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도 못 댄 민생법안 산더미… 5번째 ‘도돌이표 정쟁’ [尹, 이태원특별법 거부권 행사]

조병욱 2024. 1. 30.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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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도 못 댄 민생법안 산더미
여소야대에 ‘尹 거부권 행사’ 잦아
전세사기법·산업은행 부산 이전 등
평행선 대치 계속… 국민들만 피해
2월 1일 합의 불발 땐 한 달 또 표류
“타협 실종된 한국정치의 현주소”

‘야당의 강행 처리, 여당의 거부권 건의,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와 재의결 공방.’

윤석열 대통령 임기 2년 사이 5번째 반복된 모습이다. 이에 따라 여야 대치 정국이 더 가팔라지면서 민생법안 처리만 지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이날 이태원참사특별법이 9건째다. 취임 후 2년이 채 안 됐지만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선출된 대통령 중 거부권 행사가 가장 많다. 김영삼·김대중·문재인 전 대통령은 거부권을 한 차례도 사용하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 등 2차례, 이명박 전 대통령은 택시법 개정안 1건에 대해서만 거부권을 행사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시작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6건, 노태우 전 대통령은 7건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깊어지는 여야 갈등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왼쪽 사진 가운데)와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오른쪽 사진 가운데)가 각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전문가들은 거부권 반복 행태가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정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대통령도 거부권을 그렇게 많이 사용하면 결국 부담이 되니 다수당과 대통령이 서로 자제를 해야 하고 여당도 그 관계에서 잘 조율해야 하는데 그게 전혀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당의 당내 민주주의나 거버넌스가 좋아져야 되고, 대통령도 의회 관계에 있어 자제력을 행사하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여야가 모두 합리적이라고 생각해서 강행 처리와 거부권을 반복하고 있다”며 “사회 공동선을 만들지 못했을 때 정치권에도 페널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는 것이 잦은 거부권의 이유”라고 진단했다.

이태원참사특별법이 다시 합의점을 찾을지는 미지수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 당은 그 법 자체를 반대한다기보다 이태원 참사를 통해 교훈을 얻고 피해자를 구할 더 나은 방안을 제시하려는 단계였다”며 “그 법은 국회의장이 중재했던 내용보다 훨씬 더 과격한 내용으로 민주당이 통과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합성이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며 “우리 당은 민주당과 그런 부분에 대해 협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해당 법에서 특검도 제외했고, 법안 시행도 총선 이후로 했으며 특별조사위원회 활동기간도 단축하는 등 여러 차례 양보에 양보를 거듭했다”며 “정당성 없는 거부권 행사는 대한민국을 참사에도 책임지는 사람 없고 사과하는 사람도 없고 진실규명 노력도 없는 나라로 추락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야당과 대통령이 연이은 강행처리와 거부권 행사로 맞서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사이 민생 법안만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을 유예하는 방안은 여야가 합의점을 찾지 못한 가운데 이날로 시행 사흘째를 맞았다. 또 전세사기특별법, 실거주 의무를 유예하는 주택법 개정안, 수조원대 방산 수출이 달린 수출입은행법,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담은 산은법 개정안 등이 쌓여만 가고 있다.
사진=세계일보 자료사진
국민의힘은 이날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기간을 당초 2년에서 1년으로 줄인 개정안을 다음달 1일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민주당에 제안했다. 김진표 국회의장도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조정안을 만들겠다며 중재에 나섰다. 윤 원내대표는 “필요하다면 유예 기간을 좀 줄이더라도 유예해서 현장의 어려움과 호소에 응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홍 원내대표는 “산업안전보건청 설치에 대한 의견을 가져오면 협상하겠다고 했는데 정부·여당만 모르쇠”라고 반박해 여야는 이날까지도 평행선을 달렸다.

한편 여야는 다음달 19일부터 2월 임시국회를 열기로 했다. 본회의는 29일로 잠정 합의했는데, 이 때문에 민생 법안들이 다음달 1일 처리되지 못하면 4주 더 계류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병욱·최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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