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억·반성·우호’ 짓밟는 군마현 강제동원 추모비 철거

한겨레 2024. 1. 3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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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 일본 시민들이 군마현의 '군마의 숲' 공원에 '강제동원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를 세웠다.

역사의 교훈을 성찰하면서, 한·일의 미래를 지향하려는 시민들의 결실을 폭력적으로 부수고 있는 군마현의 이번 철거가 일본 여러 지역에 세워진 조선인 강제동원 추모비에 대한 위협과 파괴의 신호탄이 될 것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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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마현 정부가 강제 철거하기 전 ‘군마의 숲’ 공원에 있던 강제노동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 군마현/김소연 특파원

2004년 4월 일본 시민들이 군마현의 ‘군마의 숲’ 공원에 ‘강제동원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를 세웠다. 비석 앞면에는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라는 문구를 한국어, 일본어, 영어로 적었고, 뒷면엔 “조선인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준 역사의 사실을 깊이 반성하고, 다시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표명한다”는 글을 새겼다. 일본의 식민지배와 전쟁 기간에 군수공장과 광산 등으로 끌려가 숨진 조선인들을 애도하고, 역사의 과오를 반성하고, 한·일 우호를 증진하려는 노력이었다.

일본 군마현 정부가 29일부터 이 비석의 강제철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 2012년 추모제에서 한 참가자가 ‘강제연행’을 언급한 것을 우익단체들이 ‘정치적 행사’라며 문제 삼았고, 당국이 이를 받아들여 설치 연장을 불허했다. 시민들이 비를 지키려고 10년 이상 추도식을 열지 않는 등 애썼는데도, 일본 법원은 설치 연장 불허를 합법으로 인정했고, 군마현은 이를 근거로 철거 명령을 내리고 집행에 나섰다.

배경에는 2010년대 초 아베 정부 시기에 더욱 강해진 우경화 흐름이 있다. 역사의 교훈을 성찰하면서, 한·일의 미래를 지향하려는 시민들의 결실을 폭력적으로 부수고 있는 군마현의 이번 철거가 일본 여러 지역에 세워진 조선인 강제동원 추모비에 대한 위협과 파괴의 신호탄이 될 것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일본 사회에서 철거 반대가 이어지고 있는 데서 희망을 본다. 시민들은 추모비 앞에서 항의집회와 밤샘농성도 했고, 예술가들도 철거 반대를 요구하는 4300여명의 서명지를 모아 군마현에 제출했다. 아사히신문도 30일 사설에서 “전쟁 이전 일본을 미화하는 풍조가 강해지는 가운데 (…) 군마현이 역사 왜곡을 돕는 것일 수도 있다”며 “매우 위험한 사태”라고 지적했다. 군마현 정부는 이제라도 시민들의 양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부끄럽고 위험한 행위를 멈추기 바란다.

답답한 것은 한국 정부의 태도다. 외교부는 “양국 간 우호 관계를 저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해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반응뿐이다. 윤석열 정부는 강제동원 가해 일본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제3자 변제’로 역사 문제를 지워버리고 철저히 무관심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일의 진정한 우호와 협력을 가로막는 우경화에 정부가 더욱 분명하게 목소리를 내고 요구해야 한다. 정부는 추모비를 지키겠다며 나서고 있는 한·일 양국 시민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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