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작업실과 감옥
작가들의 새해 소망은 뭘까? 그들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을까?
며칠 전에 십여 명의 작가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오랜만의 다정하고 편한 자리였는데 왕성하게 작품활동하고 있는 젊은 시인들이 많았다. 우리는 돌아가며 올해의 꿈이랄까 계획을 한두 가지씩 말했다.
김연덕 시인은 부쩍 체력이 떨어진 것 같아서 매일 달리기를 하고 있는데, 올핸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해 보고 싶다고 했다. 이자켓 시인은 기타 연주를 더 자주 하고 싶고 이혜미 시인과 육호수 시인은 장기간 매달려온 학위논문을 끝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그 자리의 모든 이들이 공통적으로 최우선시하는 꿈은 자기 마음에 드는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이 오랫동안 글을 쓰며 책을 내온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써요? 저도 제 이름으로 책 한 권 내는 게 소원이거든요.” 불쑥 질문을 받았다. 감기 증상이 오래가서 병원에 갔는데 대기실 옆자리에 앉아있던 분이 말을 붙였다. 작년 12월, 나의 새 시집 낭독회에 참석했었다고 했다. 나는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머뭇거리다가 “우선 건강하셔야 글을 쓸 수 있어요. 감기만 걸려도 책이 눈에 안 들어오잖아요” 했다. 그분이 맞장구쳤다. “맞아요. 건강이 최고죠. 살만하니까 뭐라도 쓰겠죠.”
“좋은 작가가 되려면 엉덩이와 의자가 완전히 친해져야 한다”고 세계적인 중국 작가 위화도 말했다. 책상을 물고 늘어지려면 체력이 필요하다.
글을 쓰고 싶다면 자신의 가장 귀한 시간을 글쓰기에 몰입해야 한다. 퇴근 이후부터 새벽까지, 가사 노동 중의 짧은 여유시간에, 황금연휴에, 간병하다가 환자가 잠든 짬에도 책을 읽는다. 글을 쓴다. 작가가 되려면 열성적인 독자부터 돼야 한다.
전업작가 되기, 작업실 가지기. 이런 꿈을 이루긴 쉽지 않다. 내가 아는 작가 대부분은 카페나 도서관, 독서실을 찾거나 집안의 작은 방에서 글을 쓴다. 떠들썩한 파티에 가기보다 고독한 산책을 좋아하고 단체여행이나 취미클럽에 초대받아도 핑계 대며 틀어박혀 글쓰기를 선호한다. 온종일 글을 쓸 수 있는 여건이 되면 축복받은 것 같다. 당분간 아무도 만나지 않아도 되고 약간의 먹거리만 주어진다면 노트북을 펼치며 감사한다. 자신을 단속하고 감금하기에 익숙한 것 같다. 글을 쓰는 공간이 대형 카페든 지하 작업실이든 스스로 만든 감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을 즐기는 것이다.
실제로 감옥에 가본 적 있다. 몇 해 전, 경남에 있는 한 교도소에 인문학 특강을 하러 갔다. 수감자분들과 대면하기 전까지는 긴장감이 팽팽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의 선입견이 부끄러웠다. “이곳에서 생활하시며 가장 안타까운 점은 무엇입니까?” 내가 기대한 것보다 진솔하고 적극적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아내와 아이들,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가장 크다는 말씀은 예상했던 답변이었다. 그분은 내가 수감번호 대신 성함을 불러드린 점을 감사하다고 했다. 여러 명의 답변 중에 기억에 남은 부분을 세 가지 단어로 표현한다면 벽, 음악, 그리고 어둠이다.
첫 번째는 면벽할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다. 수감자분들이 한 방에서 나란히 누워 잠을 자는데 옆자리에 사람이 있는 것보다 벽이 있을 때가 더 잠이 잘 온다는 것이었다. 벽에 붙어서 잘 수 있는 사람은 고참들이라고 했던 것 같다.
두 번째는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안타까움이다. 식사 시간에만 잠시 스피커에서 음악이 나오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메마르는 느낌이라고 했다.
세 번째 안타까움은 어둠이 없는 것이다. 안전을 위해 하루 종일, 일 년 내내 전등불이 꺼지지 않기 때문에 피로감이 크다는 말이었다.
나는 벽과 어둠을 부정적인 것들의 상징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날 이후 그것들의 가치를 되짚어보게 되었다. 글을 쓰는 이들은 자신만의 감옥 같은 공간을 사랑하게 된다. 자기 내면의 무수한 벽과 어둠을 인식하고 그 너머로 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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