어린이집에 자유롭게 들어와 아이와 시간을 보낸다. 2층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북카페 같은 형태의 계단식 의자가 마련돼 있다. 부모들은 이곳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2층에 위치한 실내 강당에서 잠시 뛰어 놀아도 좋다. 통창으로 시야가 탁 트여 있어 바깥 풍경을 보며 아이와 놀 수 있다.
눈이 오는 날이면 2층 지붕에 마련된 잔디 언덕에서 눈썰매를 탈 수도 있다. 완만해서 위험하지 않고, 자연 잔디라 다칠 걱정도 없다.
이는 지역사회와 어린이집을 적극 연결하자는 취지다. 등하원 시간에 공간을 공유해 소통하는 곳으로 이어나가겠다는 것이다.
어린이·교사·부모와 상생하는 청라 하나금융 공동직장어린이집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원칙상 원아 모집이 불가능한 인근 관공서와 학교 교직원까지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더 많은 어린이집의 환경이 개선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혜현 기자
moo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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