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만년 소외주’에 단비가 내린다

유소연 기자 2024. 1. 3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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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증시 폭등 이끈 ‘주주 친화 정책’ 도입 예고… 증시 저평가 탈출 시동
그래픽=양인성

지난 29일 증권가에선 이마트 주가가 화제였다. 하루 만에 15.2% 급등했기 때문이다. ‘사면 물린다’던 이마트 주가가 15% 이상 급등한 건 지난 2018년 1월 26일(15%) 이후 6년 만이다. 많아야 40만주에 머물던 하루 거래량은 180만여주로 폭발했다.

‘코스피에서 가치 대비 가장 싼 주식’으로서 매력이 부각된 덕이다. 지난 29일 기준 3곳 이상의 기관이 실적 전망치를 낸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297곳 중 이마트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2배로 가장 낮았다.

PBR은 주가를 주당 순자산 가치로 나눈 것이다. PBR이 1배 미만이면 회사 가치가 청산할 때보다도 낮을 만큼 저평가돼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일본식 주주 친화 정책을 도입, PBR이 낮은 종목 주가를 끌어올리겠다고 예고하자 이마트 같은 ‘만년 소외주’ 주가가 다시 불붙고 있다.

이마트는 ‘PBR 꼴찌’와 더불어 대형 마트 공휴일 의무 휴업 규제가 폐지된 데다가 지난주 개장한 수원 스타필드가 붐비며 실적 개선 기대가 높아지는 호재가 겹쳤다.

작년 말 국내 상장주 평균 PBR은 1.1배로 미국(4.5배)은 물론 일본(1.4배)보다도 낮다. 이런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며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일본 증시가 주주 친화 정책 덕분에 올 들어 34년 만의 최고치를 경신하며 버블 경제 시절에 기록한 역대 최고치에 근접하고 있는 것을 벤치마킹하는 내용이 중심이 될 전망이다.

그래픽=양인성

◇일본식 ‘주주 친화 정책’ 도입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17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민생 토론회에서 “PBR이 낮은 기업은 스스로 어떻게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을지 공시를 하도록 유도하는 제도를 운용하려 한다”며 증시 저평가 탈출의 시동을 걸었다. 정부의 증시 부양책은 ‘저(低)PBR 기업에 주가 제고 계획 공시 의무화’ ‘관련 지수 및 상품 개발’ ‘업종별·시가총액별 PBR 줄 세우기’ 등 세 가지다.

먼저 기업 지배구조 보고서에 기업 가치를 높일 계획을 기재하도록 하는 방안은 도쿄증권거래소가 작년 4월 PBR 1배 이하 상장사에 주가 상승 대책을 마련토록 한 조치와 유사하다. 다만 강제성이 없는 일본과 달리 우리는 관련 공시를 사실상 의무화할 전망이다.

금융 당국은 주주 가치가 높은 기업들로 구성된 지수를 개발하고 여기에 수익률이 연동되는 상장지수펀드(ETF)도 출시할 계획이다. 앞서 도쿄거래소는 작년 6월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높고 PBR이 1배를 초과하는 기업에 가중치를 주는 ‘JPX프라임150′ 지수를 만들었고, 이 지수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ETF가 지난 24일 처음 상장됐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한국은 PBR이 개선되는 종목을 지수에 편입하는 식으로 운용할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동일 업종이나 비슷한 시가총액 기업끼리 PBR과 ROE, 배당수익률 등을 비교 공시하는 방안도 계획 중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PBR 제고와 더불어 배당 확대, 자사주 제도 개선 등 전반적으로 주주 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병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을 통해 실패를 숱하게 겪은 뒤 주가를 띄우기 위한 모르핀 처방에 나섰다”며 “일본 처방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0년간 토양을 닦아온 주주행동주의(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해 주가를 올리려는 투자 방식)가 깔려 있는데, 한국은 주주행동주의 기반이 약한 것이 차이점”이라고 했다.

◇저PBR 종목 주가 두 자릿수 급등

이날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저PBR 종목은 유통·금융·건설·제조업에 몰려있다. 유통에선 롯데쇼핑·현대백화점(0.23배), 현대홈쇼핑(0.24배), 신세계(0.36배)가 하위권이다. KB(0.37배)·신한(0.36배)·하나(0.32배)·우리(0.31배) 등 4대 금융도 모두 PBR이 0.3배 수준에 머물러 있다. 조사 대상 상장사 297곳 중 135곳(45%)이 PBR이 1배 미만이었다.

저PBR 종목들은 김주현 위원장 발언 이후 강세다. 롯데쇼핑(18%)과 현대백화점(14%)이 17일부터 30일까지 10% 넘게 상승한 것을 비롯, KB(12%)·신한(9.3%)·하나(12%)·우리(8.3%) 등 4대 금융 주가도 뛰었다. ‘만년 저평가 지주회사’라는 꼬리표가 달렸던 태광산업(42%)·삼성물산(11%)·금호석유(12%)도 같은 기간 급등했다.

PBR이 0.6배인 증권업은 30일 부국(하루 상승폭 7.4%)·신영(3.5%)·미래에셋(2.5%)·대신증권(1.7%)이 장중 52주 신고가를 새로 썼다. 미래에셋은 최근 자사주 추가 매입을 결정하며 주주 환원 기대가 높아지며 이날 장중 5%대 급등하기도 했다.

증권사들은 “PBR이 1배 미만인 상장사가 전체의 절반 가까이 되는 만큼 옥석을 가려 투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신증권은 증시 부양책 수혜주로 하나금융, 현대차, LG를 꼽았고, 삼성증권은 금호석유를 추천했다. NH투자증권은 “자동차·금융 업종과 실적 전환 가능성이 있는 일부 유통기업을 주목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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