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낮은 논문 서로 인용... 수학계 ‘인용 카르텔’ 순위 조작 걸렸다
집단적 인용 조작으로 영향력 있는 수학자가 목록에서 제외돼
일부 수학자들이 논문 인용 횟수를 부풀려 본인, 또는 기관의 연구 성과 순위를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일부 수학자 집단이 자기들의 연구 성과를 반복적으로 참조하는, 질 낮은 논문을 대량 생산해 인용 횟수를 인위적으로 늘려왔다고 30일(현지 시각) 밝혔다. 이들은 심지어 수학과가 없음에도 미국 스탠퍼드대나 프린스턴대보다 수학 분야에서 인용 횟수가 훨씬 더 많은 것으로 기록됐다.
이러한 ‘인용 카르텔’은 대학 순위를 인위적으로 높이는 그릇된 방법이다. 카메론 네일런(Cameron Neylon) 호주 커틴대 연구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인용 횟수) 순위 변동으로 인해 대학은 수천만 달러의 수익이 발생할 수 있다”며 “연구자들이 자신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규칙을 어기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인용 카르텔은 특히 수학 분야에서 잘 일어난다. 이 때문에 논문 인용 횟수 분석업체인 클래리베이트는 지난해 11월, ‘영향력 있는 연구자 목록’에서 아예 수학 분야 전체를 제외했다.
도밍고 도캄포(Domingo Docampo) 스페인 비고대 수학과 교수는 지난 몇 년 간 학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수학자들이 클래리베이트의 영향력 있는 연구자 목록에 상당수 올라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덜 알려진 수학자들이 아무도 읽지 않는 저널에 논문을 싣고, 아무도 읽지 않을 논문을 인용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심지어 수학자들이 아무도 모르는 기관 소속이었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난 15년 동안 클래리베이트 데이터를 조사해 어느 대학이 가장 많이 인용되는 논문을 출판하고 누가 이것을 인용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2008~2010년 동안 인용 횟수가 상위 1% 안에 드는 논문은 미국 UCLA와 프린스턴대 등 수학에 저명한 기관에서 낸 논문이 27~28편으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2021~2023년에는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의 거의 알려지지 않은 기관들이 상위를 차지했다. 이 기간 동안 대만에 있는 중국의과대는 인용 횟수가 상위인 논문이 95편이나 돼 1위를 차지했다. 반면 UCLA에서 낸 논문 중에서 인용률이 높은 것은 단 하나였다.
도캄포 교수는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인용 카르텔이 이뤄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인용 횟수가 상위권인 논문을 인용한 사람이 주로 이 논문을 쓴 본인이거나, 그 사람과 같은 기관에 소속돼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예를 들어 2021~2023년 동안 중국의과대와 사우디아라비아의 킹압둘아지즈대는 인용도가 상위권인 논문을 66개나 출판했고, 각각 인용도가 수백 건이나 됐다. 이들 논문은 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저널, 즉 약탈 저널에 정기적으로 출판됐다. 도캄포 교수는 “이 때문에 비정상적인 논문 인용이 더욱 쉬웠을 것”이라고 짚었다.
헬게 홀덴(Helge Holden) 아벨상 위원회장은 “과학적 수준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 방식으로 인위적으로 인용 횟수를 늘리는 행위는 비난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첸 위에셩(Chen Yueh-Sheng ) 중국의과대 사무총장은 사이언스를 통해 “우리 대학은 이런 관행에 참여하지 않았다”며 “특정한 논문을 일부러 인용하는 ‘표적 인용’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고 인용 횟수 조작에 관여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응용수학 같은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유명한 연구자들이 중국과학대와 학제간 협력을 했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킹압둘아지즈대 관계자는 사이언스의 질문에 응답하지 않았다.
클래리베이트 관계자는 최근 영향력 있는 연구자 목록에서 수학 분야를 빼버린 결정에 대해 “특히 최근에 나오는 논문 중에서 인용 조작, 표적 인용이 이뤄져 논문의 순위와 보상을 최적화하는 경우가 있다”며 “평균 출판률과 인용률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이런 수치가 조금만 증가해도 전체 분야를 분석한 결과가 왜곡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학계에서는 인용 조작이 비단 수학계에서만의 일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다른 과학 분야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지만 눈에 띄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다. 국제수학연맹에서는 클래리베이트의 결정 때문에 인용 카르텔이 수학 분야에서만 일어난다는 편견이 생길 수 있다고 걱정했다. 일카 아그리콜라(Ilka Agricola) 국제수학연맹 전자정보및통신위원회장은 “수학 외의 다른 분야에서 일어나는 인용 카르텔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클래리베이트 관계자는 사이언스를 통해 “과학 전 분야에서 인용 카르텔이 일어나고 있는지 분석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의 조언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학자들은 단순히 논문 인용 횟수만으로 연구 성과의 과학적인 품질을 따지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도캄포 교수는 인용 저널과 기관의 질에 따라 논문 인용 횟수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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