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판 문익점이 '아마존의 황금기'를 훔쳤다
아마존강 상류 타바팅가에서 중간 기점 도시 마나우스까지는 자그마치 1,900km를 가야 한다. 이 길을 정기 여객선이 운항하는데 4박 5일이나 걸린다. 반대로 강을 거슬러 올라오면 6일이 소요된다. '빨리빨리'의 민족 입장에서는 영 마뜩찮은 교통수단이겠지만 아마존 지역 주민들에게는 이 여객선이 매우 소중하고 중요하다. 모든 생필품이 바로 이 배로 운반되기 때문이다. 배는 일주일 중 화, 수, 금, 토요일에만 다닌다. 따라서 미리 배 시간을 잘 알아둬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타바팅가 브라질 해군부두에 붙어 있는 여객터미널에 가서 표를 미리 샀다. 지역 주민들이 배를 타는 방법은 매우 이색적이다. 바로 해먹이다. 배에 마련된 숙소(캐빈)에서 자는 방법도 있지만 값이 비싸다. 또 아마존의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일반 주민들처럼 해먹에서 자기 위해 시장에서 2만 원 주고 해먹을 구입했다. 다소 불편하지만 여행에 있어서 생생한 현지를 체험하는 것에 높은 가치를 두고 있다면 꼭 시도해 보길 바란다.
매표원은 식당에서 배식을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줬다. 그래서 개인 밥그릇과 포크도 준비했다. 물론 마나우스까지 한 번에 가지 않고 중간 중간에 기항하지만 거기서 음식을 사기는 힘드니 미리 어느 정도 간식을 준비해 두는 것이 좋다.
배에선 마실 수 있는 시원한 물을 항시 제공한다. 또 강물을 이용해 물이 콸콸 쏟아지는 샤워도 할 수 있어 해먹 외에는 큰 불편함이 없다. 하루 세 끼 제공되는 식사도 제법 괜찮다. 이 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아마존 유역 현지 주민들이고 친절하다. 그래서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고 사귈 수 있어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다. 외국인은 소수지만 그래도 거부감 없이 잘 섞여 금방 친해진다. 특히 여기 오는 여행객은 대부분 여행을 많이 다닌 베테랑이라 서로 여행 경험을 얘기하며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4박 5일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예전에 중국 양쯔강 충칭에서 삼협을 거쳐 우한까지, 또 이집트 나일강에선 아스완에서 룩소르까지 배로 여행을 한 적 있다. 두 나라의 강들도 대단했지만 강의 수량과 폭이 아마존은 정말 비교 자체가 실례일 정도로 어마무시하다. 앞선 두 강에서 올려봤던 것보다 한층 더 넓은 하늘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구름의 향연이 펼쳐진다. 건기지만 구름의 양이 어마어마하고 구름 모양도 기묘하다. 또 수시로 번개가 친다. 번쩍이는 불빛이 엄청나게 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거리가 멀어서 그런지 천둥소리는 안 들린다.
영국판 문익점이 끝낸 마나우스의 황금기
배 위에서 첫날 밤에도 밤새도록 천둥이 쳤다. 하지만 천둥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게 비가 오지 않고 비교적 날씨가 좋다는 건기란다. 그럼 우기는 어떨까. 감히 짐작하기도 어렵다. 물론 건기라고 아예 비가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국지성 소나기인 스콜이 오면 배에 비상이 걸린다. 배의 1층은 화물칸이다. 일단 여기에 비가 들지 않도록 장막을 치는 것이 급선무다. 이 강을 따라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보급품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배가 항구에 접안하면 화물을 내리고 싣는 작업이 분주하다. 이제 아마존에도 없는 것이 없다. 2023년에는 유독 가뭄이 심해 정기 화물선이 접안할 수 없는 곳이 많았다. 그러면 배에 딸린 작은 선박으로 사람과 물자를 내려주고 또 물자와 승객을 데리고 돌아온다.
4박 5일 하늘과 구름, 강물과 수평으로 펼쳐진 아마존 원시림은 조금 단조로운 것도 사실이지만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웅대한 자연의 경험과 추억을 선사해줬다.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마나우스Manaus는 아마존강과 네그로강이 합쳐지는 곳에 위치한다. 브라질 사람들은 마나우스 전의 아마존강 본류를 솔리모에스Solimoes강이라 부르고 마나우스에서 강의 입구까지를 아마존강이라 부른다. 그만큼 마나우스는 아마존에 있어 상징적인 도시다. 대서양 쪽 강 입구에서 1,500km나 떨어진 아마존강 깊숙한 곳에 있지만, 거대한 도시다. 브라질에서 두 번째로 전기가 개통됐고, 유럽과 맞먹는 오페라 극장이 세워져 있다.
