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사진가] 전쟁 참혹함 앵글에 담은 '보도 사진가'…로버트 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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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전쟁 보도 사진가로 꼽히는 로버트 카파는 1913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담은 카파의 사진들은 흔들리고 초점이 맞지 않아 전쟁의 공포를 생생하게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1954년 5월 인도차이나 전쟁을 취재하던 중 지뢰를 밟고 4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이름을 따서 위험을 무릅쓰는 기자정신을 의미하는 '카파이즘'이라는 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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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전쟁 보도 사진가로 꼽히는 로버트 카파는 1913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엔드레 에르뇌 프리드먼.
1932년에는 베를린의 사진가 집단 ‘데 포트’의 암실 조수로 일하던 중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의 연설 장면을 찍으면서 보도 사진에 입문했다.
1935년부터 로버트 카파라는 가명으로 본격적으로 사진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36년 스페인 내전을 취재했다. 한 병사가 머리에 총알을 맞고 죽는 순간을 포착한 ‘왕당파 병사의 죽음’이라는 사진으로 그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라이프’ 잡지 소속으로 2차 세계대전을 취재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담은 카파의 사진들은 흔들리고 초점이 맞지 않아 전쟁의 공포를 생생하게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1954년 5월 인도차이나 전쟁을 취재하던 중 지뢰를 밟고 4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카파의 사진은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사람들과 거리를 좁히면서 그들의 얼굴에 드러나는 감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의 이름을 따서 위험을 무릅쓰는 기자정신을 의미하는 ‘카파이즘’이라는 말이 생겼다.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란 말을 남겼다.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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