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의 정주영’도 못 살리나... 무상감자→유상증자만 3번째인 토종 바이크업체
오토바이 제조기업 KR모터스가 재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무상감자에 이어 유상증자를 추진한다. 2014년 최대 주주가 바뀐 뒤 3번째다. KR모터스가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땜질식 해법에 그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KR모터스는 1978년 설립된 효성기계공업이 모태다. 1979년 일본 스즈키와 기술 제휴를 맺고 바이크를 생산한 것을 시작으로, 1987년 자체 기술로 양산에 성공하면서 국내 대표 이륜차 제조사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하면서 부도가 났다. 이후 효성그룹에서 분리된 뒤 2007년 S&T그룹 품에 안겼고, 2014년 엘브이엠씨홀딩스에 인수됐다. 엘브이엠씨홀딩스는 ‘라오스의 정주영’으로 불리는 오세영 엘브이엠씨홀딩스 회장이 일군 회사다.
3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KR모터스는 지난 25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3.3대 1 무상감자 안건을 의결했다. KR모터스의 발행 주식 수가 9613만8465주에서 2913만2868주로 줄게 된다. 이어 KR모터스는 주주 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유상증자도 추진한다. 신주 3100만주를 찍어낸다.
KR모터스는 예상 발행가(879원) 기준 유상증자로 272억원을 조달할 수 있다. 발행 수수료 등을 제외한 263억원은 모두 올해 말 만기가 돌아오는 제51회 전환사채(CB)를 상환하는 데 쓰인다. 제51회 CB의 권면총액(350억원)에 만기보장수익률(108.8%)을 반영하면 KR모터스는 381억원을 갚아야 한다.
KR모터스는 유상증자 발행가를 오는 4월 16일 확정하고, 같은 달 18일부터 19일까지 기존 주주(구주) 청약을 받는다. 이어 실권주를 대상으로 23일부터 24일까지 이틀간 일반 공모 청약을 진행한다. 신주는 오는 5월 9일부터 유통될 예정이다. KR모터스는 무상감자와 유상증자를 마치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35.2%였던 총차입금 의존도가 19.1%로 하락하고, 같은 기간 부채 비율도 691.6%에서 238.2%로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경영 실적이 개선되지 않는 한 이자 부담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KR모터스는 지난해 3분기 연결기준 누적 매출 608억원, 영업손실 99억원을 기록했다. KR모터스는 몇 차례 분기 영업이익을 냈으나, 2011년 이후 당기순손실이 이어지며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51회 CB를 갚은 뒤에도 271억원가량의 차입금이 남아 있다.
KR모터스의 최대 주주인 엘브이엠씨홀딩스는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지분 36.87%를 보유 중이다. 2대 주주는 오세영 회장(지분율 15.96%)이다. 엘브이엠씨홀딩스와 오 회장은 이번 유상증자에서 각각 1143만1898주와 494만8626주를 배정받을 예정이다. 엘브이엠씨홀딩스는 100% 청약하기로 했으나, 오 회장은 30%만 소화하기로 했다.
엘브이엠씨홀딩스와 오 회장은 2014년부터 KR모터스의 결손금을 메꾸기 위해 무상감자와 유상증자를 반복해 왔다. 상장폐지를 막기 위해서다. 유가증권시장상장규정 제47조에 따르면 자본금의 50% 이상이 잠식된 경우 관리종목으로 지정, 상장폐지될 수 있다.
KR모터스는 2017년 오 회장의 주식은 2대 1로 나머지 주주의 주식은 1.5대 1로 병합하는 방식의 차등감자를 했다. 이어 엘브이엠씨홀딩스 등에 제3자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를 진행했다. KR모터스는 2020년 2월에도 주식을 4대1로 병합하는 방식의 무상감자를 진행한 뒤, 같은 해 5월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로 260억원을 조달했다.
재무 상황과 실적이 좀처럼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주가도 부진을 이어왔다. 엘브이엠씨홀딩스 품에 안기고 이듬해 12월 KR모터스의 시가총액은 2830억원까지 치솟았으나, 현재 320억원 수준에 머물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KR모터스가 흑자 전환하지 못하는 한, 감자와 증자는 급한 불 끄기일 뿐”이라고 했다.
KR모터스는 올해부터 국내 시장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만 바이크 제조사 SYM(산양모터스)과 지난해 7월 국내 독점 공급계약을 체결해서다. 다만 KR모터스는 증권신고서를 통해 “혼다, 야마하와 같은 유수의 이륜차 제조업체의 기술력으로 인해 국내 SYM 제품 판매가 부진할 수 있고, 중국 저가 이륜차 제품의 진출이 KR모터스의 매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오 회장은 1997년 라오스로 건너가 엘브이엠씨홀딩스를 일군 인물이다. 중고차 유통 사업으로 시작, 5년 만에 라오스 최대 민간 기업으로 성장했다. 오 회장이 ‘라오스의 정주영’으로 불리게 된 배경이다. 오 회장은 이후 사업을 금융과 건설, 물류 등으로 확장했다. 사업 지역도 동남아로 넓히면서 회사 이름을 코라오(한국 + 라오스)에서 라오스,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의 앞 글자를 딴 엘브이엠씨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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