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붕어빵도 로봇이 ‘뚝딱’… 사라지는 길거리 노점상 “가스비마저 부담”
카페서 붕어빵·군밤 찾는 손님 많아
팥 가격 1년 전보다 30% 올라… 노점상 “가스비마저 부담”
“막다른 골목에 간판이 있길래 따라 들어왔는데 로봇이 붕어빵을 만들고 있어 너무 신기해요.”
지난 29일 오후 2시. 서울 성수동 골목에 위치한 6㎡(1.8평) 규모의 ‘현대붕어빵’에는 10분 동안 3팀의 손님이 방문했다.
약 5cm 크기의 작은 붕어빵을 팔고 있었는데 붕어빵 기계와 사람 한 명이 앉으면 꽉 차는 공간에서 쉴 새 없이 붕어빵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기계에서 팥과 반죽이 나오면 붕어빵 틀이 자동으로 움직이며 붕어빵이 구워졌다. 그 후 완성된 붕어빵을 로봇팔이 들어 올려 쟁반에 ‘툭’ 떨어뜨렸다.
붕어빵을 사기 위해 지도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골목을 기웃거리다 우연히 붕어빵 가게에 있는 로봇을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멈춘 사람들도 있었다. 사장은 그런 행인들에게 미니 붕어빵을 하나씩 건네며 먹어보라고 권했다. 가격은 10개에 3000원, 20개에 5000원이었다.
현대붕어빵 사장은 “골목까지 들어오신 분들께 하나씩 주는 편인데 근처 직장인들은 다음에 구매하러 오는 경우가 많다”며 “외딴 골목인 데다 너무 작은 공간이라 다른 가게를 운영하기엔 진입장벽이 크지만 포장주문만 있는 붕어빵을 팔기엔 적합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로봇을 가게에 들인 이유에 대해선 “재료비가 비싼 만큼 인건비라도 줄여야 조금이라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할 수 있다”며 “붕어빵을 직접 구우면 힘들어서 매일 못 할 텐데 로봇 덕에 포장 일만 하기 때문에 한 달 내내 일해도 피로도가 낮다”고 말했다.
◇사라진 붕세권... 붕어빵·호떡·어묵 노점상 “최저시급도 못 벌어”
과거 붕어빵은 대부분 노점상 형태였다. 이 때문에 붕세권(붕어빵+역세권)이라는 말이 유행하며 ‘대동붕어빵여지도’ 등 붕어빵을 파는 곳을 표시한 지도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활발히 공유되기도 했다.
지금은 로봇이 붕어빵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됐지만 해가 갈수록 길거리 붕어빵은 점차 거리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불경기로 손님이 줄고, 재료비가 올라 상인들이 이윤을 남기기 힘들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팥(500g) 가격은 8534원으로 1년 전보다 33% 올랐다.
밀가루와 설탕 가격도 올랐다.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대형마트 기준 곰표 중력분(l㎏) 밀가루는 1840원으로 1년 전과는 비슷한 수준이지만 2년 전 대비 18.2% 올랐다. 또 CJ 백설탕(1㎏)은 2280원으로 전년 대비 21.3% 상승했다.
오후 3시, 인근 노점상 거리는 행인들로 북적였지만 추운 날씨에 발걸음을 재촉할 뿐 멈춰 서는 사람들이 없었다. 약 20여분이 지나고서야 1~2팀의 사람들이 붕어빵 한 봉지를 구매했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도 있었다.
이곳에서 붕어빵을 판매하는 50대 A씨는 경기가 좋지 않아 붕어빵을 파는 노점상도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거리만 해도 문을 아주 늦게 열거나 안 여는 길거리 음식 노점들이 많아졌다”며 “하루에 12시간씩 가게를 열고 있지만 12시간 최저시급으로 일하는 만큼도 벌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올해 최저시급은 9860원이다.
그는 또 “경기가 어려워지니 인근 카페에서도 불법 노점상이 월세 없이 장사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신고하는 경우가 늘어 불법 노점상은 거의 없어진 추세”라며 “요즘은 카페에서도 붕어빵을 팔다 보니 더 안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이어 “혼자 일해 인건비를 줄인다 해도 밀가루, 팥 모든 재료비가 올라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데 손님이 많지도 않고 비싸다는 반응이 많다”며 “붕어빵이 안 팔리더라도 가스는 계속 켜놔야 하는데 가스비도 올랐다”고 전했다. 붕어빵은 3개에 2000원에 판매 중이었다.
20년째 호떡·어묵 노점상을 하고 있는 B씨도 “옛날엔 어묵 하나에 500원이었는데 1000원이 되니 비싸다고 말하는 손님들이 많아졌다”며 “매년 장사가 더 어려워지고 있지만 올해는 유독 경기가 좋지 않은지 겨울철인데도 계절 음식을 찾는 손님들이 거의 없다”고 했다.
어묵 노점상을 운영 중인 C씨는 “술 마시는 사람들이 많아야 장사가 되는데 물가도 오르고 택시비도 오르니 대학가인데도 분위기가 예전과 다르다”며 “새벽 2시까지도 영업을 할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자정까지도 할까 말까다”라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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