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대통령은 묵묵부답, 이 대표는 동문서답

황대진 기자 2024. 1. 3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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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김 여사 의혹에 침묵
李, 사사건건 엉뚱한 답변
국민 의구심 계속 외면하면 대신 해소해줄 사람 찾을 것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4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마치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2023.10.31/뉴스1

윤석열 대통령은 말수가 적은 편이 아니다. 어느 자리에서나 이야기하기를 즐기고 자기주장도 강하다. 이재명 대표도 마찬가지다. 다변에 달변이다. 한때 ‘사이다’란 별명까지 얻었다. 그런 두 사람이 요즘 국민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국민이 궁금해하는 답, 듣고 싶은 말을 피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동문서답이다.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이 나오면 엉뚱한 답을 하거나 화살을 다른 사람에게 돌린다. ‘민주당이 탄핵을 너무 남발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에 “표를 얻기 위한 정책 남발은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민주당의 탄핵 남발을 물었는데 정부의 정책 남발로 답했다. ‘검사 탄핵은 이 대표 본인 방탄용 아니냐’고 기자들이 재차 묻자 “국민의힘에 기후에너지부는 어떻게 할지 물어봐 달라”고 했다. ‘용퇴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정부가 전세 사기 피해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이낙연 전 총리의 신당 창당 관련 질문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했다.

이 대표의 동문서답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경기지사 시절 부인 김혜경씨가 문재인·노무현 전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방한 글을 작성한 ‘혜경궁 김씨’라는 의혹이 제기되자 “부정부패에나 관심 가져 달라”고 답했다. 그러다 김혜경씨 법인카드 부정 사용 의혹이 터지자 “김건희씨 수사부터 제대로 하라”고 했다. 대장동 의혹은 ‘윤석열 게이트’라고 하고,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을 물으면 “국민의힘 의원 수사는 어떻게 돼가느냐”고 반문했다. ‘당신이 잘못한 것 아니냐’고 묻는데 ‘저 사람은 잘못 없느냐’고 되묻는다. 이 대표의 무고죄 전과가 그냥 생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윤 대통령은 평소 거침없는 화법으로 유명하지만, 김건희 여사와 처가 문제가 나오면 입을 닫는다. 작년 7월 장모가 법정구속됐을 때 윤 대통령은 침묵했다. 곧이어 처남이 기소됐을 때도 그랬다. 이번에 김 여사 명품 가방 의혹도 두 달이 넘도록 아무 말이 없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김 여사의 허위 경력 논란이 불거지자 팩트 체크가 먼저라며 사과를 거부했다. 여론이 나빠지고 지지율이 떨어지자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논란을 야기하게 된 것 자체만으로 공정과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명품 가방 문제는 친북 목사와 친야 성향 유튜브 매체가 짜고 벌인 함정 몰래카메라란 사실을 국민이 다 안다. 솔직하게 설명하고 겸허히 사과하면 국민이 납득하지 않을 리 없다. 임기가 3년 넘게 남은 대통령의 리더십이 더 이상 손상되는 것은 국민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동문서답과 묵묵부답은 둘 다 문제를 회피하고 싶은 데서 나오는 행동이다. 동문서답은 상대를 무시하고 화제를 적극적으로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다. 거짓이 보태질 수도 있다. 묵묵부답은 소극적으로 의사 표시를 하지 않는 것이다. 거짓은 아니지만 뭔가를 감추고 싶은 것이다. 이 대표의 동문서답은 국민에게 모멸감을 주고, 대통령의 묵묵부답은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지금 우리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상당 부분 여기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이 대표는 국민 무서운 줄 알아야 하고, 윤 대통령은 자신을 뽑아준 국민을 믿어야 한다.

누구나 그렇지만 특히 정치인은 유리한 이슈에 올라탈 때보다 불리한 입장에 처했을 때 진가가 드러난다. 국민은 궁금한 말, 듣고 싶은 말을 윤 대통령과 이 대표에게서 직접 듣고 싶어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말을 대신 해줄 누군가를 찾아 나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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