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조의 만사소통] 바로 지금, 여행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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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돌아가신 성철 스님이 말해 유명해진 구절이다.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산을 볼 때는 산만 생각하고, 물을 볼 때는 물만 생각하라.' 다시 말해 뭔가를 할 때는 지금 하고 있는 일만 생각하라는 것이다.
성철 스님 말처럼 사과에 집중해서 사과의 맛과 빛깔, 사과의 냄새, 심지어 사과가 여기 식탁에 올라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수고를 생각했더라면 어땠을까? 훨씬 사과가 사과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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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는 일만 생각하라는 뜻
머릿속에 온갖 잡념들로 가득
곁에 있는 것에 감사하지 못해
휴가 온것처럼 순간을 느끼며
오감을 열고 세상을 안아보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돌아가신 성철 스님이 말해 유명해진 구절이다.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산을 볼 때는 산만 생각하고, 물을 볼 때는 물만 생각하라.’ 다시 말해 뭔가를 할 때는 지금 하고 있는 일만 생각하라는 것이다. 밥을 먹을 때 밥 먹는 생각만 해야지 회사 일이나 다른 상념들은 일으키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불법에 문외한인 나 나름의 해석이다.
왜 이 말이 갑자기 떠오를까? 아마도 요즈음 잡념 가득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일 거다. 아침에 사과 한쪽을 먹을 때 온갖 생각들에 사로잡힌다. 어제 만났던 사람과의 대화, 오늘 할 일에 대한 계획 등등. 그러다보면 언제 먹었는지 사과는 없어지고 만다. 내가 사과를 먹었는지 된장찌개를 먹었는지 아무런 느낌이 없다. 맛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다.
사과를 사과로만 먹지 않고 다른 잡념들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성철 스님 말처럼 사과에 집중해서 사과의 맛과 빛깔, 사과의 냄새, 심지어 사과가 여기 식탁에 올라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수고를 생각했더라면 어땠을까? 훨씬 사과가 사과다웠을 것이다.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노트를 꺼내본다. 순전히 나를 위한 노트가 있다. 나를 가다듬기 위해 평소 좋아하는 글이며 좋은 말들, 그리고 스스로의 다짐 등을 써놓은 노트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도드라진 색깔을 입혀 놓았다. 노트를 펼치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1. 지금 여기 모든 것에 감사. 단순하게 순간을 느낄 것. 2. 늘 휴가 나온 기분으로 여행자처럼 살 것.
맞다. 이걸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내 곁에 있는 것들에 감사하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온갖 생각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사과를 먹어도 그 맛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던 것이다.
또 여행자처럼 살지 못했다. 여행을 가면 모든 것이 새롭다. 아니 새롭게 느끼려고 몸과 마음이 움직인다.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것을 많이 봐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늘 보던 익숙한 것도 새롭게 다가온다. 하늘과 구름, 산과 들, 이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여행지에서는 새롭다. 여행지 식탁에 올라온 사과는 또 어떤가? 집에서 먹던 사과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왜 여행지 사과는 더 달고 맛있게 느껴질까? 새롭게 느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 아닐까? 여행을 왔으니까, 휴가니까, 마음에 여유가 넘쳐서가 아닐까?
그래 맞다. 이런 기분을 평상시에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순간을 느끼며 늘 감사하게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항상 휴가 나온 기분으로 여행자처럼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하면 된다.
사과를 꺼낸다. 물로 씻는다. 불그스름한 빛깔을 본다. 세상에 이런 색깔이 있을까 싶다. 어떤 화가도 만들어낼 수 없는 아름다운 빛깔이다. 칼로 반쪽을 자른다. 코안 가득히 사과향을 맡는다. 세상에나 이렇게 맑고 싱그러운 냄새를 또 어디서 찾을까? 한입 베어 문다. 달콤새콤한 과즙이 터지며 입안을 가득 채운다. 온몸에 싱그러운 사과의 기운이 넘친다.
사과 한개가 나의 눈, 나의 입, 나의 몸을 다 일깨운다. 나와 스스로 소통하게 만든다. 평소 느끼지 못한 것들을 느끼게 한다. 나를 둘러싼 것들이 한올 한올 새롭게 다가온다. 세상이 다 안기는 느낌이다.
사과를 사과로만 보자. 산과 물을 산과 물로만 보는 것처럼. 지금 이 순간을 느끼자. 휴가 나온 여행자처럼. 그래서 세상을 품에 안아보자.
김혁조 강원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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