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약속대련과 진정성
‘쇼’라는 걸 알면서 관객들 환호
‘尹·韓 갈등’ 쇼든 아니든 어떠랴
민생 챙기는 ‘합’만 보여준다면…
‘약속대련(約束對練)’이란 두 사람이 사전에 약속된 방법으로 공격과 수비를 하면서 실전에 응용할 수 있도록 기술을 수련하는 방식을 일컫는 태권도 용어다. 우리말로는 ‘맞춰겨루기’라고 한다.
액션 영화에서 격투 장면만큼 중요한 요소는 없다. 다만 좋은 격투 장면은 배우들 간의 합이 잘 맞아야 진짜처럼 관객들이 받아들인다. 액션 영화에 무술 감독이 따로 있는 이유다. 무술 감독이 화려하고 멋진 동선을 짜면 배우들이 이를 구현하기 위해 수많은 연습을 거쳐야 인상적인 격투 장면이 탄생한다.
프로레슬링은 약속대련의 결정체라 할 만하다. 링 위의 두 상대가 미리 짜인 각본에 따라 ‘짜고 치는 것’은 액션 영화의 격투 장면과 비슷하지만 프로레슬링이 영화와 다른 결정적인 차이는 생생한 ‘라이브’ 약속대련이라는 점이다. 영화는 액션의 합이 틀리면 NG를 내고 다시 촬영할 수 있지만 프로레슬링은 그럴 수 없다. 그래서 돌발 상황 대처능력도 필요하다. 이런 면이 액션 영화의 약속대련보다 더 흥미롭게 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슈퍼스타’ 김일을 앞세운 프로레슬링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급락하는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프로레슬링은 쇼”라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진짜 경기가 아닌 약속대련이라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실망했고, 서서히 인기가 사그라지기 시작한 한국 프로레슬링은 지금은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WWE(World Wrestling Entertainment)로 대표되는 미국의 프로레슬링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WWE 경기장에는 수만 명의 팬이 몰리고 유료 TV 중계도 인기가 적지 않다. 미국인들이라고 이것이 ‘쇼’란 것을 모를 리 없지만 링 위에 오르는 캐릭터 한 명 한 명이 만들어가는 스토리텔링에 열광한다. WWE 스타 중에서는 할리우드로 진출해 유명한 액션 배우로 성공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에서도 1970년대 후반 쇼라며 프로레슬링을 떠났던 기성세대들과 달리 2000년대 10대를 보낸 세대 중 적지 않은 이들이 WWE에 빠져들었고 그중 일부는 지금도 그 ‘쇼’를 즐기고 있다.
요즘 정치권의 ‘약속대련’ 논란에 여러 생각이 든다. 물론 윤 대통령과 한 비대위원장의 갈등이 약속대련이라는 주장보다는 실제 상황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 그래도 갈등이 커지던 상황에 두 사람이 시장에서 만나 함께 민생을 챙기고, 용산에서 회동해 같이 식사도 하며 급작스럽게 갈등을 봉합하는 일련의 과정이 자연스럽지만은 않아 보인다며 여전히 ‘약속대련’이라는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많은 국민에게 ‘윤·한 갈등’의 일련 과정이 약속대련인가 그렇지 않은가가 중요할까. 1970년대만 해도 WWE를 보고 ‘짜고 치는 쇼’라고 외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지금은 ‘쇼’라도 잘 만들어졌다면 이를 받아들이고 즐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실제 상황인지 아닌지를 떠나 좋은 스토리와 합으로 잘 만들어진 액션이기 때문이다.
결국 윤 대통령과 한 비대위원장의 갈등 과정이 만들어진 쇼인지 여부를 떠나 진정성 있게 잘 만들어진 액션이었는가가 국민에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금까지 과정은 투박하고 거친 액션 장면을 보는 것 같다. 국민의 시선은 윤 대통령과 한 비대위원장이 ‘김건희 리스크’와 같은 당면 문제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진정성과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느냐에 쏠리고 있지만 아직은 좋은 합을 보여주는 것 같지는 않다.
프로레슬링처럼 악이 아닌 선이, 그리고 국민의 편이 이기는 액션이라면 약속대련이건 실제 상황이건 대중은 즐거워하며 받아들일 것이다. 아직 두 사람은 링 위에 있다. 다음 액션이 궁금하다.
송용준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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