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일 칼럼] 고동진·공영운, 기업인들은 왜 국회로 가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 반도체·배터리 기업들의 대미 투자 유치를 자랑하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모든 수입 자동차에 대한 관세 부과 카드를 꺼내며 미국 자동차 산업에 러브콜을 보냈다.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공화 양 진영의 유력 후보들이 경제와 일자리를 전면에 내세워 표심 잡기에 나선 듯 하다.
4월 총선을 앞둔 우리 정치권에서도 경제 살리기가 화두로 떠올랐다. 선거 초반부터 여야 정치권의 기업인 인재 영입 경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 22일 국민의힘이 고동진 전 삼성전자 사장 영입을 발표하자,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역시 공영운 전 현대자동차 사장 영입식을 했다.
고 전 사장은 삼성전자 모바일 사업을 선도한 '갤럭시 신화'의 주역으로 이름을 알렸고, 공 전 사장은 홍보실장과 전략기획담당 등을 역임한 '전략기획통'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역시 경제 전문가를 자처하며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 등을 정계 진출의 포부로 내세웠다. 이 밖에도 박영춘 전 SK 부사장, 이재성 전 엔씨소프트 전무, 강철호 로봇산업협회 회장 등도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이다. 이번 총선의 최대 변수 중 하나로 꼽히는 개혁신당 역시 창당 이후 총선 1호 인재로 이창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 부회장을 영입했다.
매번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경제 전문가 영입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여야 정치권의 경제인 영입 경쟁은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최근의 경기 침체와 일자리 위기를 만든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만 영입했을 뿐, 경제 살리기보나는 총선 승리에만 집착하는 모양새다. 경제계가, 특히 중소기업들이 간절하게 요구하는 '중대재해처벌법 50인 이하 적용 유예' 법 개정안과 방산 수출 금융 지원 등을 위해 정책지원금 자본금 한도를 현행 15조원에서 30조원으로 늘리는 수출입은행법 개정안,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 등은 속칭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대장동 50억 클럽 의혹 특검 도입 법안) 여야 공방에 휘말려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정쟁과 내홍에 휘말린 여야 정치권은 별 다른 성과 없이 이틀 뒤 1월 임시국회를 마무리한다. 그나마 여야가 2월 임시국회 개회에 합의해 민생·경제법안 처리의 시한을 한 달 더 벌긴 했지만, 과거 경험을 비춰볼 때 기대감보다는 피로감만 더 쌓일 것이라는 우울한 예감만 든다.
이 대목에서 새삼 미국 대선이 부럽기만 하다. 우리 수출에 대한 유·불리를 떠나서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와 친환경차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동차 등 자국 제조업 보호를 경제 살리기의 해법으로 제시하며 정책 대결을 펼치고 있다. 물론 미국 역시 우리 정치권처럼 상대방 흠집내기에 몰두할 때도 있지만, 정책은 정책대로 확실한 방향성을 보여준다.
그에 비해 우리 정치권의 정책적 방향성은 흐릿하다. 노사 갈등이 극명한 중대재해처벌법이나 지역 표심에 영향을 주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특별법'과 같은 민감한 법안은 최대한 미루고, 선심성 공약 남발과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하고 있다.
소수여당이 처리하지도 못할 정부의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폐지를 표심잡기 용으로 내세우는 것이나, 박근혜 정부 때 만든 법이니 현 대통령이 먼저 사과를 해야 한다는 거대야당의 억지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여야 정치권의 잇단 경제인 영입이 과거처럼 '일회용'인지, 정말 '경제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인지 여부는 2월 임시국회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여야가 정말 통 큰 결단을 내려 꼬인 매듭을 풀 지, 아니면 매번 그렇듯 흠집내기용 무대로만 활용할 지에 따라 그 진정성이 판가름 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최근 김예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의 활약상을 보면 경제인 출신 정치인들이 적극 참고할 만하다. 올 초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남들보다 두툼한 의정보고서를 들고 온 그는 정보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위한 자신의 노력을 일반 글씨와 점자, 음성 등이 포함된 배리어 프리 등 3개 버전으로 만들었다. 비례대표에 초선인 국회의원이 여의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안타깝지만 아주 제한적이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이 하나씩 모인다면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정치권이 될 것이다.
이번에 영입된 경제인들도 당 지도부의 속내가 어떻든 이처럼 경제 살리기를 위한 '바른 말'과 '행동'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명예도 높고 경제적으로 최정점인 대기업 경영진의 지위까지 올랐다면, 이제는 '재능 기부'를 통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데 일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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