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7개 토후국 중 가장 큰 지역이자 수도인 아부다비에는 그랜드 모스크라 불리는 셰이크 자이드 그랜드 모스크를 비롯해 루브르 아부다비 등 세계 최대의 문화자산들이 모여 있다. 2023년 3월 이곳 아부다비 문화지구에 새로운 문화복합단지가 완공되었다. 바로 ‘아브라함 가족의 집’이다. 아브라함 가족의 집은 아브라함 종교라는 같은 뿌리를 가진 이슬람, 가톨릭, 유대교의 예배당인 모스크, 성당, 시너고그가 디자인은 다르지만, 같은 면적에 동일한 재질의 건축물로 이루어져 있다. 평화적 공존과 종교 간 이해를 상징하는 아브라함 가족의 집 프로젝트는 2019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UAE 방문 당시 아부다비 왕세제, 두바이 통치자, 그랜드 이맘이 함께 주춧돌에 서명하면서 시작되었다. 2020년에는 UAE, 이스라엘 양 국가 간의 아브라함 협정 체결을 이끌어내었다.
아브라함 가족의 집은 웰컴센터 위에 이 세 예배당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공동의 정원이 있으며, 한 공간에서 이 3대 종교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의미 있는 장소이다. 하지만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한참인 시기에 이곳을 방문하는 마음 한편은 불편하기만 했다. 연일 보도되는 가자지구 내 민간인 거주지를 향한 무차별 폭격, 자녀의 차가운 주검 앞에서 절규하는 어머니들, 가족들을 땅에 묻자마자 프레스가 적힌 방탄조끼를 입고 현장으로 뛰어드는 기자들의 모습을 보며 평화롭고 멋진 이 아브라함 가족의 집의 참의미가 무색하게 느껴져서다.
30일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한 지 115일째가 되는 날이다. 2023년 10월7일 하마스 공격 이래, 사망자는 2만7000명 가까이 되며, 부상자는 6만5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최근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인질과 수감자 교환을 조건으로 1~2개월간의 휴전에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되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저강도의 지상전을 펼치고는 있지만, 가자지구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는 여전히 복잡하게 얽혀 있어 앞으로도 장기적으로 국제적인 노력과 관심이 요구된다.
두바이와 아부다비 곳곳에서는 ‘Free Palestine’이 적힌 포스터와 아이러니하게도 ‘팔레스타인’과 관련된 아름다운 장식들을 볼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전쟁에 대한 환기와 종전 요구가 허울뿐인 구호와 장식으로 남지 않게 전 지구적인 목소리들이 함께해야 할 때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종교 간 분쟁이라고만 보기는 힘들다. 종교를 내세운 오래된 역사와 양측의 내부 정치,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들과 무슬림 공동체라 부르기 어려운 이슬람 국가들 간의 속내와 실리 챙기기 등 그야말로 잔혹한 현실 국제 정치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평화로운 공존의 가치라는 아브라함 가족의 집의 참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때이다. 주디스 버틀러는 책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에서 누구든 어디에 살지는 선택할 수 있어도, 지구상에서 함께 살 이를 선택할 수는 없다고 단언한 바 있다. 버틀러의 말처럼 권리와 땅을 박탈당했던 유대 민족의 경험을 기억하고, 더 이상 가자지구의 민간인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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