비법은 고무다. 아마존 정글에서 나는 하얀색의 고무나무 수액을 원주민들은 고무주머니나, 배를 만들거나 집을 지을 때 생활방수 재료로 썼다. 고무는 온도가 높아지면 점도가 약해지고 탄성을 잃는다. 1842년 미국사람 찰스 굿이어Charles Goodyear가 고무 원료에 유황을 넣고 가열해 지금의 고무와 같은 경질의 고무를 발명하자 그 당시 산업화가 한창인 미국과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원자재로 떠올랐다. 이들은 아마존 밀림에 고무를 찾아 몰려들었고, 브라질에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었다. 1910년 브라질 국민총생산GDP에서 고무 생산의 비중은 40%에 달했다.
멈출 기미가 안 보였던 마나우스의 황금기는 다소 허무하게 끝난다. 브라질은 고무나무와 씨앗의 반출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의 문익점 헨리 위컴Henry Wickham이 7만 개의 고무나무 씨앗을 숨겨서 영국으로 반출했다. 영국은 비슷한 기후인 식민지 스리랑카와 말레이시아에 고무농장을 차렸다. 그렇게 1920년경 브라질 고무사업의 호황은 끝났고, 거대도시 마나우스의 호황도 끝장이 났다.
마나우스는 오랫동안, 또 지금도 아마존 관광의 중심지다. 인구가 220만 명이고 브라질에서 일곱 번째로 큰 도시다. 한창 고무사업이 잘 나갈 땐 이탈리아 밀라노, 프랑스 파리의 오페라 극장을 모방해 이탈리아 대리석과 프랑스에서 들인 샹들리에에 값비싼 실내장식을 써서 1896년 오페라 극장 아마조나스Teatro Amazonas를 만들었다. 매일 유럽식 오페라 공연이 열릴 정도로 잘됐으나 고무산업의 사양과 함께 도시의 부흥도 막을 내렸다. 그래도 아직도 정기적으로 공연이 열리긴 한다. 4월과 5월에는 오페라 축제를 한다.
진짜 아마존 보려면 'MUSA' 기억
검은 강Río Negro은 낙엽색과 같은 짙은 갈색이다. 강물이 두터운 낙엽 층을 통과해 색깔이 변했다고 한다. 마나우스 앞에서 아마존강과 합치는데 두 강은 유속과 밀도가 달라 한동안 합치지 못하고 흘러간다. 배를 타고 경계선에서 그 현상을 보는 것은 신기하다. 검은 강은 산성을 띠고 있어 모기의 유충이 생존하기 어려워 검은 강 쪽 아마존을 찾으면 훨씬 모기에 덜 시달린다고 한다.
아마존은 땅에서 보면 그 크기를 가늠하기 어렵다. 오직 비행기 착륙 전 10분 정도 창가에 앉아 있어야만 그 크기가 보인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상류 콜롬비아 레티시아에서 배로 두 시간 걸리는 푸에르토 나리뇨란 곳에 가면 일본 NHK가 아마존을 촬영하며 세운 25m 전망대를 이용하는 것이 있다. 여기서도 어느 정도 아마존 밀림의 크기를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아마존 밀림을 실감나게 조망하려면 마나우스 외곽에 있는 아돌프 두케 식물원Jardim Botánico Adolpho Ducke에 가면 된다. 현지인은 MUSA라고 부르니 이를 꼭 참고하고 가도록 하자. 여기는 미니 아마존을 연상케 할 정도로 아마존 동식물과 원주민의 생활을 잘 전시해 놓았다. 하이라이트는 42m 높이의 전망대다. 아마존에서 제일 큰 나무가 60m 정도인 만큼 이 전망대에 오르면 정말 멋진 원시림의 장관을 볼 수 있다. 내가 보려고 한 아마존의 모습이 여기에 있었다. 넋이 나가 몇 시간 하염없이 정글을 바라보았다. 용감한 코르테스가 독수리의 눈으로 말없이 태평양을 바라 봤다고 전해지는, 다리엔의 한 봉우리에 올라 선 것처럼. 내 생에 이런 비경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마치 전기처럼 날 감전시켰다.
아마존에서 저지른 포드의 실수
지금 마나우스는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지역 내에 자유무역지대를 설치하고 여기에 전자 통신제품업과 제조업을 유치했다. 노키아, 혼다, 삼성, LG 등 세계적인 브랜드들의 공장이 마나우스에서 중남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이들보다 한참 먼저 아마존에 진출했던 대기업이 있다. 바로 포드다. 자동차왕 포드는 직원들이 월급으로 포드차를 살 수 있길 원했다. 그 정도로 싼 가격에 차를 미국인에게 공급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영국이 세계 고무시장을 장악하고 있어 비싼 값에 고무를 수급하는 것이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포드는 이 부담을 줄이고자 아마존에 직접 고무농장을 지어 조달하기로 결정했다. 산타램Santaram 남쪽에 농장을 짓고 그의 경영철학에 따라 미국과 똑같은 현대식 시설의 농장을 짓고 미국처럼 농장을 경영했다. 종업원에게는 철저하게 금주, 금연, 심지어 여자접촉 금지까지 요구했다.
