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엑스레이] [5] 세계문학 전집
새해면 다짐을 한다. 매년 다짐은 글을 더 잘 쓰자는 것이다. 매년 실패한다. 글은 외모와 같다. 글솜씨도 어느 정도는 타고난다. 내 얼굴을 김수현처럼 만들 수 없다면 글도 계속 이 모양일 것이다. 참, 여기서 김수현은 배우다. 드라마 작가가 아니다. 조선일보 독자 세대의 넓은 폭을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한 번 더 강조하는 것이다.
어느 새해 어머니는 외판원 꼬드김에 넘어가 양장으로 된 세계문학 전집을 샀다. 그래서 내가 남들보다 빨리 세계문학을 읽어낸 영특한 아이가 되었느냐. 그럴 리가. 누구는 십대 시절 읽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인생을 바꿨다고 했다. 신격호 회장이 회사 이름을 여주인공 이름에서 따 ‘롯데’로 지은 건 유명한 이야기다. 연애소설이 한 기업을 만들다니 놀라운 일이다. 역시 될 사람은 따로 있다.
나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어내려 노력했다. 예민한 남자가 유부녀에게 빠져 죽는다는 이야기를 이해하기에는 어렸다. 사랑을 알아야 사랑에 죽는 이야기를 납득할 것이 아닌가. 나는 도스토옙스키를 10대 초반에 읽었다는 사람을 존경하는 동시에 의심하는 버릇이 있다. 죄라고는 참고서 살 돈으로 떡볶이 먹은 죄밖에 없는 내가 이해하기에 도스토옙스키는 너무 두꺼웠다.
이 글을 읽는 학부모 독자들도 아이를 위해 세계문학 전집을 샀을 것이다. 내 자식은 이해할 거라는, 여러분이 자식일 때도 이해하지 못한 사명을 갖고 샀을 것이다. 그 시절 친구들 책장에도 세계문학 전집은 있었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 특정 챕터만 반들반들해진 채 꽂혀 있었다. 나는 D.H. 로런스만큼 한국 아이들 특정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친 문학을 알지 못한다. 이 칼럼이 나가는 순간 전국 아이들 방에서 ‘채털리 부인의 사랑’만 사라질까 걱정이다. 아니다. 어차피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으로 알 건 다 알고 시작한다. 채털리 부인이 할 일도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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