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방송사고’[편집실에서]
방송 프로그램에는 대본이 있습니다. 이를 매개로 사전에 손발을 맞추고 배우들은 연기를 펼치지요. 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리포트는 말할 것도 없고, 패널을 초대해 앵커와 주고받는 대담이나 인터뷰도 사전 질문지를 토대로 이뤄집니다. 생방송일수록 대본의 중요성은 더 커집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들어갔다간 자칫 방송사고가 날 확률이 커지니까요. 그렇다고 너무 티를 내선 안 됩니다. 짜인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생방송이 무슨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겠습니까. 각본을 따르면서도 즉흥적으로 하는 것처럼 비치도록 하는 일이야말로 생방송의 핵심입니다. 이른바 ‘약속대련’입니다.
약속대련보다 ‘자유대련’을 중시하는 앵커들이 있습니다. 방송의 특성상 대본을 깡그리 내팽개칠 순 없겠지만, 이들은 예정에 없던 질문을 던지거나 순서를 바꾸는 방식으로 생방송의 묘미를 극대화합니다. 관행이나 업계의 방식보다 대중의 알권리나 생방송의 묘미에 더 무게중심을 두는 스타일이라고나 할까요. 갑작스러운 추가 질문에 당황한 패널들은 생방송 도중 진땀을 흘리고, 그럴수록 시청자나 청취자들은 쾌감을 느낍니다. 앵커들은 상종가를 치지만, 졸지에 ‘먹잇감’이 되고만 패널들은 분루를 삼키게 마련입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패널로 출연했던 한 라디오 생방송 프로그램에서 앵커가 대본에도 없는 돌발질문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자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온갖 머리를 굴려봤지만 마땅한 답변이 떠오르질 않더군요. 별수 있습니까. “좀더 알아보겠습니다”란 말로 얼버무리고 말았지요. 굴욕도 그런 굴욕이 없었습니다.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는 공동목표로 시작한 일이지만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면 방청객들 앞에서 공개 망신을 당한 패널로선 앵커가 곱게 보일 리 없습니다. 반격을 꾀하지 않으리란 법도 없지요. 급기야 패널도 각본을 무시하고 돌출발언을 하기 시작하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프로그램은 길을 잃고 저만치 산으로 가버립니다. ‘각본 없는 드라마’에 잠시 환호할 순 있겠지만, 출연진 간의 자존심 경쟁에 본래의 기획 취지는 사라지고 ‘막장’만 남은 프로그램을 보는 대중의 마음 또한 당혹스러움을 넘어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뭐든지 정도껏 해야지요. 본말이 전도돼서야 되겠습니까.
한편인 줄 알았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한판 세게 붙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약속대련’으로 보입니다. 한때 크게 유행했던 모 이동통신사의 광고 카피 “쇼를 하라, 쇼”도 떠오르고요. 앞으로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관중 앞에서 서로 때리는 척만 하자고 약속하고선 한 대씩 뺨을 주고받던 두 연기자가 생각보다 매운 상대의 손맛을 보고는 발끈해 실제 난투극을 벌이는 사태와 같은 상황으로 이어지지 말란 법도 없지 않겠습니까. 어디까지가 실제상황이고, 어디까지나 퍼포먼스인지, 대본은 어느 수위로까지 쓰여 있는지, 연출 감독은 누구인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리얼 생방송’ 프로그램이 시작됐습니다.
권재현 편집장 ja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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