포드의 성공은 그의 경영기법인 공장의 자동화, 공정의 표준화에 기반하고 있다. 포드는 이를 고무농장에도 접목했다. 고무나무를 촘촘하게 심어서 인부들의 동선은 최소화하고, 땅 대비 수익을 최대로 뽑아내려고 했다. 경영학적으로는 이상적인 방법이겠지만, 농장 경영은 경영학보다 식물학적으로 고무를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고무나무는 나무 사이에 넓은 공간이 필요하기에 죄다 말라서 죽는 일이 벌어졌다.
덩달아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이 말레이 반도를 점령하자 고무 조달에 비상이 걸린 미국은 현재 가치 25억 달러 상당의 자금과 인력을 동원해 합성고무를 순식간에 개발했다. 그 후 포드의 아마존 농장은 시들해졌다. 현재는 그 당시 설치한 거대한 물탱크 등 시설을 관광 상품으로 선보인다.
마나우스를 다 둘러보고 나서 이제 강 하구의 도시 벨렘Belem까지 배 여행 4박 5일을 하면 아마존 관광은 끝이 난다. 여기도 4박 5일이 소요되며 해먹에서 자야 한다. 배를 타고 내려가면 이미 상류를 경험한 것과 같이 비슷한 풍광이 펼쳐지나 강폭이 훨씬 넓어지고 바다인지 강인지 구분이 안 된다. 벨렘은 초기 포르투갈 사람들이 1616년에 건설한 도시이며 카카오, 동물 모피 등 무역의 중심이었다. 고무산업의 발달로 전기와 전화가 들어오고 열대의 파리라 불리며 명성을 얻었다. 강가의 재래시장에 가면 다양한 종류의 생전 처음 보는 과일과 야채가 즐비하고, 온갖 민물과 바다물고기들, 견과류, 전통 아마존 약재와 신기한 약재 비아그라까지 정말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많다.
벨렘에서 아마존 최대의 섬 마라조Ilha de Marajo까지 고속단정이 다닌다. 이 섬의 크기는 스위스와 같다. 북쪽은 대서양과 접하나 섬 전체가 습지라 접근이 어렵다. 섬 동쪽 일부가 관광지로 개발되었으나 큰 특징은 없다.
아마존의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20세기 후반 가난에 몰린 사람들이 아마존에 들어와 일회성 경작지를 만들려 밀림을 태우면서 파괴하는 일이 큰 문제로 떠올랐다. 아마존 론도니아주는 1991년 인구가 1970년 대비 10배 증가해 110만 명이었다.
상징적인 사건은 치코 멘데스Chico Mendes의 죽음이다. 그는 가난한 고무채취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정규 교육도 받지 않았지만, 가난한 노동자를 대표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무분별한 벌목을 막고자 환경운동에 뛰어들어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멘데스는 1988년 목장주의 총탄에 쓰러졌다. 고무가격이 폭락하자 나무를 베고 목장을 운영하려고 했던 무분별한 남벌자에게 당한 것이다.
이 사건은 국제사회에 아마존 파괴에 대한 경종을 울렸고 브라질 정부 또한 무분별한 개발에 대한 관리에 나섰다. 폴 매카트니는 치코 멘데스의 업적을 기리며 곡을 지어 헌정했다.
최근에는 지구의 허파 아마존을 공유하는 7개국(브라질과 콜롬비아, 볼리비아, 에콰도르, 페루, 수리남, 프랑스령 기아나) 정상이 2019년 9월 아마존 상류 콜롬비아의 레티시아에서 만나 아마존 열대우림 보호를 위한 공동 협약에 서명했다. 무분별한 열대우림 파괴를 막고 국가 간 협력과 정보의 교환, 또 자연재해 상황에서 서로 협력을 약속한 협약이다.
1960년과 2022년의 세계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합을 비교하면 80배가 증가했다. 그간 한국의 GDP는 400배 증가했다. 2022년 한국 GDP가 1960년 세계 총 GDP보다 크다. 생산에는 소비가 수반한다. 그러니 전 세계 인류의 소비도 80배가 늘었다는 말일 터다.
엄청난 과소비의 시대다. 그 전엔 식량과 생필품이 부족해 자원을 분배하는 방식(이념)을 두고 전 세계가 두 쪽으로 나뉘어 서로 증오하고, 죽이고, 전쟁을 치르며 무수한 죽음을 불러왔었다. 이를 냉전이라 부르며 아직도 그 후유증이 크다.
이젠 이념의 시대는 저물고, 그 과소비가 가져온 환경파괴와 지구 온난화 문제에 온 인류가 도전에 직면했다. 아마존 보호를 위해 협약을 체결했다곤 하지만 직접 강을 타고 내려오면서 아마존 곳곳에서 천연가스 기지와 석유 시추 개발 소식 등을 만날 수 있었다. 근심이 서린다. 아직은 인간의 접근이 어려워 어느 정도 보존되고 있다곤 하나 언제까지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헤아려보며 아마존을 떠난다. 그동안 인간과 자연의 싸움에서 자연이 이긴 경우를 못 보았기에 더 걱정이 크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면서 아마존은 우리 가까이에 있게 됐고, 그래서 더 금세 우리로부터 멀어질 판이다.
월간산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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