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구속 위기' 새 주장 나성범의 KIA 향한 직언 "우리가 야구 열심히 할 수 있게 해줬으면" [인천공항 현장 인터뷰]
나성범은 30일 인천국제공항에서 호주 스프링캠프 출국을 앞두고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그냥 우리가 야구를 열심히 할 수 있게 많은 지원을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뼈 있는 말을 남겼다.
주장으로서 '이런 상황'에서 KIA 코치들에게 바라는 점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이런 상황'이란 최근 KIA 구단을 강타한 김종국(51) 전 감독의 배임수재 논란이었다. 지난 29일 오후 KIA는 김종국 감독의 해임을 전격 발표했다. 그날 오전 김 전 감독에게 검찰의 구속 영장이 청구된 사실이 알려진 지 반나절만의 일이었다. 하루 앞서 28일 KIA는 김 전 감독에게 직무 정지 처분을 내렸다. 김 전 감독에게 구속 영장이 청구된 것은 지난 24일이었으나, 따로 구단에 보고하지 않았고 KIA는 외부 제보를 통해 25일 해당 사실을 파악했다. 27일 김 전 감독과 면담 자리에서 이를 최종적으로 확인했고, 이때만 해도 김 전 감독은 결백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이 받는 주혐의는 배임수재죄다. 특정 업체가 KIA 구단과 스폰서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1에 따르면 특정 업체는 KIA 구단 후원사 중 하나인 A 업체로 김 전 감독과 장 전 단장은 각각 1억 원대와 수천만 원대 금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형법 제357조(배임수증재)에 해당하는 배임수재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것으로 정의된다. 해당 죄를 범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이와 같은 사실이 29일 알려지자 KIA는 "검찰 수사 결과와 상관없이 '품위손상행위'로 판단해 김종국 감독과 계약 해지를 결정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후임 감독을 선임할 예정"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날 오전 김 전 감독은 장 전 단장과 나란히 유창훈 영장 전담 부장판사의 심리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했다. 약 2시간의 심리를 마치고 구치소로 향했고 오후 6시 30분 기준으로 구속 영장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두 사람은 법원에 출석해 취재진으로부터 "뒷돈을 받았습니까", "혐의를 인정합니까", "팬들에게 한 말씀해 주시죠" 등 여러 질문을 받았으나, 침묵으로 일관했다.
김 전 감독이 구속될 위기에 처하고, 날벼락이 떨어진 건 다름 아닌 선수단이다. 특히 올 시즌 KIA는 숱한 부상에도 끝까지 순위 싸움 한 지난해 전력에 이번 겨울 외국인 선수 보강을 착실하게 마치면서 외부로부터 우승권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기뻐야 할 첫 발걸음이 검찰에서 날아온 충격적인 소식에 무거워졌다. 이날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 소집된 선수단은 오전 11시 30분 공항으로 출발했다. 나성범, 양현종(36)에 따르면 출발 전 심재학 KIA 단장은 선수단을 배웅하면서 "이런 분위기에서 떠나게 해 미안하다. (감독 선임 등) 이런 일은 정말 위에서 결정하기 때문에 선수들은 신경 쓰지 않고 시즌만 생각하고 잘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선수단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나성범은 "지금은 뭐라 이야기할 건 아닌 거 같다. 감독님(김종국)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일단은 스프링캠프를 시작했으니 캠프에 집중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을 아끼며 "캠프가 어떻게 보면 한 해 야구를 시작하는 날이라 오랜만에 보는 선수도 있다. 다들 웃고 좋은 분위기 속에서 시작하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다고 선수들이 너무 고개를 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분이 새로운 감독으로 오실지 모르겠지만, 빠르게 오셔서 팀이 다시 시작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 선수들에게 너무 동요되지 말고 준비하던 대로 하자고 했다"고 전했다.
올 시즌 KIA는 우승 전력으로 꼽힌다. 염경엽 LG 감독이 지난 5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신년회에서 2024시즌 가장 위협적인 팀으로 KIA와 KT 위즈를 꼽은 후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전력에서도 크게 밀리지 않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성범은 "주변에서 정말 좋게 봐주시더라. 나도 그거에 걸맞게 준비를 잘해야 할 것 같고, 나뿐 아니라 모든 선수가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그렇게 하나하나씩 천천히 준비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오프 시즌을 준비했을까. 지난해 나성범은 종아리와 햄스트링 쪽 부상으로 58경기를 소화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58경기 타율 0.365(222타수 81안타) 18홈런 57타점 51득점, 출루율 0.427 장타율 0.671로 괴력을 보였다. 풀시즌으로 환산하면 충분히 MVP도 노려볼 수 있는 성적이었다. 이에 나성범은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났다. 그 감이 유지된다는 보장도 없고 그 좋은 감을 이어가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반복 훈련을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지난해 하체를 많이 다쳐서 그 부분에 조금 더 신경 써서 운동했다. 만족도는 모르겠지만, 내 나름대로 잘 준비한 것 같다"고 웃었다.
