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 함성 없는 축구장…방울소리 따라 뒹굴고 깨져도 “행복합니다”

이정하 기자 2024. 1. 3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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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직장운동부 화성시청 축구부 창단
‘암막 안대’ 차고 선수들 훈련 참여해 봤더니…
한 발짝 떼기도 두려워, 드리블은 ‘언감생심’
지난 25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정남수질복원센터에 있는 풋살장에 모인 ‘화성시청 시각장애인 축구부’ 선수들. 왼쪽부터 장영준, 배현진, 신윤철, 김자온(골키퍼) 선수. 신소영 기자

‘딸그랑딸그랑.’

소리에만 집중한 탓인지 귓속 솜털까지 곤두섰다. ‘칠흑 같은 어둠’이란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보이지 않으니 두려웠고, 그 두려움이 마음까지 오그라들게 했다. 몇 발자국이면 닿을 거리였으나 엉거주춤한 자세로 한참을 꼼짝달싹하지 못했다. 청각에만 의지한 채 딸그랑 소리가 나는 공의 위치를 찾아 이쪽저쪽 뻗었다 접는 헛발질이 전통무술 택견의 ‘품밟기’처럼 느껴졌다.

지난 25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정남수질복원센터 풋살장에서 ‘화성시청 시각장애인 축구부’ 훈련을 함께했다. 빛 투과를 막는 암막 눈가리개부터 착용했다. 실전에서는 눈가리개 가장자리에 암막 테이핑까지 해 미세한 빛까지 차단한다고 했다. 특수 제작한 공에서 방울 소리가 났다. 공이 굴러갈 때 소리로 공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냥 하는 축구와는 확연히 달랐다. 공을 짧게 옮겨 가기도 쉽지 않았다. 양발로 공을 몰면서 발에서 공이 멀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기본이다. 발을 떠난 순간 공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보이 보이!”(voy voy) 소리를 내며 공을 몰고 돌진했다. 보이는 스페인어로 ‘간다’라는 뜻인데, 시각장애인 축구에서는 자신과 공의 위치를 알리는 ‘소통’ 수단이다. 한참을 이동한 것 같은데, 눈가리개를 잠시 내리고 살피니 처음과 큰 차이가 없었다.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던 셈이다. 가장 부담스러운 건 넘어지거나 부딪힐 수 있다는 공포심이었다.

반복되는 훈련 끝에 이리저리 손발을 뻗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단계까지 갔다. 하지만 전진할수록 방울 소리는 점점 멀어져갔다. 물론 선수들은 달랐다. 20m가 넘는 거리를 질주하는 드리블 속도에 놀랐고, 반환점을 정확하게 돌아 공을 전달하는 모습에 또 한번 감탄했다. 보아야 찰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편견이요 오만이었다.

한겨레 기자들이 시각장애인 축구에서 사용한 ‘암막 눈가리개’를 착용하고, 화성시청 시각장애인 축구부 선수들과 함께 드리블 훈련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한겨레 기자들이 시각장애인 축구에서 사용한 ‘암막 눈가리개’를 착용하고, 화성시청 시각장애인 축구부 선수들과 함께 기본기 훈련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페널티킥 슈팅 연습을 마지막으로 훈련도 끝이 났다. 보통의 축구와 다른 점은 가이드가 골대 뒤쪽에서 중앙과 좌우 골대를 두드려 위치를 가늠하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몸 왼쪽으로 더 틀고, 상단 왼쪽 구석!” 가이드가 어디로 찰지 키커에게 알려주고, 공과 몸의 방향까지 알려줬다. 선수들이 강하게 때린 슛이 잇따라 골망을 갈랐다. 우리 차례가 왔다. 두 발자국 물러선 뒤 멋지게(?) 왼발을 공 옆에 딛고 슛을 했지만, 빗맞은 공은 맥없이 굴러 골대를 지나쳤다. 30여분 짧은 체험에도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고, 겨드랑이와 등줄기가 흘러내린 땀으로 축축했다.

실전처럼 공을 다뤄보려던 애초 계획은 훈련 시작과 함께 일찌감치 포기했다. 축구부 막내 배현진(25) 선수는 “4년 전 처음 시작한 뒤 이가 두번이나 부서지고 깨졌다”고 귀띔했다. 그는 경기 중 입은 인대 부상으로 재활치료까지 받은 터였다. 다른 선수도 “이 정도로 훈련해서는 실전 경기는 어림도 없다”며 손을 가로저었다.

