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R 0.9배’ 저평가 한국증시…진짜 문제는 낮은 ROE [투자뉴스 뒤풀이]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 주가순자산비율(PBR)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결하겠다면서 PBR이 매우 낮은 기업은 집계해 공개하겠단 방안을 금융당국이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실 이 방안은 지난해 일본이 먼저 써서 톡톡히 효과를 봤습니다. 일본은 정말 주식투자를 안 합니다. 일본 가계는 자산의 54%를 현금성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주식비중은 11%에 그치죠. 미국의 거의 정반대입니다. 현금성 자산 비중이 12~13%정도고 주식이 40% 입니다. '잃어버린 30년' 간 맥을 못 춘 증시가 원인이겠지만, 동시에 이 때문에 올라가야할 증시가 오르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져 있는 것이죠.
이를 끊기 위해 일본 도쿄증권거래소가 정말 다양한 촉진책을 썼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지난해 4월 PBR 1배 미만인 상장사에게 주가 상승 개선안을 마련하도록 요구한 것입니다. 만약 제대로 방안을 만들지 못하면 하위 등급 시장으로 강등하거나 아예 상장폐지까지 시켜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놨습니다.
일본 증시가 여러가지 이유로 올랐겠지만, 부랴부랴 기업들이 도쿄증권거래소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움직이면서 주가를 끌어올렸습니다.
그럼 이제 PBR에 대해 알아보죠.
▶PBR은 시가총액을 장부상 순자산가치(=자본)로 나눈 것입니다. 순자산은 재무상태표상 자산에서 부채를 뺀 것이니 자본과 같은 말입니다. PBR이 1배도 되지 않는다는 것은, 차라리 이 기업을 지금 그냥 청산해서 주주들끼리 나눠 먹는 게 더 나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때문에 보통 PBR 1배 미만은 어떤 기업의 주가가 극심한 저평가에 있다는 판단을 하는 기준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몇몇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증시 전체(=코스피)의 PBR이 1배가 되지 않습니다. 한국거래소 기준 지난 29일 0.91배입니다. 그것도 아주 오랜기간.
이는 '우리나라 증시가 저평가 돼 있다'라고 말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저절로 저평가가 해소돼 증시가 오를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주가 상승이란 게 정안수 떠놓고 보름달에 기도를 드리는 것과는 달라야지 않겠습니까.
PBR이 오르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겠죠. 분자인 주가가 올라가거나, 분모인 자본 규모가 작아지면 됩니다. '저평가' 해소를 기대할 땐 일반적으로 분자인 주가 상승을 기대합니다. 이렇게나 주가가 낮은 상태니깐 곧 투자자들이 몰려올 것이고, 그러면 주가는 올라갈 것이란 기대죠.
하지만 주가 상승은 누가 일부러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에 하나 그렇다면 시세조종이죠. 붙잡혀 갑니다.) 더군다나 이렇게 오랫동안 '저평가'라면 저평가라고 할 수도 없겠죠. 뭔가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뒤에 이야기하겠습니다.
아무튼 기업들이 당장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건 분모인 자본, 즉 순자산을 줄이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이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산의 현금이 줄고 자본도 감소합니다. 저PBR 해소를 위한 주주환원정책 확대를 기대하고 일부 종목 주가가 뛴 이유입니다.
▶여기까진 너무 평이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는 몇몇 기업뿐 아니라 아예 코스피의 PBR이 1배도 안 될 정도로 낮았던 것일까요?
ROE(return on equity)를 먼저 한 번 생각해보죠. 내 돈(자본) 대비 얼마나 수익(return)을 많이 냈느냐는 것으로, 주식 투자의 핵심 지표입니다. 높을 수록 자본을 잘 활용해서 돈을 많이 벌었단 뜻이죠.
제가 A라는 기업을 100억원 들여서 세웠는데 지난해 순이익이 10억원 났다고 해보죠. ROE는 10%입니다. 언뜻 생각해봐도 나쁘지 않은 결과죠.
그런데 만약 제가 이 기업의 주식을 단 한 주를 발행한다고 하면 독자분께선 이 주식에 얼마까지 돈을 넣으실 건가요?
이때 생각해야 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주식투자자에겐 '요구수익률'(required rate of return)이란 게 있습니다. 주식에 투자를 할 때 '최소한 이 정도는 벌어야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식의 요구수익률은 CAPM(capital asset pricing model)으로 구합니다. 노벨경제학상에 빛나는 이론으로, 무위험 금리(risk free rate)에 위험 프리미엄(ERP)를 더하고 시장위험(베타)만큼을 반영해 주는 것입니다.
그냥 '이런 게 있구나'라고만 아셔도 됩니다. 대략 지금 현재 국채 금리가 3.3%수준인데, 여러분이라면 위험자산인 코스피 투자해서 최소한 어느 정도 수익률은 돼야 만족하실까요? 최소한 대략 10%는 돼야지 않을까요?
다시 A기업으로 돌아와서 한번 생각을 해보죠. A기업에 투자를 하는데 올해도 ROE가 10% 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시다. 그리고 이 회사에 주식에 투자하는 독자분이 수익률 10%정도면 만족할 것이라고 해보죠. 즉, 요구수익률도 10%인 것입니다.
그럼 순자산이 100억원인 이 회사에 주식투자를 할 때 100억원의 주식 가치가 형성됩니다. 주식이 1주라고 했으니 시가총액도 100억원이죠. 그러면 이 회사의 PBR은 1이 됩니다. 즉, PBR이 1이란 건 A회사에 기대하는 ROE와 요구수익률이 같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회사의 자본수익률(ROE)이 요구수익률보다 낮으면 어떨까요? 순자산이 100억인 회사에 100억 들고 들어가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100억보다 낮아야 합니다. 따라서 주가(시가총액)은 장부상 순자산가치보다 낮습니다. PBR이 1배가 안되는 것입니다.
