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법농단’ 수사가 ‘청부수사’였단 말인가

한겨레 2024. 1. 3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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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사법농단' 사건 수사에 대해 "사실상 대법원의 수사 의뢰로 진행된 사건"이라고 말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최근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에 대해 당시 수사책임자로서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한 말이다.

한 위원장이 '대법원의 수사 의뢰'라고 말한 것은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수사 협조' 발언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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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창밖을 보며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사법농단’ 사건 수사에 대해 “사실상 대법원의 수사 의뢰로 진행된 사건”이라고 말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최근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에 대해 당시 수사책임자로서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한 말이다. 사법농단 수사는 ‘강제동원 재판 거래’와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등 사법 관료들의 재판 독립 침해 의혹을 규명하는 수사로 여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수사로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검찰총장이 됐고, 당시 서울지검 3차장으로 사건을 지휘했던 한 위원장도 크게 주목받았다. 그런데 이제 와선 마치 내키지 않은 수사를 대법원 요청에 의해 억지로 한 것처럼 말하다니, 그럼 검찰이 ‘청부수사’라도 했다는 말인가.

한 위원장이 ‘대법원의 수사 의뢰’라고 말한 것은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수사 협조’ 발언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발언은 ‘수사 의뢰’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김 전 대법원장은 사법농단 사태로 비난 여론이 들끓자, 2018년 6월15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검찰 수사가 진행될 경우, 조사자료를 적법 절차에 따라 제공하고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미 시민단체 등의 고발로 검찰 수사가 임박한 상태에서 대법원의 세차례 자체 진상조사로도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자,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검찰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대법원장의 담화가 발표된 지 3일 만에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 배당하고 법원행정처와 관련자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한동훈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지휘한 수사팀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을 소환 조사하면서, ‘수사에 협조하면 참고인, 안 하면 피의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도 높게 수사했다. 특히 한 위원장은 적극적인 언론 브리핑으로 ‘피의사실 공표’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랬던 한 위원장이 마치 ‘남 일’처럼 얘기하는 건 떳떳하지 못하다.

양 전 대법원장은 법정에서 “검찰 공소장은 한편의 소설” “용을 그리려다 뱀도 그리지 못했다”는 등 검찰 수사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역대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뜨린 잘못에 대한 반성은 전혀 없다. 1심 판결이 ‘사법농단’ 자체를 부정한 게 아닌데도 말이다. 조선일보와 보수 성향 변호사단체는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한다. 한 위원장의 태도가 이런 주장을 염두에 둔 게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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