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 시위에 출퇴근길 '몸살'인데 구속영장 왜 기각됐나[체크리스트]
법원 "도주 우려 없다…탑승 제지, 정당한 업무 집행? 다툼 여지"
[편집자주]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거나 쟁점이 되는 예민한 현안을 점검하는 고정물입니다. 확인·점검 사항 목록인 '체크리스트'를 만들 듯, 우리 사회의 과제들을 꼼꼼히 살펴보겠습니다.
(서울=뉴스1) 이기범 기자 = 최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의 구속 영장이 기각됐습니다. "증거인멸 내지 도망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전장연 시위로 인해 지하철 안에서 지각하지 않을까 애를 태웠던 이들을 중심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시민 불편이 동반되는 시위 방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는 지점입니다.
법조계와 시민사회에서는 경찰의 무리하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경찰은 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왜 기각했을까요.
◇ 경찰 "출석 불응·인권 침해 주장 우려"…법조계 "무리한 주장"
유진우 전장연 활동가가 체포된 건 지난 22일 오전 8시30분쯤.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전장연 출근길 선전전 및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참사 23주기 시위를 하던 도중이었습니다. 당시 서울 혜화경찰서는 퇴거불응·업무방해·철도안전법 위반 혐의로 유씨를 현행범 체포했고, 다음날인 23일 유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해당 구속영장에는 "피의자는 전장연이라는 특수성이 있는 단체 안에 귀속 및 비호를 받아, 출석요구에 불응하고 소재를 은폐할 우려가 상당하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도주 우려가 있기 때문에 구속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또 유씨가 출석에 불응할 경우를 가정해 "휠체어 장애인인 피의자의 신병을 강제 처분하는 과정에서 전장연 또는 인권단체로부터 인권침해 주장이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아 법 집행기관에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덧붙였습니다.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가 서울 경찰청 산하 31개 경찰서에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하라고 요구하며 불출석한 내용을 언급하며 유씨도 '장애인 시설 보강' 등을 사유로 출석에 불응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기재했습니다.
또한 △최근 5년간 주소지를 4회 이동한 점 △지난해 7월 체포통지서 전달 과정에서 유씨가 3일간 우편물을 정상적으로 수취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지적했습니다. 유씨가 주소지에 살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다른 장소에 숨어 법 집행이 어려울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에 대해 법원은 "피의자에게 증거인멸 내지 도망의 우려가 없다"며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지난 24일 영장을 기각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경찰이 무리한 주장을 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박한희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는 "도주 우려는 출석에 응하지 않고 딴 데로 가는 건데, 장애인 시설 문제로 조사를 못 받는 걸 갖고 도주할 거로 보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경찰의 주거 부정 주장에 대해서도 "법원 등기 우편은 당일 집에 없으면 못 받는 거고, (유씨가) 주소지가 없는 것도 아니다"며 "지난번에 구속영장을 신청했을 때도 이사를 자주 한다고 주거 불안정을 얘기했는데 이는 무리한 주장"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양태정 법무법인 광야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방어권 보장 측면에서 불구속 수사가 원칙인데, 법원에서는 도주 우려가 적다고 본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현행 인권보호수사규칙에는 "피의자에 대한 수사는 불구속 상태에서 함을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습니다. 또 "도망이나 증거인멸의 염려 등 구속 사유가 있는지 신중하게 판단하고,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경찰은 지난해 7월에도 유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기각된 바 있습니다. 당시 구속영장 신청서에는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약자 프레임을 이용", "용납할 수 없는 공권력에 대한 도전", "자신의 이권만을 추종하는 등 이기적인 행위" 등의 표현이 담겨 논란이 됐습니다.
◇ 탑승 제지 정당한 업무 집행?…법원 "다툼의 여지 있어"
법원은 유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탑승 제지가 정당한 업무 집행인지 여부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밝힌 대목도 주목할 부분입니다.
전장연의 지하철 승차를 막아온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의 행정력 집행이 적법한지 따져봐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그간 서울교통공사는 철도안전법 제48조 '철도 보호 및 질서유지를 위한 금지행위', 제50조 '퇴거 조치' 등을 근거로 전장연 시위를 막아왔습니다. 경찰은 이 같은 서울교통공사의 퇴거 조치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퇴거불응 및 업무방해 등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박 변호사는 "철도안전법은 소란 행위를 규제하는데 철도 보호나 질서유지를 해치는 행위에 해당해야 하고, 철도 운행에 방해되거나 승객 탑승을 막을 경우에 적용된다"며 "최근 전장연이 진행한 기자 회견이나 선전전은 통로에서 진행한 건데 철도안전법을 근거로 제지하는 건 무리"라고 짚었습니다.
양 변호사는 "불법성이 있다면 전장연이 책임을 져야 하지만 최근 침묵시위까지 막는 건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서울교통공사가 집회 참가자로 보인다며 역사 출입을 막거나 통행로를 봉쇄하고, 침묵시위까지 강제 퇴거하는 행위에 무리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지하철 역사 안에서 시위가 벌어지면 통행에 지장을 주고 출퇴근길 시민들 입장에서는 불편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법원은 영장 기각을 통해 헌법에 보장된 집회 시위의 자유 또한 중요한 가치라는 점을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K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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