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이롭게’ 롯데가 만든 친환경 미래 선박

2024. 1. 3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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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케미칼 사내벤처 분사 1호 ‘에코마린’
HDPE 기반 신소재 개발·적용 ‘가능성호’
친환경 소재사업 시너지 ‘ESG 경영’ 동행
에코마린이 개발한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기반의 친환경 선박용 소재가 적용된 ‘가능성(Possibility)호’가 지난 25일 부산 해운대 인근의 우동항에 정박돼 있다. 부산=김은희 기자
신동빈(맨오른쪽)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2022년 5월 롯데케미칼의 친환경 프로젝트 전시회에서 ‘가능성(Possibility)호’에 올라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롯데케미칼 제공]

지난 25일 찾은 부산 해운대 인근의 우동항. 어선들 사이로 검은색 배 한 척이 눈에 띄었다. 크기가 얼추 두 배쯤 큰 선박에는 숫자 2를 품은 세모꼴의 재활용 표시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다.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으로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HDPE로 만든 배는 훗날 버려지더라도 재활용 소재로 다시 태어난다. 재활용이 어려운 데다 폐선 비용까지 비싸 방치되기 일쑤인 보통 소형 어선과는 탄생부터 소멸까지 다르다. 친환경 선박의 가능성을 보여준 배, 바로 롯데케미칼의 사내벤처 1호 분사 기업인 에코마린이 만든 ‘가능성(Possibility)호’의 이야기다.

이날 가능성호 선실에서 에코마린의 공동 창립자인 박덕훈 대표와 맹광희·홍문현 이사를 만났다.

박 대표는 “보통 소형선은 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FRP)으로 만드는데 제작 과정에서 인체에 해로운 분진이 발생하고 방수용 페인트가 녹으면서 바다를 더럽히며 재활용도 안 된다”면서 “폴리에틸렌(PE)으로 배를 만들면 환경에 큰 도움이 될 것이란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FRP를 대체할 소재에 대한 니즈를 파악하고 재활용 가능한 저탄소 선박용 자재 시장을 개척한 것이다.

박 대표의 구상은 롯데케미칼의 사내벤처 ‘라이콘(LICORN)’ 1기 아이템으로 채택됐다. 다른 아이디어로 1기 최종 관문까지 올랐던 맹 이사, 홍 이사와 팀 에코마린을 꾸려 2년여간 사업화에 매진했다.

에코마린은 HDPE 기반의 친환경 선박용 신소재인 ‘에버마린’을 자체 개발했다. 소재 기술력을 증명하기 위해 선박 설계·건조 기업 대해선박기술과 손잡고 에버마린을 적용한 배도 직접 제작해 띄웠다.

친환경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에버마린의 강점은 단순히 환경에 이롭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가능성호는 동일 크기의 FRP 선박 대비 30~40% 가벼워 속도가 빠르고 연비가 좋다. 물에 뜨는 성질이 있어 적재능력이 뛰어나고 소재가 부드럽다 보니 엔진의 진동이나 소음을 흡수해 승선감도 좋은 편이다. 표면이 미끄러운 덕에 선체 하단에 따개비가 붙지 않아 페인트칠하지 않아도 되고 내충격성이 좋아 갯바위 주정차에도 파손 위험이 적다.

지난해 9월 독립법인으로 분사한 에코마린은 현재 다양한 파트너사와 소재 판매 및 기술 교류를 맺고 활발하게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미 해군에는 HDPE 선박 3척을 납품했고 해경에 공급할 2척도 조만간 제작에 들어간다. 올해에는 어선도 3척 정도 만들려고 추진 중이다.

에코마린은 분사 직후인 2023년 4분기 약 1억5000만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올해 기대 매출도 5억원 정도다. 지난달에는 한 액셀러레이터(초기 투자사)로부터 투자금도 유치했다. 분사 당시 롯데케미칼로부터 투자받은 5억원까지 하면 시드 단계에서의 자금은 충분하다고 에코마린은 보고 있다.

에코마린은 올해를 본격적인 사업 기반 강화의 해로 삼고 매출 확대, 직원 채용, IP(지식재산권) 확보에 주력하며 시리즈A 투자를 준비할 예정이다.

에코마린은 이제 막 발을 뗀 기업이지만 롯데케미칼의 지원이 없었다면 첫발을 내딛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박 대표는 단언했다. 그는 “사내벤처로는 실패해도 다시 회사에 복귀할 수 있다 보니 도전해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사업화 여부를 결정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길이 16m, 높이 4m, 무게 4t에 달하는 선박을 제작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린 것도 든든한 제도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롯데케미칼로서도 에코마린의 선전은 반가운 일이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사내 문화 형성과 신사업 발굴을 위해 도입한 사내벤처 제도가 빛을 보고 있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향후 롯데케미칼과 에코마린의 친환경 소재 사업 시너지도 기대되는 대목이다. 에코마린은 2030년 내 30% 재생 원료 사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재활용 기반의 소재 확대 등을 통해 롯데케미칼과 시너지를 내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동행한다는 방침이다.

에코마린은 2022년 5월 롯데월드타워 아레나 광장에서 열린 롯데케미칼의 친환경 프로젝트 전시회 ‘에브리 스텝 포 그린’(Every Step for Green)에 참여했는데 이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가능성호에 직접 올라타 친환경 선박 소재에 대해 관심 있게 살펴보기도 했다.

신 회장은 당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진정성 있는 ESG 경영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 회장이 2021년 그룹의 새 슬로건으로 ‘오늘을 새롭게, 내일을 이롭게’를 제시하며 새로운 미래를 제시했듯 에코마린은 ‘선박을 새롭게, 바다를 이롭게’를 내세우고 있다.

박 대표는 “플라스틱도 잘 회수하고 자원화하면 어느 소재 못지않게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친환경 소재”라며 “레저보트 글로벌 시장으로 일본, 나아가 미국에 진출하고 장기적으로는 해상풍력, 양식장 등 모든 해양 구조물을 친환경 플라스틱으로 대체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부산=김은희 기자

eh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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