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거부권…위로도 없이 돈 내밀었다
2년도 안 돼 9번째 행사 ‘최다’
유가족 “가장 모욕적으로 묵살”
야 “국민 못 지키고 책임 안 져”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 취임 1년8개월 만에 9번째 거부권 행사다. 유족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정권”이라며 반발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윤 대통령은 오늘 오전 국무총리 주재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이태원특별법 재의요구안을 재가했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가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이태원특별법 재의요구안을 상정·의결했다. 한 총리는 “자칫 명분도 실익도 없이 국가 행정력과 재원을 소모하고, 국민의 분열과 불신만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며 “참사로 인한 아픔이 정쟁이나 위헌의 소지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무총리 소속 ‘10·29 참사 피해지원위원회’를 조속히 설치해 피해자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지원책에는 피해자 대상 생활안정지원금 및 의료 간병비 확대, 희생자 추모시설 건립 등이 포함됐다. 앞서 이태원특별법은 야당 주도로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안은 지난 19일 정부로 이송됐다.
윤 대통령은 취임 1년8개월 만에 9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민주화 이후 최다 거부권을 행사한 노태우 전 대통령(7건)을 넘어섰다. 앞서 윤 대통령은 양곡관리법, 간호법,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방송3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50억 클럽 특검법 등 총 8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회의는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유가족들이 언제 재정적 지원과 배상을 요구했나”라며 “우리가 바라는 건 진상규명”이라고 밝혔다. 또 “정부는 유가족들의 요구를 가장 모욕적인 방법으로 묵살했다”며 “참담함을 넘어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정부는 우리를 국민으로 여기지 않았고, 우리도 오늘부터 이 정부를 정부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유가족과 면담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은) 유가족 손 한 번 잡아주지 않고 기어코 거부권을 행사했다. 참 비정하다”고 했다.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는 “국가의 무능과 부재로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했어도 국가는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겠다고 선포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희용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는 야당의 반민주적 입법폭주와 정치공작에 맞서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등 야당은 이태원특별법과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 등 ‘쌍특검법’에 대해 오는 2월29일쯤 재표결에 나설 계획이다.
유설희·김윤나영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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