1월 29일 종가 기준으로 코스피의 ROE를 역으로 산출해보면 고작 4.96%에 불과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현재 우리나라 국채 금리가 3.3%입니다.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4%대입니다. 그런데 주식이란 위험자산의 ROE가 5%라니. 주식할 맛이 정말 나지 않습니다. 설마 코스피 투자하면서 1년에 5%만 먹으면 만족스럽다고 하실 분 계시진 않겠죠? 만약 우리나라 주식투자 하는 분들의 요구수익률이 5%라면 코스피 PBR은 1배가 될 것입니다. 5%만 벌어도 만족한다면 지금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때문에 우리나라 증시(=코스피)의 PBR이 1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두고 덮어놓고 '저평가'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ROE가 워낙 낮아서 주식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기준(=요구수익률)도 맞춰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증시의 낮은 PBR을 올리는 핵심은 ROE를 높이는데 있습니다. ROE가 높아지지 않는 한 PBR이 아무리 낮아도 '저평가'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럼 ROE는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요? 역시나 가장 좋은 건 분자인 이익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그렇게 단기간에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 분모인 자본을 줄이는 건 당장 올해부터 경영진의 선택에 따라 가능합니다. 보유한 현금으로 배당을 늘리거나 자사주 소각을 하는 것입니다. 미국 애플이 ROE를 꾸준히 늘려온 비결이기도 합니다. ([투자뉴스 뒤풀이] 애플은 성장주가 아니라고?…ROE 뜯어보기 / 2022년 4월 16일 참조)
사실 기업은 물론 나라 전체적으로도, 기업이 벌어들여 쌓아놓은 현금을 쓰는 가장 좋은 방법은 투자를 해서 돈이 돌게 하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경제 성장을 GDP로 계산한다고 하면, GDP = 소비 + 투자 + 정부지출 + 순수출(수출-수입) 입니다.
투자가 늘어나면 고용도 늘고 임금도 증가하면서 소비가 활성화돼 다시 기업의 투자가 증가할 것이란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이게 일반적인 경제학적 논리입니다.
하지만 그게 잘 안돼 왔습니다. 오죽하면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기업의 사내유보금에 과세를 하겠다는 방안까지 거론이 됐을까요. 이중과세 논란까지 불사하면서 기업들에게 투자하라고 으름장을 놓은 것입니다. 그만큼, 안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참 오랫동안 기업의 투자가 참 저조했습니다.
기업들이 투자로 돈을 풀지 못한다면 결국 방법은 소비로 돈이 풀리게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배당과 자사주 소각입니다. 주주들에게 직접 기업이 돈을 꽂아주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돌고 돌았지만 적극적 주주환원정책을 기대하고 최근 일부 종목 주가가 치솟은 이유입니다.
다만 이 방법은 당장 풀어줄 현금이 넉넉한 기업에겐 어느 정도 유용하지만 현금은 별로 없이 장부산 순자산 가치만 높은 기업에겐 '그림의 떡'입니다.
대표적으로 영업권(Goodwill) 때문에 장부상 자산과 자본이 많아 보여서 PBR이 낮아진 기업입니다. 장부상 자산으로 잡힌 것들 중에 '영업권'이란 게 있습니다. 용어 때문에 오해를 사기 딱 좋은 자산 항목 계정으로, 영업 활동을 하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특정한 권리를 지칭하는 게 아닙니다. 간략히,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이른바 웃돈을 준 것을 장부에 기록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M&A를 잘 해서 돈을 더 잘 벌어들이고 이익도 많이 남겼다면 좋았을텐데, 돈은 돈대로 쓰고 인수합병 성적은 신통치 않아서 매출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 자산에 떡하니 영업권은 차지하고 있으니, 이 영업권 때문에 PBR 배율이 낮아질 수 있습니다.
넷마블의 경우가 바로 그렇습니다. 넷마블의 PBR은 1배가 되지 않습니다. 이효진 메리츠증권 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말 기준 넷마블의 무형자산은 3조원에 육박하며 이 가운데 영업권이 2조2000억원에 달합니다. 이 영업권을 모두 손상처리하면 순자산은 3조원까지 하락해 PBR은 1배를 넘습니다.
또 당장은 현금 보유가 넉넉해서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을 할 수 있지만 앞으로 벌어들일 돈이 시원찮은 기업이라면 역시나 한계가 있습니다. 애플이 적극 주주환원을 할 수 있는 건 그만큼 안정적으로 매출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곳간이 비어가는데 언제까지고 마냥 배당 주고 자사주 사들여 소각을 할 순 없는 노릇입니다.
결국 한국증시 저평가의 상징인 PBR 1배를 깨기 위해서는, 당장은 기업의 적극적인 주주환원으로 분모인 순자산(=자본) 규모를 줄여야 합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적극적인 투자를 통한 수익성 개선과 자산효율화로 ROE를 높이는 것이 동반돼야 합니다. 모쪼록 우리증시가 '제값'을 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겠습니다. 정안수 떠놓고 기도합니다.
김우영 기자/CFA
#헤럴드경제에서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2020년엔 CFA 자격증을 취득한 뒤 CFA한국협회 금융지성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해야 하는 기자로서 사명감에 CFA의 전문성을 더해 독자 여러분께 동화처럼 재미있게 금융투자 뉴스를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kw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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