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175] 영산포 홍어
오랜만에 어머니를 모시고 전남 나주 영산포 홍어 집을 다녀왔다. 홍어탕이 그리웠다. 어머니는 귀한 홍어 대신 가오리 무침을 곧잘 하셨다. 그런 날이면 양은 주전자를 들고 술도가로 달려야 했다. 술값은 수매하면 아버지가 드린다는 말을 남기고 외상 장부에 꼭 눌러 적어두고 왔다.
영산포 홍어는 숙성 홍어다. 삭힌 정도에 따라 등급을 나누어 원하는 것을 내준다. 홍어 전문 식당에서는 김치, 수육, 홍어로 이루어진 홍어 삼합이 중심이다. 김치도 홍어를 넣어 삭힌 것이다. 여기에 콩나물을 삶아 올린 홍어 찜, 홍어 탕수육, 홍어 전 등도 맛볼 수 있다. 마무리는 홍어탕이다. 역시 홍어탕이 으뜸이다.
점심을 먹고 홍어를 사려고 가게에 들어섰다. 설을 맞아 주문한 홍어를 포장 중이었다. 국산 홍어라는 말에 원산지를 물었더니, ‘연평도에서 왔어요’라고 했다. 너무 반가웠다. 대청도 옥중동 마을에서 홍어잡이 어민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한때 흑산도까지 내려가 홍어를 잡았다. 국가 중요 어업유산으로 지정된 ‘흑산도 홍어잡이 어업’도 인천 지역 영향을 받은 것이다. 연평도 일대에서도 홍어가 많이 서식하고 많이 잡힌다. 하지만 홍어는 전라도에서 즐기는 음식으로 홍어 값도 후했다. 대청도에서 잡힌 홍어가 수도권이라는 소비처가 있음에도 번거롭게 영산포까지 육로로 이동하는 이유이다. 영산포에서 숙성된 홍어는 전라도만 아니라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으로 유통된다.
홍어를 즐기는 사람들은 알싸한 냄새에 먼저 몸이 반응한다. 오죽하면, ‘홍어는 냄새가 보약’이라는 말을 만들었을까. 그다음 혀끝과 입안에서 느낀다. 먹고 나서 콧구멍으로 뿜어져 나오는 ‘뻥 뚫린다’는 느낌이 세 번째다. 마지막으로 몸이 오싹하며 심한 사람은 닭살이 돋기도 한다. 이렇게 즐겨야 홍어를 제대로 영접하는 것이다. 이런 맛을 즐기고 싶다면 흑산도보다는 영산포 홍어가 제격이다. 흑산도에서 영산포까지 달포에 걸쳐 옮겨지면서 가마니와 항아리에 담겨 만들어진 독특한 맛이다. 영산포 홍어는 이렇게 거리와 시간과 인간의 지혜가 만들어 낸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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