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미래에 대한 생각 많은 게 문제, 살길은 현재에 있다

김한수 기자 2024. 1. 3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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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찾는 사람들] 정신과 전문의 전현수 박사
전현수 박사가 병원 명상실에서 좌선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생각을 줄여야 합니다. 저희 병원에 오시는 환자들을 보면 대부분 생각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생각이 적은 경우는 못 봤습니다. 생각은 달콤합니다. 그러나 실제가 아니고 과거나 미래로 향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살길은 현재에 있습니다.”

정신과 전문의 전현수(67) 박사는 20년 넘게 명상 수행을 하며 정신 치료에 접목하고 있다. 1985년 레지던트 2년 차에 불교를 본격적으로 접한 그는 2003년과 2009년 등 도합 3년간 병원을 닫고 미얀마와 한국의 산사(山寺)를 찾아 직접 수행했다. ‘정신과 의사가 들려주는 생각 사용 설명서’ ‘정신과 의사가 붓다에게 배운 마음 치료 이야기’ 등 불교 공부와 명상 체험을 바탕으로 한 저서를 다수 출간했고 ‘사마타와 위빠사나’ ‘불교정신치료강의’ 등 저서는 미국 출판사가 영문판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인기 유튜브 강사이기도 한 전 박사를 최근 서울 송파구 자신의 병원에서 만났다. 병원 진료실 바로 옆에는 명상실이 마련돼 전 박사와 환자들 누구나 명상을 할 수 있다.

생각이 많은 것이 왜 문제이고 정신병까지 일으킬까. 전 박사는 “누구나 괴롭다. 보통은 좀 괴롭다가 자기 할 일 하다가 또 괴롭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병원에 오는 분들은 세상과 현실을 왜곡해서 보거나 객관적이지 않은 자기만의 대책을 세우며 생각을 너무 많이 하다가 괴로움을 키운다”고 했다. 전 박사는 “제 경험으로 생각은 ‘하는 것’이 아니라 ‘떠오르는 것’”이라며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나요?”라고 말했다. 평소 자신에게 입력된 것들이 ‘생각의 탱크’에 고여 있다가 조건이 맞으면 떠오른다는 것. 그것도 자주 생각하는 쪽으로 길이 난다고 했다.

불교와 명상을 정신치료에 접목하고 있는 전현수 박사. 그의 병원엔 진료실과 명상실이 나란히 있다. /이태경 기자

전 박사는 “마음은 한 번에 한 곳으로만 향한다”고 했다. 주로 과거와 미래로 향하는 생각의 바탕엔 현재에 대한 불만족이 깔려 있다. 과거로 가면 후회와 화가 기다린다. ‘그때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과거에 그런 선택을 한 것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인과(因果)다. 그걸 지금에 와서 부정하는 것일 뿐. 더 나쁜 것은 과거의 상황은 이미 끝났는데, 거듭 생각함으로써 두 번째, 세 번째 괴로움을 만들어 스스로를 괴롭힌다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맞지 말아야 할 ‘두 번째 화살’이다. ‘좋은 추억’도 현재에 대한 불만족의 반영이다.

반면 미래는 불안하다. 그래서 혼자 ‘이럴 것이다’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 생각하고 걱정한다. 건전한 ‘계획’과는 다르다. 하지만 미래는 ‘안 가본 나라’와 같다. 정답은 불안이 아니라 ‘모른다’이다. 모른다는 것을 정확히 봐야 한다. “환자 중에 ‘친한 친구 부친상(喪)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인 분이 있었습니다. 별로 보고 싶지 않은 동창들을 만날까 봐 두렵다는 것이었죠. ‘일단 가서 문상을 하다가 친구들이 오면 나오시라’고 권했죠. 다음에 만나 들어보니 친구들이 아무도 안 왔답니다. 미래란 이런 것입니다.”

전현수 박사의 진료실. 책장에는 정신분석학과 불교 서적이 빼곡하다. /이태경 기자

그렇다면 생각을 줄이는 방법은? ‘마음은 한 번에 한 곳으로만 향한다’에 힌트가 있다. 마음을 현재로 가져오면 자연히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은 안 하게 된다. 전 박사는 “마음을 현재로 가져오는 가장 좋은 방법이 명상”이라며 “명상도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정확하게 보는 것과 멈추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일어나는 생각을 ‘나쁜 생각’이라고 억압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일어났구나’라고 정확하게 파악해 멈추고, 현재로 돌아오면 된다고 했다. 경우에 따라선 ‘멈춤’이 먼저가 된다. 전 박사는 “요즘 분노 조절 장애 때문에 병원을 찾는 분도 많다”며 “심한 경우엔 가해자이건 피해자이건 ‘일단 그 상황에서 도망가라’고 권한다”고 했다.

전현수 박사가 매일 생각이 얼마나 일어났는지를 체크한 다이어리. 빗금 아래쪽 숫자는 탐진치 생각이 일어난 횟수라고 한다. /김한수 기자

이렇게 과거를 후회하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때 현재에 집중할 수 있고, 현재에 집중할 때에 비로소 당면한 문제를 정확히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현재를 정확히 볼 수 있을 때 지혜가 생기며 정확한 생각을 탱크에 담게 된다. 틱낫한 스님이 말한 ‘나는 고향에 있다(I am home)’는 말은 과거와 미래에서 방황하지 않고 현재에서 편안히 있다는 뜻이다.

SNS의 발달로 ‘비교’가 일상이 된 세상. 전 박사는 “최근엔 남과 비교하는 것도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공통점”이라며 비교에는 3가지 특징이 있다고 했다. 비교의 기준이 ‘나’이고, 전체가 아닌 ‘부분’, 과정이 아닌 ‘결과’를 놓고 비교한다는 것. “누구나 인생은 총합으로 보면 비슷합니다. 그런데 전체가 아닌 일부분, 그것도 과정은 보지 않고 결과만 가지고 비교하면 우울하고 불행하게 느껴지지요. 저는 환자들에겐 가능하면 인스타그램은 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인터뷰 도중 전 박사는 책상 서랍에서 탁상용 다이어리를 꺼냈다. 거기엔 날짜별로 숫자가 적혀 있었다. 자택에서 병원까지 30분 거리를 걸으며 호흡에 집중한 시간과 하루 종일 ‘보통 생각’과 탐하고 성내고 어리석음을 가리키는 ‘탐진치(貪瞋癡) 생각’이 떠오른 횟수를 기록한 것. 전 박사가 ‘현재’로 돌아오기 위해 만든 ‘체크 리스트’다.

현재를 알아차리는 것은 그만큼 지속적 훈련이 필요하다. 그는 “생각을 멈추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라며 물을 거의 가득 채운 컵을 테이블에 소리 내지 않고 내려놓아 보라고 했다. 컵을 들었다가 내려놓는 몇 초는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전 박사에게 ‘행복’을 물었다. “불교 수행을 한 입장에서 저에게 ‘행복’의 개념은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좀 복잡합니다. 저는 ‘행복은 모르겠다. 다만 괴롭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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