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과 청탁, 그 경계점

김양희 기자 2024. 1. 3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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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기아(KIA) 타이거즈의 김종국 전 감독(왼쪽)과 장정석 전 단장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을 받기 위해 30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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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한창 비수도권으로 취재하러 다닐 때다. 야구 경기가 끝나 감독, 코치 등과 술자리가 있을 때면 간혹 낯선 이가 함께했다. 그는 “이 지역 아는 형님”이라고 소개됐다. ‘아는 형님’이 비단 술값, 밥값만 내는 것은 아니었다. 감독, 코치, 선수들과 골프 등을 치며 가욋돈, 소위 용돈을 주기도 한다고 했다. 야구인을 상대로 한 지역 경제인의 밀착형 후원은 보통 이렇게 이뤄진다고 보면 된다. ‘ㅇㅇㅇ 감독 후원회’라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모임도 있다. 야구인과의 친밀함 과시만큼 지역 사회에서 통하는 것도 없다.

기아(KIA) 타이거즈 구단은 김종국 감독의 금품 수수 의혹이 불거졌을 때(28일) 곧바로 계약 해지를 하지 않고 직무 정지 조처를 내렸다. ‘무죄 추정의 원칙’도 있었으나 감독이라는 위치가 구단 후원 업체를 선정할 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가 아니어서다. 구장 내 입점 등은 보통 야구단 마케팅 부서 등에서 처리한다. 김종국 감독이 처음부터 순순히 “돈은 받았으나 대가성은 없었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배임수재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배임수재)을 받고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는 범죄’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김 감독의 혐의가 배임수재라고 나왔을 때 고개를 갸웃한 야구인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한 야구인은 “비수도권 구단의 경우 광고가 잘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구단이 ‘갑’이 아닌 ‘을’의 위치에 있다. 광고 청탁이라는 게 있을 수 있나”라며 의아해했다.

기아 구단은 김 감독이 받은 액수가 1억원 이상이라는 얘기를 듣고 적잖이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검찰의 구속 영장 청구가 이뤄지자 ‘품위손상’을 이유로 곧바로 김 감독을 경질(29일)했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은 30일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영장 기각 사유에 대해 “금품수수 시기 이전의 구단에 대한 광고 후원 실태와 후원 업체의 광고 후원 내역·시기 등 일련의 후원 과정 및 피의자들의 관여 행위 등을 살펴볼 때 수수 금품이 부정한 청탁의 대가인지 아닌지에 관해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종국 전 감독의 구속 여부와 상관없이 기아 선수단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스프링캠프(호주 캔버라) 출국을 코앞에 두고 사령탑이 구속 영장까지 청구되는 개인 비위 사유로 경질됐으니 오죽할까. 지난해에도 시즌 개막 직전에 장정석 전 단장이 박동원(현 LG 트윈스)에게 계약에 따른 뒷돈을 요구한 것이 알려져 곤욕을 치렀던 기아였다. 그 파장의 여파가 올해까지 이어졌고 감독 자리는 결국 공석이 됐다.

선수단을 현장에서 이끄는 수장 해임에 따른 충격파는 단장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그나마 시즌 개막 전이라 다행이지만 새로 선임되는 감독의 야구에 빠른 시일 내 익숙해져야 하는 숙제가 던져졌다. 전력 구성상 기아는 올해 엘지, 케이티 위즈와 함께 3강으로 꼽히는 팀이다.

후원과 청탁의 경계는 모호하다. 양성적, 발전적 후원 관계도 있지만 후원 관계가 청탁 관계로 변질하는 사례도 더러 있다. 2012년과 2016년 프로야구판을 흔든 경기(승부)조작 때 문제의 시발점이 된 이도 ‘아는 형님’이었다. 제한적이고 폐쇄적인 인간관계에서 도덕적 판단의 거름막 없이 사람, 그리고 돈의 유혹에 넘어갈 확률은 높아진다.

프로야구는 비약적으로 ‘돈’이 되는 프로 스포츠가 되고 있다. 에프에이(FA) 선수들의 몸값은 100억원대를 넘고 있고, 유·무선(뉴미디어) 중계권은 올해 초 티빙에 연간 400억원가량에 팔렸다. 5년 전보다 두 배 가까이 오른 가격이다. 4년 전 연 평균 540억원 규모(2020년~2023년 총액 2160억원)로 계약했던 지상파 중계권은 아직 협상 중인데, 두 플랫폼을 합하면 프로야구 중계권료는 연 평균 1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프로야구는 지난해 객단가(티켓 1장당 평균가격) 또한 1만5000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양적인 성장과 더불어 질적인 성장을 이뤄냈는지는 고민할 부분이다. 질적 성장이 비단 야구 경기력 향상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야구인의 의식 성장도 포함된다. 광고 후원은 아니더라도 친분을 앞세운 프로 입단 청탁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서 하는 말이다. 존중은 받지만 존경받는 어른은 적은 시대, 행동 하나하나를 곱씹어 볼 때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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