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군마현,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 철거 강행…“이해할 수 없는 폭거”
일본 군마현 당국이 현립공원 ‘군마의 숲’에 있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 철거를 강행한 것을 두고 일본 사회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30일 사설에서 군마현 당국의 조선인 추도비 철거와 관련해 “급작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폭거”라며 “즉시 중지할 것을 야마모토 이치타 군마현 지사에게 요구한다”고 밝혔다.
추도비는 2004년 일본 시민단체들이 한반도와 일본의 역사를 이해하고 우호를 증진하기 위해 설치했다. 하지만 일각에서 ‘반일적’이라며 철거를 요구했고, 군마현 당국은 2012년 추도비 앞 행사에서 ‘강제연행’(강제동원)과 관련된 언급이 나온 점을 문제 삼아 정치적 중립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추도비 설치 허가 갱신을 거부했다. 그 뒤 최고재판소는 군마현의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결했고, 현 측은 29일부터 철거에 들어갔다.
아사히는 “전쟁 이전의 일본을 미화하는 풍조가 강해지는 가운데 일부 세력의 항의를 받은 군마현이 정치적 중립을 방패 삼아 무사안일주의에 빠진다면 역사 왜곡을 돕는 것일 수 있다”며 “(이번 조치는) 매우 위험한 사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이 할 일은 과거사에 대해 열린 논의를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지, 스스로 논의의 장을 막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도쿄신문도 이날 군마현의 조선인 추도비 철거 소식을 전하며 학계의 비판 목소리를 전했다. 헌법학 전공자인 후지이 마사키 군마대 교수는 “시민 생활에 영향이 없는 추도비를 대상으로 행정대집행을 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비석을 둘러싸고 소동을 일으키면 철거될 수 있다는 나쁜 전례가 됐다”고 우려했다.
일본 내에서는 앞서 추도비 철거를 앞두고 정당을 비롯한 여러 사회단체들이 군마현 측에 이번 조치를 철회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예술가들을 포함해 4300여명이 서명한 요구서가 현에 제출됐고, 사민당도 행정대집행의 정지를 현에 요구했다. 일본 최대 개신교 교단인 ‘일본기독교단’도 현의 조치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일본 정부는 이번 논란과 관련해 지방자치단체 결정 사항이라며 입장 표명을 피하고 있다.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추도비 철거는) 지자체의 결정 사항이며 최고재판소에서 판결이 확정된 사안이라 정부는 코멘트를 삼가겠다”고 밝혔다.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도 기자회견에서 같은 답변을 되풀이했다.
군마현은 내달 11일까지 추도비 철거 작업을 완료할 계획이다. 철거 비용 약 3000만엔(약 2억7000만원)은 추도비를 설치한 시민단체에 청구할 방침이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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