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만에 이 곡을?...클래식 기타 박규희 “풍부한 음향으로 듣는 추억의 음악 기대” [인터뷰]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4. 1. 3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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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 인터뷰
토요명화 시그널송으로도 유명한
고난도 기교 ‘아랑후에스 협주곡’
2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협연
다음달 2일 협연 무대를 앞두고 서울 동작구 뮤직앤아트컴퍼니 스튜디오에서 기자와 만나 아랑후에스 협주곡을 연주해 보이는 기타리스트 박규희. 사진제공=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갑작스러운 ‘대타’이지만 오히려 좋다. 만 3세 때부터 기타를 친 신동이자, 2008년 벨기에 프렝탕 기타 콩쿠르 최초 아시아·여성 우승 등 유명 국제 대회를 휩쓴 우리나라 대표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39)를 국내 무대에서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박규희는 다음달 2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정기공연에서 당초 기타리스트 밀로시 카라다글리치가 내한해 연주하기로 했던 아랑후에스 기타 협주곡을 그대로 선보인다. 카라다글리치의 건강상 문제로, 섭외 연락을 받은 건 무대에 오르기 불과 5일 전. 박규희는 30일 매일경제와 만나 “지난해 11월 일본에서 공연하는 등 30여 차례 연주해본 곡”이라면서도 “워낙 어려운 곡이라 (연주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밤낮으로 연습하고 있다. 국립심포니의 풍부한 음향에 두께감 있는 사운드가 어떻게 나올지 저도 궁금하다”고 웃었다.

클래식 기타의 저변이 옅은 우리나라에선 협연이 많지 않았고, 주로 일본에서 연주 기회가 많았다. 국립심포니와의 협연도 이번이 처음이다. 1년 전 공연 기획 단계에서 섭외 요청을 받았다가, 해외 기타리스트의 내한으로 출연이 불발된 뒷이야기도 털어놨다. 박규희는 “돌고 돌아 제게 온 기회라 인연이라는 걸 느낀다”며 예정됐던 일정을 미루고 무대에 선다.

30일 서울 동작구 뮤직앤아트컴퍼니 스튜디오에서 기자와 만나 인터뷰 질문에 답하는 기타리스트 박규희. 사진제공=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이 곡은 시력을 잃었던 작곡가 로드리고가 스페인 마드리드 남부의 아랑후에스 궁전 정원을 떠올리며 1939년에 지었다. 박규희는 “첫 번째 코드를 연주할 때부터 스페인의 밝고 청량한 느낌을 표현하려고 한다”며 “로드리고도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바람부터 느꼈다는데, 정원에서 맑은 기운을 느꼈을 것 같다”고 말했다.

2악장은 주말 저녁 TV에서 흘러나오던 KBS 영화 방송 ‘토요명화’의 시그널송으로도 익숙한 애잔한 선율이다. 1980년부터 2007년까지 방영된 프로그램이니, 저마다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는 곡이다. 가장 많이 연주되는 기타 협주곡이기도 해서, 박규희 역시 이 곡에는 따뜻한 추억이나 영광스러운 순간이 깃들어있다고 했다.

다만 곡이 요구하는 초고난도 기교 탓에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의 뼈아픈 기억도 있다. 데뷔 직후였던 2011년 일본 교토교향악단과 협연했을 땐 이 곡의 연주 경험도, 대규모 협연 경험도 적었던 터라 더 힘들었다고. “너무 긴장해서 악단의 연주도 안 들렸고, 전혀 감을 못 잡아 리허설을 망쳤어요. 인생을 통틀어 가장 창피하고 우울했죠. 그 후 수십번 연주하며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책임감과 부담감이 따르는 곡입니다.”

통기타와 다른 클래식 기타만의 매력
솔로 연주도 가능한 엄연한 클래식 악기
“따뜻·편안한 음색…韓서도 사랑받길”
다음달 2일 협연 무대를 앞두고 서울 동작구 뮤직앤아트컴퍼니 스튜디오에서 기자와 만나 아랑후에스 협주곡을 연주해 보이는 기타리스트 박규희. 사진제공=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사실 곡뿐 아니라 클래식 기타는 제대로 코드를 잡기조차 쉽지 않은 악기다. 생김새는 통기타와 유사하지만 쇠 줄이 아닌 나일론 줄을 써서 소리도, 연주 특성도 다르다. 대중가수와 성악가의 차이에 비견될 정도다. 왼발을 발판에 딛고 몸으로 기타를 감싸 안고 연주한다. 활·피크 같은 도구 없이 현을 튕기는 오른손 손톱, 코드를 잡는 왼손 손가락이 악기의 일부다. 손가락 굵기, 손톱 길이, 습도 등 사소한 요소들도 소리에 직결된다. 박규희는 유려한 트레몰로(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여 음을 떨리게 하는 주법)의 귀재로 불리지만 그마저도 “갑자기 치면 조절하기 어렵고, 몇 시간은 손을 풀어줘야 한다”고 했다.

그가 이렇게까지 기타를 품에 안고 놓지 않는 건 “공기처럼 있어 주는 매력” 때문이다. “기타 선율은 소박하고 듣기 편해서 계속 들어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잠시 일본에 체류했을 때 어머니의 취미 생활로 가게 된 기타 학원에서 우연히 클래식 기타에 빠졌고, 말을 배우기도 전에 주법부터 배웠다. 그에게 기타는 당연한 일상이자 떼어낼 수 없는 짝이다.

박규희는 클래식 기타의 매력을 전파하는 데 관심이 많다. 국내에선 아직 통기타에 비해 인지도가 낮고 클래식계 주류로도 인식되지 않지만, 기타는 가늘고 길게 인류와 존재를 함께 해온 악기다. 그는 “한국에서 기타의 역사가 깊지 않다 보니 교육에도 시행착오가 많았는데, 좋은 소리 내는 법을 탄탄하게 가르쳐주는 교본을 만들고 싶다”며 “꾸준히 연주하며 기타의 오리지널 레퍼토리와 무한한 사운드의 가능성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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