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기사 배차 제한’ 속수무책 당할 수만은 없잖아요

한겨레 2024. 1. 30. 18:5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3회 비정규 노동수기 공모전 최우수상
지난해 11월13일 위풍당당 여성대리기사모임 성평등교육 모습. 필자 제공

이혼의 아픔을 안고 삶의 길을 잃어 세상을 한탄하며, 또한 나 자신을 미워하며 방황할 때쯤으로 기억된다. 마음은 혼란스럽고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이 눈에 밟혀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생활을, 환경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날 또한 거리를 배회하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을 때, 어디선가 대리 부르는 소리가 들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 라페스타거리로 기억된다. 많은 사람이 양손에 또는 한손에 핸드폰을 들고 무언가를 쳐다보며 웅성웅성하며 바쁘게들 움직이는 게 무척이나 궁금했다.

평소 별로 말도 없고 도도했던 나 자신이 놀랄 정도로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을 하는 거냐고. 옆에 서 있는 남자가 대리기사라고 했다. 순간 ‘대리기사? 대리기사가 뭐 하는 거지?’ 하며, 많은 의구심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에게도 ‘대리기사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넌지시 말을 건네왔다. 내 나이 48살, 그리고 여자인데도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나이 제한 없고, 혼자서 하는 프리랜서 같은 일”이라 했다.

정말 멋져 보였다. 가입방법을 물어보니 어느 대리기사 사무실을 알려주었다. 무작정 찾아가 나도 할 수 있냐 물어보니 간단하다며, 운전면허증과 가상계좌에 입금만 하면 다음날부터 일할 수 있다고 했다. 그날로 가입하고 집으로 돌아와 많은 고심을 하며 다음날부터 일을 시작하기 위해 마음가짐을 다졌다. 그렇게 일을 시작한 곳이 고양시 행주산성이었다. 식당가가 있고 한적하여 오후 2시부터 일을 시작했다.

처음 일을 시작해서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 없고 지리도 제대로 몰라 당황할 때도 부지기수였다. 그래도 난 용기를 갖고 한콜 한콜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대리기사로 일을 시작한 지 몇개월이 흘렀을까? 그럭저럭 많은 돈은 아니지만 조금씩 매출을 올리며 한계단 한계단 밟고 올라가던 중 뜻하지 않게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 사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손님이 갑자기 ‘나와 같이 놀자’는 둥 ‘오늘 일당 줄 테니 어디 가서 쉬었다 가자’는 둥, 갑자기 손이 어깨에 올라오는 일 등 난감한 상황이 생기곤 하였다. ‘이 일이 과연 내가 가야 하는 길인지’ 싶어 또 한번 난관에 부딪혔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심하던 중 어느 법인대리기사가 법인대리기사를 모집한다고 얘기를 해줘서 법인에 가입했다. 특정 법인의 콜(호출)만 받아 소화하는 법인대리기사는 법인 임원분들이 주 고객이어서 요금체계는 물론 문을 열어주거나 대기하는 요령 등 고객응대 방법까지 차이가 있었다. 법인기사를 하다 보니 마음도 생각도 행동도 더욱 조심하게 되며, 또한 일반대리보다 조금 더 많은 요금을 받게 되니 일하는 게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법인대리기사 일에 매진하며 일하고 있는데, 또다시 난관에 부딪히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건 다름 아닌 여성기사 배차금지였다. 콜을 잡고 수행하려면 갑자기 상황실에서 여성기사는 배차 제한이라는 말과 함께 호출 창이 없어지거나 아예 콜 창 자체가 보이지 않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어느 날엔 콜을 잡고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는데 갑자기 전화가 걸려 왔다. 법인 사무실이었다. 다짜고짜 ‘여성기사 배차 제한이어서 콜을 뺀다’는 말 한마디로 콜 창에서 콜을 빼 버렸다. 순간 고속도로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얗게 멈추면서 자칫 사고로 이어질 뻔하기도 했다. 고객을 만나러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캔슬(취소) 맞는 경우는 법인기사 10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었다.

너무 기분이 상하여 여기저기 상담하던 중에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는 동료 여성대리기사가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가입을 권유했다. 가입해서 함께 싸우면 해결할 수 있다고. 나와 똑같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있던 동료 여성기사는 먼저 노조에 가입해서 노동조건을 바꾸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강성노조”라는 언론보도가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선뜻 가입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다 노동조합에 한결같은 지지를 보내는 동료 여성기사의 모습을 보고 나도 여성기사의 노동환경을 함께 바꿔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 가입했다.

한달, 두달 노조교육을 받을 때마다 신기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다. 아니, 알고도 당해야만 했던 일들을 전국대리노조에서 협력하여 문제해결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에 그간 나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게 너무나 창피했다.

대리노조 가입과 동시에 왠지 모를 자신감이 나를 한층 더 당당하게 만들어 주었다. 내가 교육받았던 고용보험·산재보험법 내용 등은 나 혼자 알기에 아까워 홍보대사처럼 여기저기서 기사들에게 전하고 다녔다. 물론 전국대리노조에 참여하라는 말과 함께. 그런 홍보에 열을 올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입가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나 자신을 한층 더 단단하게 만들어 가는 것 같아, 오늘도 기사들만 만나면 열변을 토해낸다.

아직 여성차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지만, 우리 여성대리기사들은 이 문제만큼은 반드시 우리 선에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기에, 오늘도 여성기사 배차 제한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도 오기로 콜을 수행하고 있다. 대리 12년 차에 몸도 마음도 지쳐있지만, 잃은 것보다는 얻는 게 더 많았던 시간이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내가 열심히 뛰는 만큼 수입은 늘어나고 게으른 만큼 낙오되기에, 긴장에 긴장을 더하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오늘도 기약 없는 콜 창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라고 플랫폼노동자라고 불리지만 언제쯤 노동자로 인정받고 정식으로 대리운전법이 만들어질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이 일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는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대리기사가 없다면 우리나라는 음주운전의 천국이 되고, 음주사고로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을 것이다. 바라건대 반드시 비정규직, 특수형태노동자, 프리랜서, 온라인기반 플랫폼노동자가 모두 근로자성을 인정받고 정식으로 근로자기준법 적용을 받는 노동자 대우를 받는 날이 오길 원한다.

지난 22일 위풍당당 여성대리기사모임 때 명숙(오른쪽) 인권활동가로부터 꽃다발을 받았다. 필자 제공

여성 법인대리운전기사들 모임을 시작했다. 이름은 위풍당당여성대리기사모임이다. 지금은 두명으로 시작해서 어디까지 갈지 모르지만 전국의 여성 대리운전기사들이 차별받지 않고 당당한 노동의 권리를 찾을 때까지 배우면서 함께 맞서 싸워나가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희망을 가져본다.

최민자 대리운전기사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주최한 ‘13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입니다. 한겨레는 해마다 수상작 일부를 게재해왔습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