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착한(?) 농축산물 수입’의 끝은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농축산물 수입이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국내외 가격차를 노린 민간 수입이야 항용 있던 일이지만, 정부 주도의 무차별적 수입 확대는 예사로 넘길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연초 물가안정을 위해 수입 과일 21종에 대한 관세율을 낮추는 긴급할당관세를 적용한다고 발표하자 값이 많이 오른 사과와 배는 왜 수입하지 않느냐며 몰아붙였다.
쭈뼛거리던 정부는 확신에 차 당당히 수입에 나서고 일부 언론은 과격한 부추김을 무한 반복하며 '수입 만능주의'를 견고하게 다져간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농축산물 수입이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국내외 가격차를 노린 민간 수입이야 항용 있던 일이지만, 정부 주도의 무차별적 수입 확대는 예사로 넘길 문제가 아니다. 연중 상시화되다시피한 저율관세할당(TRQ) 증량이 무엇보다 걱정이다. 정부는 2022년 4차례에 걸쳐 70만t 넘게 TRQ 물량을 늘렸고, 지난해에는 9월까지 단 두번에 걸쳐 60만t 이상 물량을 늘렸다. 양파의 경우 지난해 TRQ 증량 물량이 기본 물량의 4배가 넘는 9만t에 달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제한적으로 운용해야 할 긴급할당관세도 마구잡이로 남발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대파·무·닭고기 등 16개 품목을 관세율 0%로 조정해 수입 문턱을 확 텄다.
새해 들어선 더 과감하다. 연초 정부는 ‘2024년 경제정책운용방향’을 통해 정기할당관세 품목인 닭고기나 달걀 가공품 외에 신선·냉동 과일과 가공품 21개 품목(30만t), 신선대파(3000t), 달걀(전량)에 대해 긴급할당관세를 적용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쯤되면 필요할 때 대상과 물량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우회적인 의지의 표현이나 다름없다.
여기서 집중해야 할 포인트가 하나 더 있다. 수입 규모와 적용 품목 이상으로 중요한 대목이 바로 ‘소비자 수용도 변화’다. 민관의 수입 확대로 시중에 외국산 농축산물이 넘쳐 나면서 소비자들의 경계심이 옅어지고 수입이 먹혀들기 시작했다. 지난해 외국산 멸균우유 수입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이 그 예다. 신선한 국산 우유 대신 싼값을 앞세운 수입 멸균우유로 소비가 대거 옮겨간 결과다. 지난 연말엔 도매시장에서 중국산 양파값이 국산 양파값을 앞지르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11일 경남 김해 화훼재배단지에선 농민들이 수입 꽃 급증으로 만신창이가 돼가는 상황을 견디다 못해 애써 키운 장미와 국화·거베라 등을 트랙터로 갈아엎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이 사연을 전하는 언론 보도엔 댓글이 전무하다시피했다. 둔감과 무관심의 방증이다.
경기침체와 고물가 상황이 장기화하고 정부가 농축산물 수입에 몰두하는 사이 ‘국산’ ‘수입’의 분별과 관련한 소비자 인식과 반응도는 뚝 떨어졌다. 여기에 일부 언론은 ‘수입=물가안정’ 프레임으로 수입에 의존한 수급관리를 정당화하고 왜곡된 수입 효과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잊을 만하면 ‘금(金)사과’ ‘금(金)배추’ 등 자극적인 문구로 소비에 부정적 인식도 끊임없이 주입한다. 급기야 ‘비싼 국산’과 ‘착한 수입’ 이미지를 교묘하게 대립시키며 대결 구도까지 조장한다. 최근 한 일간지에 “물가 잡겠다는 할당관세, ‘주범’ 사과·배 제외” 제하의 기사는 그 결정판이다. 정부가 연초 물가안정을 위해 수입 과일 21종에 대한 관세율을 낮추는 긴급할당관세를 적용한다고 발표하자 값이 많이 오른 사과와 배는 왜 수입하지 않느냐며 몰아붙였다. 소비자 안전과 국내 농업 보호를 위한 마지막 저지선인 ‘동식물 위생·검역(SPS)’ 조치마저 모조리 걷어내라고 성화다. 너무 나갔다. ‘주범’이라니. 고물가가 사과·배 탓인가.
국밥 1만원 시대, ‘신토불이’는 공허한 외침이 된다. 쭈뼛거리던 정부는 확신에 차 당당히 수입에 나서고 일부 언론은 과격한 부추김을 무한 반복하며 ‘수입 만능주의’를 견고하게 다져간다. 종국엔 물가안정기에도 수입은 수급관리에 옵션이 아닌 기본사양으로 장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미 우리는 충분한 경험치를 갖고 있다. 밀이 그랬고 대두·참깨·녹두·팥도 그렇다. 새로 가시권에 든 품목들이 언뜻언뜻 보인다. 이대로 가면 줄줄이 결딴날 판이다. 지금 멍하니 바라볼 때가 아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이경석 융합콘텐츠국장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