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한국 주식시장 저평가론에 대하여

조일훈 2024. 1. 31.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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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주가가 진짜 우리 실력
美·日 오른다고 동반 상승 어려워
현금·자산 중심 기업경영
투자·가치 중심으로 전환해야
ROE·PBR·주가 동반 상승
기업들 모험투자 장려 위한
법·제도 정비 서둘러야
조일훈 논설실장

한국 주가는 낮다. 높아야 하는데 낮은 게 아니다. 그냥 낮을 뿐이다. 미국, 일본 주가가 올랐다고 우리도 따라가야 한다는 단선적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한국 시장이 저평가돼 있다는 말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일시적 정체라면 몰라도 수십년째 디스카운트를 받는 시장은 없다. 지금 삼성전자를 미국 뉴욕시장으로 옮기면 어떻게 될까. 한국 상장사 주가수익비율(PER)이 미국에 비해 40% 저평가돼 있다는 논리를 추종하면 단번에 10만원을 넘어서야 한다. 하지만 인적 구성, 사업구조, 핵심 역량이 바뀌지 않는다면 뉴욕 할아버지라도 소용없다. 지금 주가가 우리 기업들의 실력이요, 국가 경쟁력의 현주소라고 봐야 한다.

주식시장은 사업밑천을 모두 쏟아부어 성과를 극대화하는 기업에 환호를 보낸다. 많이 팔고(총자산 회전율), 많이 남기는(순이익률) 경쟁의 장이다.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주가를 결정하는 핵심 지표로 자리잡은 이유다. 벌어들인 돈을 은행에 넣지 않고 바로 주주들에게 나눠주거나 모험적 투자에 나서는 애플과 테슬라식 경영은 최고의 혁신으로 평가받는다. 한국 상장사들은 엄두를 내기 어렵다. 대규모 설비와 인력을 필요로 하는 제조업 비중이 높아 가볍게 움직일 수 없다. 미국 빅테크들처럼 생산성이 떨어지는 공장을 마음대로 정리하고 언제든 대규모 해고를 단행할 수 있는 경영환경도 아니다. 정치가 기업을 짓누르고 강성 노조와 좌파 단체가 발목을 잡는다. 외국 기업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사업 재편과 방향 전환이 한국 기업들에는 무척 어렵다. 자본력을 모두 투자에 쏟아붓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다. 경영진의 현금 보유 선호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팬데믹 사태 등을 겪으면서 지난 20여 년간 위험관리가 상시화됐다. “불확실성 속에서 믿을 건 오로지 현금뿐”이라는 방어심리가 만연하다. 중국 시장 고전과 글로벌 경기 침체가 겹치자 자신감도 부쩍 잃어버린 모습이다. 그 누적된 결과가 2005년 15%대에 달했던 ROE의 8%대 추락이다.

순이익 증가 없이 ROE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은 분모인 자기자본을 줄이는 것이다. 가장 흔하고도 강력한 수단은 자사주 매입·소각이다. 하지만 앞날을 두려워하는 우리 기업들은 자사주를 현금과 동일시한다. 투자자들은 왜 돈을 쌓아두고 있느냐, 자사주를 태우지 않느냐고 아우성이다. 과거 주주들은 우리 경제와 산업이 고성장을 구가할 때 사내 유보에 관대했다. 참고 기다려줄 테니 배당 대신 투자를 늘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저성장기 주주들은 자본을 줄여서라도 ROE를 올리는 기업을 선호한다. 현금이 모자라면 차입을 해서라도 배당하는 애플에 열광한다.

정부가 기업가치를 올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일시적 수급 개선이나 과거 ‘바이 코리아’식 캠페인으로는 어림도 없다.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대한민국 주가는 오랜 세월 굳어져 온 현금·자산 중심의 기업 경영을 투자·가치 중심으로 얼마나 실효적으로 전환하느냐에 달려있다. 무엇보다 기업과 경영자들의 태도가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 사업현장을 다시 모험 가득한 기업가정신으로 채워야 한다. 투자 활력을 높일 수 있는 경영환경 개선도 시급하다. 고정자산 운용 부담을 줄여주고,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해소하며, 주가 상승이 세금 폭탄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책의 대전환을 병행해야 한다.

이제야 3만달러 문턱에 도달한 국민 삶의 질 개선과 노동시간 축소를 위해서라도 주가는 올라야 한다. 2021년 기준 미국 가계소득(근로+사업+자산+이전소득 등)에서 이자 배당 등으로 벌어들이는 자산소득 비중은 14.3%에 달했다. 한국은 고작 0.6%에 그쳤다. 엄청난 고금리 고물가 충격에도 미국 소비가 쉽사리 꺾이지 않는 배경이다. 한국 가계의 소득 구성 가운데 앞으로 늘어날 곳은 자산소득밖에 없다. 근로소득은 주력산업 성숙에 따른 고용창출 능력 저하, 사업소득은 자영업 퇴조, 이전소득(정부, 가구 간) 비중은 재정 긴축과 높은 세율 때문에 늘어나기가 어렵다. 유일하게 여지가 있는 곳이 자본시장이요, 자산소득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우리 기업과 국민 모두의 앞날에 중요한 시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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