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동갑내기 전쟁 영웅 별세에 상심… "몹시 그리울 것"

김태훈 2024. 1. 31. 06:0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베트남戰 때 미군 4명 구조한 래리 테일러
81세 일기 별세… 바이든과 같은 1942년생
2023년 9월 직접 명예훈장 수여한 인연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그와 동갑인 베트남전 참전 영웅의 타계 소식에 극도의 슬픔을 표시했다. 마침 이 노병(老兵)은 대중의 뇌리에서 잊힐 뻔하다가 바이든 대통령의 결단으로 전공을 세운 지 55년 만에 뒤늦게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았다. 명예훈장은 미국에서 군인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에 해당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동영상 하나를 올렸다. 2023년 9월5일 그가 백악관에서 래리 테일러 전 육군 대위에게 직접 명예훈장을 수여하는 광경이 담겼다. 불과 4개월여 전의 일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3년 9월 베트남전 참전용사 래리 테일러 전 미 육군 대위의 목에 명예훈장 메달을 걸어주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명예훈장을 받은 테일러가 거수경례를 하자 바이든 대통령도 거수경례로 응대하는 모습. 바이든 대통령 SNS 캡처
테일러는 1942년생으로 바이든 대통령과 같은 81세다. 그 테일러가 지난 28일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동영상과 함께 올린 추모의 글에서 “조국의 부름을 받았을 때 테일러 대위는 즉각 응답했다”며 “그 결과 네 가족의 운명을 영원히 새로 썼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2023년) 나는 테일러 대위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하는 영광을 누렸다”며 “고인이 몹시 그리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 언론이 보도한 부고 기사에 따르면 테일러는 테네시주(州) 채터누가 출신이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군 복무를 해왔다. 증조할아버지는 남북전쟁, 할아버지는 제1차 세계대전, 아버지와 삼촌들은 제2차 세계대전에 각각 참전했다. 본인도 가문의 전통에 따라 테네시 대학 재학 시절에 학생군사교육단(ROTC) 과정을 이수하고 1966년 졸업과 동시에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쟁이 한창이었다. AH-1G 코브라 공격 헬기 조종사가 된 테일러도 1967년 베트남에 파병됐다. 장교 생활 3년차이던 1968년 6월의 어느 늦은 밤 그가 속한 부대는 조난 신고를 접수했다. 병사 4명으로 구성된 정찰대가 적군에 포위돼 위험한 상태이니 가서 수색을 하라는 명령이 하달됐다.

미군 정찰대의 정확한 위치를 몰랐고 칠흑같은 어둠 속이었으나 테일러는 일단 헬기를 몰고 출발했다. 얼마 후 정찰대와 교신이 이뤄졌다. 정찰대는 자신들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조명탄을 터뜨렸다. 적군에 포위된 상태에서 심각한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었으나 탈출하려면 그 방법밖에는 없었다.

테일러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헬기에 탑재된 총으로 적군 진영에 공중사격을 가하며 그들의 시선을 분산시켰다. 동시에 지상의 정찰대에 ‘좀 있다가 헬기가 어느 지점으로 이동할 테니 미리 그쪽으로 이동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적군의 치열한 대공사격 속에서도 헬기는 무사히 기동했다. 결국 정찰대와 약속한 지점에서 조우할 수 있었다. 사실 테일러가 몰던 헬기는 2인승이었다. 그보다 많은 승객을 태우는 건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으나 테일러는 개의치 않았다. 가까스로 헬기에 올라 탄 정찰대원 4명은 안전한 곳으로 옮겨져 내린 뒤 테일러를 향해 일제히 거수경례를 했다.
1967∼1968년 베트남전쟁에서 헬기 조종사로 활약한 젊은 시절의 래리 테일러. 당시 적군에 포위된 미군 병사 4명을 구조한 공로로 2023년 명예훈장을 받았다. 최근 81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미 육군 홈페이지
그 뒤 미 육군은 테일러에게 은성훈장(Silver Star)을 수여했다. 그러나 서훈 당시부터 ‘홀대’ 논란이 불거졌다. 테일러가 세운 공로는 마땅히 명예훈장을 받아야 할 수준이며 은성훈장은 지나친 저평가라는 지적이었다. 그러는 사이 테일러는 대위를 끝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고향 테네시주에 정착했다.

테일러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4명은 그가 전역한 뒤에도 “훈장의 격을 더 올려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테네시주를 지역구로 둔 연방의회 의원들을 붙들고 간절히 설득했다. 1968년 당시 테일러의 영웅적 행동을 지켜본 다른 장병들의 추가 증언도 잇따랐다.

결국 2023년 바이든 행정부는 테일러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베트남전에서 공로를 세운 지 55년 만이었다. 훈장 수여식은 2023년 9월5일 백악관에서 열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테일러를 애도하며 고인의 유족, 그리고 그가 베트남전쟁 당시 구조한 미군 정찰대원 4명과 그 가족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