화성시 축구부는 지난해 11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창단한 ‘직장운동부 시각장애인 축구팀’이다. 경기는 5인제로 운영되는데, 18년차 베테랑 장영준(36), 16년차 신윤철(35), 골키퍼 김자온(30), 그리고 배현진 선수가 현역 시각장애인 국가대표다. 맏형과 막내는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전맹’, 신윤철 선수는 빛을 통해 사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약시’다. 골키퍼 김자온 선수는 비장애인이다. 시각장애인 축구는 골키퍼를 포함해 5명의 선수가 경기하는데, 경기규칙상 골키퍼는 약시나 비장애인이 맡는다. 경기 땐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선수가 암막 눈가리개를 착용한 동일 조건에서 경쟁한다.

선수들은 이날 골키퍼 인솔 아래 ‘한 줄 기차’처럼 서로의 어깨나 팔을 붙잡고 풋살장으로 들어섰다. ‘앞으로 앞으로’, ‘멈춰’, ‘뒤로 뒤로’ 등 골키퍼의 구령에 맞춰 몸풀기 운동을 시작했다. 영하권 날씨에 선수들은 연신 하얀 입김을 내뿜었다. 현재 감독과 코치진을 공모 중인데, 코치 자격증을 갖춘 김자온 선수와 신윤철 선수가 코치 역할을 병행하고 있었다. 경기 때는 수비지역에 골키퍼가, 상대편 골대 뒤에는 가이드가, 하프라인에는 감독이 위치해 공의 위치와 선수의 움직임을 말로 알린다. 시각장애인 축구는 슈팅할 때를 제외하곤 공이 뜨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부분의 플레이가 땅볼로 이뤄진다.

“온전히 소리에 의존해 진행되는 경기여서 관람석에 관중이 있어도 응원을 할 수가 없어요. 응원 소리에 방울 소리나 가이드 소리가 잘 들리지 않으면 부상 위험도 크고, 경기 진행도 힘들죠. 선수들끼리 뒤엉켜 충돌하는 일도 많아요.” 신윤철 선수가 경기나 훈련 중 주변 소음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화성시청 시각장애인 축구부 선수들이 패스 훈련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화성시청 시각장애인 축구부 선수들이 슈팅 훈련을 하는 모습. 신소영 기자

화성시청팀은 국내에 유일한 실업팀이다. 그렇다 보니 경기 치를 상대가 없어 경기 감각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 “1999년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가 가장 먼저 시각장애인 축구를 시작했고, 2010년까지 세계 무대에서 상위권을 다툴 정도로 잘했어요. 이후 다른 나라에선 실업이나 프로 축구팀 창단 등으로 발전을 거듭했는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생활체육, 취미활동 정도로 하는 수준입니다.” 장영준 선수 역시 18년차 국가대표지만, 화성시 축구부원이 되기 전까진 생계가 막막했다. 축구를 해 벌 수 있는 돈은 국제대회 출전을 위해 태극마크를 달고 있는 동안 받는 수당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고교 2학년 때 시력을 완전히 잃은 배현진 선수는 외국계 기업 인사팀에 근무하다가 전업 선수로 전향했다. “시력을 잃고 좌절했던 때도 있었어요. 모든 환경이 무섭고, 두려웠거든요. 2021년 처음 시각장애인 축구를 접하고, 입문과 동시에 국가대표로 선발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됐어요. 부딪히고, 나뒹굴고, 깨져도 축구를 즐기는 지금이 행복합니다.”

시각장애인 선수는 기술과 동작 하나를 익히기도 쉽지 않다. 자세를 하나하나 손으로 만져가면서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듯 새긴다고 한다. 훈련 지도는 물론 동료 선수의 기숙사 생활까지 돕는 골키퍼 김자온 선수는 “경기에 익숙해지고 선수들과 교감하기까지 쉽지 않았다. 말도 조심스럽고, 말로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국가대표 시각장애인 축구팀 보드진으로 참여했다가 5년 전부터 골키퍼로 활동 중이다.

선수들은 오는 5월 프랑스에서 열리는 세계그랑프리대회에 출전한다. 이 대회를 발판 삼아 2026년 일본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출전 티켓을 확보하는 게 목표다. 아직 코치진과 선수단 구성이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화성시의 전폭적인 지원 약속에 선수들은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화성시는 감독이 선정되면, 코치 1명을 포함해 추가로 4명의 선수를 선발할 계획이다. 올해 말까지 4억원을 들여 화성종합경기타운 내 시각장애인축구부 전용 구장도 짓는다. 시각장애인 축구는 풋살장과 공식 규격(가로 40m 세로 20m)은 같지만, 4면에는 부딪쳐도 다치지 않게 부드러운 소재로 감싼 안전펜스를 설치한 점이 다르다. 전용 구장 건설 때까지 임시 훈련장으로 쓸 정남 풋살장에도 상반기에 안전펜스를 설치할 계획이다.

시각장애인 축구에 사용되는 공은 특수 제작해 공이 구를 때마다 방울 소리가 난다. 신소영 기자

이정하 이승욱 기자 jungha9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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