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벌대며 죽고싶지 않다

한겨레 2024. 1. 31.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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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재발하면 죽습니다.”

의사가 아니라 관옥 선생님에게 듣는다. 할아버지와 마음공부시간이다. 오늘의 주제는 ‘일심(一心).’ 선생님 글씨 중에 지안이가 이 말을 그대로 따라 썼다. 그걸 족자로 만들어 걸어둔 걸 보시고 선생님의 이야기가 풀어진다.

강원룡 목사님에게 거짓말해서 용서받은 이야기, 군대 때 아팠던 이야기 등 한바탕 펼쳐지는 이야기마당에 아이들도 얼굴을 바싹 기울여 재미있게 듣는다. 나 또한 다시 들어도 재미나다. 그러던 중 ‘‘재발하면 죽습니다.’’는 말씀에 깜짝 놀란다. 오랜만이다.

마흔 이후로 그런 생각에서 참으로 멀리 떨어져 살았구나 하니 엄청 반갑고 고맙다. 결혼하고 곧바로 아프기 시작해서 근 7~8년 병원을 들락달락 했다. 병명을 굳이 붙이자면 ‘선천성···’ 태어날 때부터 뭔가 이상이 있었을 거란 추측으로 의사는 결론을 지었다. 그래서 완치가 아닌 앞으로도 계속 이런 증상이 있을 거란 여지를 남기고 퇴원하곤 했다.

비뇨기과는 신장으로 가는 혈관이 5번이나 터져 막았으니 다시 한번 터지면 큰 수술이 될 거라고, 그 결과는 알 수가 없다 한다. 산부인과는 첫 번째 아이는 자신 있게 살렸지만, 두 번째 임신은 부모가 원하면 시도는 해보지만 굳이 권하지는 않겠다 한다. 내과는 당시로서는 모든 처방이 다 무리이고 어쩌면 치명적이라며 아예 처음부터 시도조차 못하게 고개를 흔든다. 세 곳 의사 모두 한 입처럼 “재발하면 죽습니다.”를 강력하게 말한다.

오랜 병원생활을 마치고 퇴원해서도 나는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아이도 시댁에서 친정에서 번갈아 가며 돌보았고 나는 가만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느껴지면 그야말로 모든 게 ‘STOP’이다.

‘STOP!’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식은땀이 흐른다. 몸이 벌벌 떨린다. ‘재발하면 죽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머릿속 가득 이 한마디만 커다랗게 떠오르면서 다른 생각은 없어진다. 마음속으로는 벌써 엉엉 운다. 실제로도 많이 울었다. 숨죽이며 몸이 다시 정상을 찾을 때까지 두려움 가득 안고 시간을 보냈다. 반복이었다. 그러면서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이다. 차를 타고 가다가 또다시 두통과 구토가 올라온다. 두말할 것 없이 차를 돌려 집으로 향한다. 화장실을 들락달락 몇 차례 반복하다가 지쳐 방에 가만 눕는다. 감은 두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그때 생각하나가 불쑥 들어온다. “지겹지도 않냐?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죽는 건 매한가지인데 이렇게 벌벌 떨며 죽고 싶냐?” 호통이기도 하고 꾸짖음 같기도 한 말이 속에서 올라온다. 사실이 그랬다. 나도 이런 반복이 힘들고 지겨웠다. 차라리 아픔이 와서 그 자리에서 죽는 것도 괜찮을 일이란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그런데 매번 죽지 않을 만큼 아프고 고통스럽고 견뎌졌다. 내가 일부러 견딘 건 아니다.

이런 간당간당한 목숨줄과 생활에 나도 지치고 고단했다. 나만 힘들고 고통받는 게 아니라 아이와 남편 다른 가족들에게도 참으로 못할 짓이란 생각도 많았다. 하지만 아픈 몸을 붙잡고 실랑이 할 힘이 내겐 없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어오면서 정말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죽더라도 벌벌대며 죽고 싶지는 않아.” 절로 독한 마음이 먹어졌다. 죽고 싶지 않다가 아니라 이렇게 무언가에 쫓겨 다니듯 두려움에 살고 싶지 않았다. 이 한 생각을 품은 날부터 나는 ‘언제 어떻게 죽어도 괜찮다. 그때가 내 죽을 때라면 그렇게 죽겠다.’라는 새로운 생각을 품게 되었다.

어려움은 있었다. 생각은 그러하지만 습관처럼 오는 통증을 무시하고 생각만으로 살아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때가 내가 죽을 때라면 죽겠습니다!’ 그랬다. 다행인지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한 달 한 달 가슴 졸이다가 어느 때부터는 한 해, 두 해, 세 해···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그러다 아주 오랜만에 ‘재발하면 죽습니다’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의사가 아니라서 천만다행이고, 선생님 이야기마당 속에서 듣게 된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눈물이 날 뻔하다. 다행히 눈물은 흘리지 않았고 속으로 웃는다. 혼자 속으로 운 세월이 떠올라지니 안쓰럽고 미안하고··· 그래 그것도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런 세월이 있었으니 드디어는 한 생각 독하게 올라온 것이리라. 그런 한 생각 붙잡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 내가 있고.

언젠가 꿈을 꾸었다. 꿈에 정황상으로 내가 곧 죽을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런데 내가 누군가에게 말을 한다. “아니 아직 딸에게 이런 말을 못 했고, 남편에게도 뭔가 할 말이 있고···” 그런데 그 전할 말들이 아주 사소한 것이다. 딸에게는 밥을 차려놨으니 먹으라는 것이고, 남편에게는 어제 무슨 일을 못 마쳤는데 그걸 하라는 것이다. 꿈에서 나오며 드는 생각이 ‘내가 아직 살고 싶은 맘이 가득하구나.’ 가슴이 저려 왔다. 무척 간절했나 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닐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서 지금 죽어도 괜찮아.” 뭐 이러고 허풍 아닌 허풍을 떨고 다녔다. 물론 진심도 그 말에 있다. 하지만 본마음은 간절히 살고 싶었나 보다. 그 꿈을 꾼 이후로는 허풍도 떨지 않고 그렇다고 살고 싶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입이 자연스럽게 다물어진 것이다. 사는 일도 죽는 일도 내가 알 수 없고, 할 수 없는 일이기에 할 말이 없어진 것이다. ‘이것은 이것이다.’ 혼자 정하고, 혼자 말하고, 혼자 떠들다, 혼자 조용해진 것이다.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다. 늘 넘어지고 일어서고 할 뿐이다.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조용히 말해준다.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글 향원 (순천사랑어린배움터 공동체원)

*이 시리즈는 전남 순천사랑어린배움터 촌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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