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데이트폭력, 사랑하니까 때린다?
2001년작 영화 ‘엽기적인 그녀’는 로맨틱 코미디의 수작으로 꼽히며, 그 해 488만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영화는, 자신이 하고 싶은 건 반드시 하는 고집불통에 거친 말투와 행동까지 고루 갖춘 그녀와 그녀의 모든 걸 받아주며 곁을 지키는 남친 견우의 ‘만남에서 이별, 다시 만남’을 다루고 있다. 그녀는 수시로 견우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죽을래?”라는 막말을 일삼는다. 강이 얼마나 깊은지 확인한다며, 견우를 밀어 강물에 빠뜨리기도 한다. 특히 지하철 안에서 게임을 하면서, 그녀가 견우의 따귀를 무차별로 때리는 장면은 백미로 뽑힌다.
하지만 웃음 뒤에 찾아오는 건, 안타깝게도 두려움이다. 주인공이 무려 전지현과 차태현이라는 호감도 최상의 명배우였고, 알고 보니 그녀에게는 연인을 잃은 아픈 과거가 있었으며, 결말이 해피엔딩이라는 사실로 인해, 잠시 잊고 있었다. 연인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사랑이 아닌 폭력이라는 상식을 미처 기억하지 못한 것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 속 ‘엽기적인 그녀’는 데이트폭력의 가해자다. 물론 ‘견우가 이러한 폭력을 기꺼이 받아들였으니 괜찮지 않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하지만 합의된 폭력이라거나, 폭력 역시 사랑이라며 이를 감내하는 것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가스라이팅된 희생자이지, 결코 사랑이 아니다.
그럼에도, 데이트폭력은 현재진행형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데이트폭력 신고 건수는 2020년 4만9225건, 2021년 5만7305건, 2022년 7만790건으로 3년간 44% 증가했다. 특히 2022년 검거된 피의자의 범죄유형을 보면, 폭행·상해 9천68명(71%), 체포·감금·협박 1천154명(9%), 주거침입 764명(6%), 성폭력 274명(2.1%) 등으로 가히 충격적이다.
데이트폭력은 주로 연인 사이에 발생하기에, 신고가 어려워 은폐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처음에는 막말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신체적 폭력에 성폭력까지 점차 극악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데이트폭력을 별도 범죄화하는 단일법을 두지 않은 까닭에, 그때그때 형법과 스토킹처벌법 등을 적용해 땜질처벌하고 있다. 데이트폭력의 심각성과 잔혹성을 생각한다면, 이를 가중처벌하는 법안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껏 데이트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치권은 앞다퉈 법안을 내놨지만, 아직까지 국회 문턱을 넘은 적은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쳐야 법이 바뀔까? ‘엽기적인 그녀’는 판타지일 뿐, 결코 현실이 돼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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