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양승태의 무죄, 조희연의 유죄
유무죄의 경계가 무엇일까? 사법부의 전직 수장이 피고가 된 사건에서 재판부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직권남용과 공모 혐의 모두에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에 논란이 야기되고 있다. 반대로, 현직 교육감이 피고가 된 사건에선 재판부가 조희연 서울교육감의 직권남용에 유죄를 선고했다. 결이 다른 두 선고는 후속 재판에서 다시 다루어지겠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직권남용 무죄와 조희연 교육감의 직권남용 유죄를 바라보는 마음은 매우 혼란스럽다. 두 재판부를 맞바꿔서 다시 재판해보는 비현실적인 상상도 해본다.
현실 바깥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범죄 사건을 다룰 때 인용하는 대중적인 표현으로 “숨기는 사람이 범인”이고 “이익을 보는 사람이 범인”이라는 말이 있다. 이 표현을 두 사건에 대입하면 양승태는 숨긴 것도 없고 이익을 본 것도 없다는 것이고 조희연은 숨긴 것이 있거나 이익을 본 것이 있으리라는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해직 교사 5명을 특별채용 형식으로 복직시키는 과정에서 조희연 교육감은 무엇을 숨기고 어떤 이익을 보았을까? 이미 공수처와 검찰에서 충분히 확인했겠지만 해직되었던 교사들이 교단으로 다시 돌아온, 특별히 숨길 것도 없고 이익 볼 것도 없는 단순한 사건이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저출산과 지역소멸 등 수많은 난제를 안고 있는 데다 사회적 갈등이 증가하는 것도 걱정이다. 교육 영역에도 유사한 갈등이 많다. 해직 교사의 복직 문제도 그 하나였다. 그런데 선출직인 개혁적 교육감이 당면한 갈등을 해결하고 교육 현장을 안정화시켜 더 나은 미래의 교육으로 나아가자는 차원에서 적극행정의 방식으로 특별채용을 추진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교육감이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교단의 안정과 발전을 위한 화해 조치와 적극행정이 오로지 위법의 관점에서만 전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개인적으로 두 차례 실정법과 마주한 경험이 있다. 2000년에 총선시민연대를 결성하여 낙선운동을 했다. 구속을 각오하고 부패정치를 청산하겠다고 공언한 터여서 말없이 재판을 받았는데 재판부가 실정법 위반 혐의에도 불구하고 부패정치 청산의 공익을 감안하여 관대한 처분을 내려주었고 국회도 법을 개정하여 낙선운동 자체가 합법화되었다. 그 후에 사학 민주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실정법 위반을 이유로 기소되었다. 1심에서 금고형의 구형을 받았지만 벌금으로 경감되었고 상급심에서 선고 유예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가 실정법 위반과 사학 민주화라는 공익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준 것이다.
뉴욕 맨해튼 근처의 라과디아 공항은 전임 시장인 피오렐로 라과디아의 이름을 딴 공항인데 그에 대한 ‘전설’이 있다. 대공황 시절인 1935년 1월. 당시 판사였던 라과디아는 빵 한 조각을 훔쳐 기소된 불쌍한 노인을 재판하면서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당시로서는 큰돈이었다. 초범인 데다 식구들이 굶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여 선처를 기대했던 법정이 웅성거렸다. 그때 판사는 노인을 굶주리게 한 공동의 사회적 책임을 물어 판사인 자신도 10달러의 벌금을 내고 방청객들에게도 50센트의 벌금을 권고했다. 10달러의 벌금을 내고도 47달러 50센트를 마련한 노인은 재판부의 현명한 결정 덕분에 다시는 빵을 훔치지 않아도 되었다.
역사에서 진보란 이익 갈등의 현실 속에서도 공익적 가치의 선한 영향력으로 실현될 미래의 정의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과 같은 것이다. 유죄와 무죄 사이를 가로지르는 강은 육법전서가 들어갈 만큼 강폭이 넓은데, 유죄가 아닌 것은 모두 무죄라는 판단이 양승태 무죄론의 전제라면 무죄가 아닌 것은 모두 유죄라는 판단이 조희연 유죄론의 전제인가 싶다. 이것은 정의의 최소 출발점인 공정함의 실종 아닌가?
정대화 국가교육위원회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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