나성범으로서는 2019년 NC 다이노스 시절 이후 프로 커리어 두 번째 주장직이다. 하지만 2019년 당시에는 시즌 초 십자인대 부상으로 일찌감치 시즌을 마감하면서 주장직도 금방 내려놓았다. 주장으로서 풀시즌은 치러본 적이 없는 셈이다. 나성범은 "주장이라고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거 같다. 주장이라면 어려워하는 선수들이 있으면 조금 더 도움이 되는 말을 하고, 한마디 해야 할 때는 또 해야 한다"고 소신을 밝히면서 "또 선수와 코칭스태프 간에 소통할 때 선수를 대변하는 것이 주장이라 생각한다. 나도 내 나름대로 준비 잘하고 선수단 분위기가 처지지 않게 가족처럼 파이팅을 불어 넣으려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선수단을 대표하는 주장으로서 KIA 구성원에 바라는 첫 일성은 의미심장했다. 코치진에게 바라는 점이기도 하지만, 선수단과 더 나아가 구단 관계자들에게 부탁하는 말이기도 했다. 나성범은 "호주에 가서 진갑용 수석코치님과 많은 대화를 해봐야 할 것 같다"며 "그냥 우리가 야구를 열심히 할 수 있게 많은 지원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분위기가 이렇다 해서 선수와 코칭스태프마저 여기서 더 다운되면 또 한 시즌을 망칠 수 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코칭스태프와 우리 모두 빠르게 분위기 전환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투수조 최고참 양현종 역시 선수단을 다독였다. 양현종은 "나도 이런 일이 처음이어서 당황스럽다. 지금으로서는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다만 우리는 캠프를 가는 길이기 때문에 캠프를 잘 준비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일로 눈치를 보거나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올해 스스로 생각했던 각오나 목표를 다시 마음 속에 새기면서 비행기에 올랐으면 좋겠다"고 선수들에게 부탁했다.
건강상 이유가 아닌 이유로 수장 없이 스프링캠프에 나가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프로 커리어 18년 차의 대투수도 충분히 당황할 상황이지만, 예상 외로 의연했다. 양현종은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임을 전제로 하면서 "모든 결정은 감독님이 하시겠지만, 솔직히 말해 스프링캠프 때는 코치님들이 정말 많이 도와주신다. 스프링캠프 초반만큼은 정말 감독님이 나설 상황이 많이 없다"고 전했다.
이어 "스프링캠프만큼은 선수들에게 많이 맡기는 분위기다. 나도 스프링캠프를 많이 가봤지만, 항상 이 시기만큼은 선수들에게 맞춰져 있다. 항상 우리들이 몸을 만들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 경기에 나갈 준비를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사실 감독의 공백이 크게 와닿거나 빈자리를 어떻게 해야 하지 같은 생각은 아직 성급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투수조를 향한 당부의 말을 묻는 질문에는 선수보다 새로운 투수 코치와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KIA는 지난달 정재훈(44) 전 두산 베어스 투수코치와 이동걸(41) 전 한화 이글스 코치를 각각 1군 투수코치와 1군 불펜코치로 영입했다. 정 코치는 2003년 프로 데뷔 후 주로 두산에서 활약하면서 통산 14시즌 동안 35승 44패 139세이브 84홀드 평균자책점 3.14를 기록한 스타급 플레이어였다. 날카로운 제구와 명품 포크볼을 바탕으로 세이브와 홀드 부문 각각 1위에 올랐고 2016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뒤엔 두산에서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 코치는 2008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1군 데뷔해 2018년 한화에서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통산 성적은 84경기 2승 1패 3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4.93으로 두드러지지 않으나, 학구파 코치로 유명하다.
양현종은 "우리 투수 코치님이 두 분 모두 새로 바뀌셔서 대화를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마무리 캠프에 참여했던 선수들은 당연히 코치님들의 성향이나 성격을 파악했겠지만, 나를 비롯한 1군 주요 선수들은 코치님들을 처음 뵙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스프링캠프에서 서서히 대화를 많이 해 나가면서 하나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코치님들과 선수들 중간에서 내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양쪽 모두와 상의를 잘하면서 기분 좋게 캠프를 잘 마무리하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한편 KIA 구단은 이러한 선수단의 뜻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KIA 구단은 김 전 감독 경질 후 곧바로 "김종국 감독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로 KIA 팬과 KBO 리그를 사랑해 주시는 모든 야구 팬, 그리고 KBO 리그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관계자께 걱정과 심려를 끼쳤다"면서 "이번 사안에 큰 책임을 통감하며 과오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감독 및 코칭스태프 인선 프로세스 개선, 구단 구성원들의 준법 교육 등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하겠다. 또한 향후 구단 운영이 빠르게 정상화 될 수 있도록 후속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공식 사과문을 통해 고개를 숙였다.
수장을 잃은 KIA는 호주 캔버라(1차)와 일본 오키나와(2차)에서 스프링캠프를 진행한다. 이번 캠프에는 김 전 감독을 제외한 코칭스태프 19명, 선수 47명(투수 22명, 포수 4명, 내야수 12명, 외야수 9명) 등 66명의 선수단이 참가한다. 2024년 신인 가운데에서는 투수 조대현과 김민주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호주 캔버라에서 '3일 훈련 1일 휴식' 체제로 체력 및 기술, 전술 훈련을 소화한 뒤 2월 21일 일본으로 건너가 3월 6일까지 오키나와 킨 구장에서 본격적인 실전 체제에 돌입한다.
2월 25일부터는 KT와 연습경기를 시작으로 KBO 리그 팀들과 5차례의 연습경기가 예정돼 있다. 27일 일본 프로야구팀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연습경기를 치를 계획이다.
인천국제공항=김동윤 기자 dongy291@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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