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 칼럼] 가브리엘 아탈을 기른 교실

한겨레 2024. 1. 3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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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탈의 정치적 고속 질주 가운데서도 눈길을 끄는 대목은 어려서부터 적극적으로 정치 활동을 펼쳐왔다는 사실이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 정부의 부당한 노동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했고, 정당에 가입해 활발한 정치 활동을 벌였다. 아탈은 이런 의미에서 프랑스 교육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교실에서부터 민주주의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나라이기에 ‘경륜 있는 34살 총리’가 가능한 것이다.
물러나는 엘리자베스 보른 프랑스 총리(왼쪽)와 새로 임명된 가브리엘 아탈 총리가 지난 9일(현지시각) 수도 파리에 br있는 총리관저에서 이·취임 행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김누리|중앙대 교수(독문학)

최근 프랑스 총리로 임명된 가브리엘 아탈의 면모는 실로 파격적이다. 1989년생인 그는 현재 34살로 프랑스 제5공화국 출범 이후 역대 최연소 총리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최초로 공개적으로 밝힌 총리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튀니지계 유대인 혈통인 사실도 눈에 띈다.

그러니까 아탈의 나이도 나이지만, 그의 가계나 성적 지향도 프랑스 주류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외국계 혈통의 30대 초반 동성애자가 총리로 지명됐다면, 사람들은 과연 총리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새삼 68혁명의 진원지다운 프랑스의 문화적 톨레랑스(관용)의 폭과 깊이에 경외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아탈의 정치적 성장 과정은 참으로 경탄스럽다. 그는 이미 고등학생 시절인 2006년 학교에서 26살 이하 노동자를 고용한 뒤 2년 동안은 특별한 사유 없이도 해고할 수 있도록 한 ‘최초고용계약법’ 반대 시위를 조직했고, 그해 중도좌파 정당인 사회당에 입당했다. 다음해 대통령 선거에선 사회당 세골렌 루아얄 후보 캠프에서 활동했다. 그 뒤 파리 팡테옹 아사스 대학과 파리 정치대학에 진학한 아탈은 24살인 2014년 시의원에 당선되었다.

아탈은 2016년 역시 사회당 출신인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한 ‘르네상스’에 합류하여 쾌속 질주를 시작한다. 2018년 당 대변인, 같은 해 10월 교육부 차관에 올랐고, 30살인 2020년 정부 대변인, 2023년 교육부 장관이 되었다. 그리고 2024년 1월 마침내 총리로 임명됐다. 17살에 사회당에 입당한 이후 정확하게 17년 만에 총리가 된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무척 젊지만, 이미 인생의 절반 동안 정치 활동을 해온 셈이다.

아탈의 정치적 고속 질주 가운데서도 더욱 눈길을 끄는 대목은 어려서부터 적극적으로 정치 활동을 펼쳐왔다는 사실이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 정부의 부당한 노동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했고, 정당에 가입해 활발한 정치 활동을 벌였다. 아탈은 이런 의미에서 프랑스 교육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교실에서부터 정치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나라이기에 ‘경륜 있는 34살 총리’가 가능한 것이다.

체계적인 정치 교육은 물론 프랑스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유럽 대다수 국가가 정치 교육을 중시한다. 독일 최초 ‘고등학생 국회의원’ 아나 뤼어만의 사례는 전형적이다. 어려서부터 생태계 파괴의 현실을 보고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뤼어만은 12살에 그린피스 회원이 되었고, 14살에 녹색당에 가입했다. 17살에 녹색당 청년 대변인을 지낸 뒤 18살에 독일 연방의회 의원이 됐다. 이처럼 독일 학교에서는 어린 나이부터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정당에서 활동하는 것을 ‘허용’하는 정도가 아니라 ‘장려’한다.

34살에 핀란드 역사상 최연소 총리에 취임한 산나 마린, 37살에 뉴질랜드 역사상 최연소 여성 총리가 된 저신다 아던도 모두 학창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정당 활동을 해온 인물들이다. 아탈과 뤼어만, 마린과 아던 같은 빼어난 청년 정치인을 기른 것은 교실에서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민주주의 조기교육’이다.

이렇듯 서구의 촉망받는 젊은 정치인들의 공통점은 미래 지향의 진보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아탈은 프랑스 사회당에서 정치를 시작했고, 뤼어만은 독일 녹색당에서 잔뼈가 굵었으며, 마린은 핀란드 사회민주당, 아던은 뉴질랜드 노동당 대표와 총리를 지냈다. 얼마 전부터 미국 청년 정치의 샛별로 떠오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도 민주당 내 ‘신좌파’에 속한다.

그런데 한국은 정반대다. 얼마 안 되는 청년 정치인 가운데 그나마 언론의 주목을 받는 이들은 대개 보수적이다. 그들의 시대착오적인 여성 혐오와 소수자 경시, 기회주의적인 갈라치기와 강자 편승, 비전의 부재는 우리의 미래를 불안하게 한다. 또 자신의 정치철학을 제대로 연마하거나 검증받지 않은 이들이 상당수여서, 현실의 벽을 깨는 유토피아적 상상력을 펼쳐 보이는 젊은 정치인이 좀체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정당들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에 기반한 청년 정치인을 기르는 대신, 선거 때 반짝 외부 명망가 영입에만 열을 올리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교실이다. 유럽의 교실에서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기른다면, 한국의 교실에선 잠재적 파시스트를 기른다. 한국 교육에 잘 적응한 엘리트일수록 그런 성향이 강하다. 더욱이나 윤석열 정권 출범 뒤엔 특목고와 자사고 같은 특권학교 존치는 물론 교육부 민주시민교육과 폐지, 일부 지자체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추진 등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퇴행적인 반교육을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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