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는 ‘이 사람’ 열풍에 한국 들썩…‘진짜 행복’ 뭔지 알려준다는데
강용수 서양철학 연구자 인터뷰
200년전 철학자에 매료된 한국
20만부 판매되며 서점가 ‘강타’
“가짜 위로 가득한 출판계에서
쇼펜하우어, 진짜 행복 알려줘”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 가마솥처럼 펄펄 끓다 싸늘하게 외면받는 책을 우리는 수도 없이 봐왔다. 그런데 서점가를 강타한 이번 쇼펜하우어 열풍은 좀 다르다. 4개월 넘게 1위 자리를 지키더니 결국 ‘판매부수 20만부’라는 꿈의 고지를 돌파해 버렸다.
이 모든 일의 시작에 고려대 철학연구소에 재직중인 서양철학 연구자 강용수 작가가 있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쓴 강 작가를 29일 사당역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실은 처음 출판사 제의를 받고 머뭇거렸던 책이었습니다. 철학책을 이토록 많은 분께서 읽으시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 정도로 귀하고 감사한 일이에요.”
“서점가엔 수년 간 세대와 처지를 위로하는 책들이 다수였고, 대개 노력이나 희망을 강조했어요. 쇼펜하우어 철학엔 그런 방식의 ‘헛된 위로’가 없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일단 ‘모든 인생은 고통’라는 명제를 깔고 그 위에서 고통을 직시하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 말로 하자면 ‘팩트 폭행’이고 ‘뼈를 때리는’ 말일 거예요(웃음).”
쇼펜하우어가 보는 인간 고통의 원인은 ‘의지와 만족 사이의 불합치’다. 세상이 살고자 하는 의지로 가득차 있다는 점이 쇼펜하우어 사상의 출발점인데, 대개 이 의지는 불만족스런 결론으로 귀결되기에 심연에 고통을 준다.
“고통은 인생의 무게추에요. 삶이 험한 바다로의 항해라면, 고통이 있어야 인간이란 배가 균형을 잡지 않을까요. ‘인간이 모든 고뇌와 고통을 지옥으로 보내 버린 천국에는 무료함 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은 고통의 당위성을 말해줍니다.”
두 번째 질문. 그렇다면 고통을 인정하고, 동시에 고통을 ‘기꺼이’ 수용하는 자세만이 쇼펜하우어가 찾은 인생이란 문제의 유일한 해답일까. 강 작가의 책은 여기서 현대인에게 ‘쾌락의 이분법’을 주장하는데, 이를테면 가짜 행복과 진짜 행복의 구분이다.
현대인은 고통의 본질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려 쾌락에 몰두하는데, 대개 자본과 명성으로 귀결된다. 돈이 많길 바라고 자기 명예를 드높이는 길을 평생 추구한다. 물론 이런 외적 가치를 쇼펜하우어는 부정하지 않았는데, 이런 행복은 ‘남들도 좋아하는 행복’이란 거다.
“보편적인 행복은 타인도 좋아하는 행복들이에요. 그런데 자기만 아는 진짜 행복은 궁극적으로 ‘나’만 좇을 수 있습니다. 정작 돈이 많아지면 돈으로 느끼는 행복감이 급감하는 한계효용의 법칙처럼요. 무게중심을 바깥에서 안으로 옮겨야 합니다.”
“쇼펜하우어가 대표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발표한 건 고작 서른 살이었어요. 하지만 아무도 그의 천재성에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빛을 발한 건 나이 마흔 중반인데, 그런 점에서 보면 쇼펜하우어와 나이 마흔의 현대인은 무관하지 않을 거예요. 삶의 전환점인 40대를 돌고나서 혹여 헛살았다는 생각이 들 무렵에 펼칠만한 철학자이죠.”
강 작가가 철학의 길을 택한 이유도 쇼펜하우어의 책 ‘삶과 죽음의 번뇌’ 때문이었다. 그 길로 고려대 철학과를 택했고, 수업을 듣고 논문을 쓰다 먼저 니체에 도취됐다.
2002년 학계에서 “거대한 과제”(학술지 ‘니체 스튜디엔’)라고 평가받은 강 작가의 의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박사학위 논문도 니체였는데, 강 작가는 마음 한켠에선 니체의 허무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방법으로서 쇼펜하우어 문장에 심취했다고 회고한다.
“사실 니체가 철학의 길을 택한 이유도 쇼펜하우어 때문이었어요. 젊은 니체가 책방에서 쇼펜하우어 책을 읽고 철학을 결심했으니까요. 마지막까지 가슴에 품을 쇼펜하우어 문장으로는 이걸 꼽겠어요. ‘삶은 진자처럼 고통과 무료함(권태) 사이을 왔다 갔다 하는데, 사실 이 두 가지가 삶의 궁극적인 요소다.’ 고통과 무료함 사이에서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인간의 본질이 아닌가 늘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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