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시와 나무

하인혜 시인 2024. 1. 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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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변으로 향하는 산책로는 하나로 뻗어 오른 나무줄기처럼 반듯하다.

어린 날부터 자신의 온몸에 햇볕을 담아 놓았으니, 지난 가을날은 그토록 찬란했다.'나는 생각한다. 나무처럼 사랑스러운 시를 결코 볼 수 없으리라고. 잎이 무성한 팔을 들어 기도하는 나무. 시는 나 같은 바보들이나 짓지만, 오직 하느님만이 나무를 만들 수 있지.'라고 조이스 킬머는 '나무들(Trees)'을 노래했으니, 나무를 성자(聖者)로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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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혜 시인

천변으로 향하는 산책로는 하나로 뻗어 오른 나무줄기처럼 반듯하다. 갓길을 찾을 수 없기에 그 길을 따라서 걷는다. 도로 가장자리로 심겨진 은행나무는 의장대의 사열인 듯 일렬종대로 서서 차도와 인도의 경계선을 지키고 있다. 볕을 듬뿍 받은 계절의 잎새는 생명의 노래를 부르고, 바닥에 그려지는 그늘의 무늬는 발걸음에 밟혀도 끝내 의연하다. 어린 날부터 자신의 온몸에 햇볕을 담아 놓았으니, 지난 가을날은 그토록 찬란했다.'나는 생각한다. 나무처럼 사랑스러운 시를 결코 볼 수 없으리라고. 잎이 무성한 팔을 들어 기도하는 나무. 시는 나 같은 바보들이나 짓지만, 오직 하느님만이 나무를 만들 수 있지.'라고 조이스 킬머는 '나무들(Trees)'을 노래했으니, 나무를 성자(聖者)로 부르기도 한다.

길 건너로 나무가 지키고 있는 기와집 한 채가 있다. 지대보다 낮은 곳으로 돌아앉은 채 내어준 창문 하나가 새침스레 수굿할 뿐, 사람 사는 곳인가 싶게 적요하다. 드나드는 정다운 이웃이 있겠지 싶어 기웃거리다 만난 아담한 나무 한 그루. 기품 있는 수형의 라일락 나무가 초로의 소박한 시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은은하고 강한 향이 피워낸 온기가 기억이 되어 지난 세월을 지킨 듯 시간의 깊이를 채워주는 곳이다. 꽃이 피고 지며 나이를 헤아렸을 나무가 사는 오래된 집 또한 조촐하지만 의젓하다.

곁으로 나란한 공원은 커다란 품의 둥근 형상이 그윽하여 지나는 바람조차 그림자를 쓸어가지 않는다. 장승처럼 우뚝 서 있는 대왕참나무와 소나무가 제법 호기롭다. 안쪽으로 전나무와 이팝나무 그리고 자귀나무까지 빼곡하게 심겨 조경사의 수고가 고맙기도 하다.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들이 먼 데서 온 것 같다. 땅 속 뿌리가 품고 있을 달뜬 열기는 아무래도 성긴 슬픔으로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애잔하다. 어디에선가 떠나와 낯선 곳에서 살아내기로 애쓰고 있다. 볕든 거리를 바라보며 나무는 마침내 한 편의 시를 살고, 겨울 끄트머리를 따라 다시 처음처럼… 지금은 새봄이 오고 있다. 하인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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