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미사일에 우크라 초토화되자… 서방 국가 “방공망 강화” [디펜스 포커스]

박수찬 2024. 1. 31.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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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미사일 요격망 구축’ 잰걸음
러 푸틴, 핵무기 사용 시사… 서방 위협
나토 “獨 등 15개국 ESSI 추진 협약”
미국산 패트리엇 미사일 1000기 도입
‘국가·국민 생존 초점’ 이스라엘 방공망
우크라戰서 성능 입증 IRIS-T SLM 등
美·이 제품 선호… 韓도 전략 모색 나서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각국에서 방공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쟁 발발 직후부터 러시아군은 탄도·순항미사일과 드론(무인기), 전투폭격기 등으로 우크라이나 전역을 타격하며 우크라이나군과 정부의 전쟁 수행 능력 및 국민 일상생활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모양새다. 러시아 미사일이 우크라이나 전역을 초토화한 것을 목격한 서방 국가들로선 방공망을 새롭게 구축하고, 우크라이나의 대공 방어력 강화를 도우면서 발생한 전력 공백을 메우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됐다.
패트리엇(PAC-3) 요격 미사일이 발사대에서 화염을 내뿜으며 공중으로 솟구쳐 올라가고 있다. 보잉 제공
◆미사일 요격망 구축하는 유럽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측근들이 핵무기 사용을 시사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하면서 서방을 위협했다. 우크라이나를 향해 미사일을 계속 쏘는 러시아를 보면 핵·미사일 위협은 실질적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유럽 국가들이 방공망 강화에 적극적인 이유다.

유럽 내 방위산업체에서 생산한 방공체계와 더불어 성능이 검증된 미국·이스라엘 제품을 선택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러시아의 위협이 커진 상황에서 신뢰성을 갖춘 무기를 신속히 전력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해석이다.

지난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한 핀란드는 같은 해 11월 이스라엘과 ‘다윗의 돌팔매’(David’s Sling) 방공체계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다윗의 돌팔매가 해외에 수출된 것은 처음이다. 다윗의 돌팔매는 이스라엘 방산업체 라파엘사와 미국 레이시온사가 공동 개발한 중·장거리 방공체계로 2017년부터 운용됐다. 이스라엘군 미사일방어(MD) 체계를 구성하는 무기로 고고도 요격미사일 애로(ARROW)-3와 저고도 방공무기 아이언돔의 중간 단계에 해당한다. 항공기와 드론,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등을 40∼300㎞ 거리에서 요격한다. 최근 하마스와의 충돌 과정에서 미사일, 로켓을 요격해 성능을 입증했다.
독일은 지난해 9월 이스라엘과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애로-3 도입을 확정했다. 독일은 2030년까지 실전 배치를 완료, 장거리 미사일 요격을 위한 방공망을 완성할 예정이다. 이스라엘 국방부 미사일 방어기구(IMDO)와 미국 미사일방어국(MDA)이 2008년부터 공동 개발한 애로-3는 요격 고도가 최대 100㎞, 사거리는 2400㎞에 달하는 미사일이다. 지구 대기권 밖에서 탄도미사일을 요격한다. 지난해 10월31일 예멘 후티 반군이 이스라엘 항구도시 에일라트를 향해 쏜 탄도미사일을 격추했다.

유럽 내 중소국들도 방공망 구축에 나서고 있다. 슬로베니아와 라트비아, 에스토니아는 최근 독일에서 아이리스-T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IRIS-T SLM) 체계를 도입하기로 했다. 독일 딜디펜스(Diehl Defense)가 개발한 IRIS-T SLM은 전투기에 탑재되는 IRIS-T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지대공 체계로 전환한 무기다. 최대 사거리 40㎞, 최대 요격 고도 20㎞로 항공기, 순항미사일, 드론 위협에 대응할 수 있다. 슬로바키아는 지난해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이 만든 바락(Barak) MX 방공시스템 도입을 결정했다. 바락 MX는 최대 요격 고도 30㎞, 사거리는 35~150㎞로 전투기, 미사일 등을 요격한다.

미사일과 항공기를 요격하는 방공망 구축은 유럽에서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2022년 10월 나토는 독일 등 15개국이 유럽 영공방어계획(ESSI) 추진 협약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나토의 통합 대공·미사일 방어체계(IAMD) 강화를 위해 만들어진 협약이다. 그에 따라 유럽 각국은 공동 조달을 통해 상호 운용이 가능한 방공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실제로 나토 조달청은 독일, 네덜란드, 루마니아, 스페인이 미국산 패트리엇 요격 미사일 1000기를 공동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패트리엇은 유럽에서 생산되며 제조 시설은 유럽 미사일 제작 방위산업체 MBDA와 미국 레이시언 자회사의 합작 투자로 건설될 예정이다. 미국과 독일 등 나토 동맹국들은 우크라이나에 패트리엇 미사일을 대량으로 제공했다. 그 결과 서방의 패트리엇 재고가 감소하면서 이를 보충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가자지구발 로켓 요격하는 이스라엘의 방공망 '아이언돔'. 로이터연합뉴스
◆성능 검증·美 기술 선택

고가의 첨단기술이 포함된 방공망을 도입하는 것은 단순한 무기 구매가 아니다. 무기 개발국과 다른 구매국들이 축적한 경험과 운용 기술 등을 함께 들여오는 것이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구매했는데도 기술적 결함으로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 큰 후폭풍을 감수해야 한다. 정치, 군사, 과학기술 등 측면에서 신뢰성이 확인되고 검증된 것을 선택하는 경향이 뚜렷한 이유다.

이스라엘 방공체계는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의 로켓·미사일 공격을 저지하면서 실전 경험을 쌓았다. 미국이 개발에 참여하면서 미국 기술이 포함됐다는 인상을 대외에 심어줄 수 있었다. 본토에서 원정군을 파견해 싸우는 미군 특성상 해외 주둔군 방어를 우선하는 미국과 달리 이스라엘은 국가와 국민의 생존에 초점을 맞춘다. 이스라엘 방공망이 미국 체계보다 유럽 실정에 더 가까운 셈이다.

IRIS-T SLM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주목받았다. 2015년 개발한 시스템을 개량한 것이지만 실전에서 사용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에 대량으로 공급된 뒤 러시아군 드론과 순항미사일 등을 성공적으로 격추하며 성능을 입증해 신규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패트리엇도 지난해 5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로 날아가던 러시아의 킨잘 극초음속 미사일 6발을 모두 격추했다. 성능이 확인된 만큼 도입국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한국도 이 같은 추세를 주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뢰성을 갖춘 첨단기술과 더불어 한반도 유사시 국가 주요 시설과 국민을 보호할 한국형 미사일 방어전략과 개념, 경험을 충분히 갖춰야 수출과 전력 증강을 함께 진행할 수 있다. 군 소식통은 “다층 미사일 방어체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종합적으로 고민하면서 공군과 육군 방공망, 장사정포 요격체계, ‘킬체인’(선제타격 체계)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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