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난임치료비 지원' 의사들 반발…"안전성 입증 안돼"
한의협 "초저출산·난임부부 외면" 맞서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국가가 한의약 난임 치료 시술비를 지원하는 내용이 담긴 '모자보건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후 후폭풍이 일고 있다. 의사들이 "안전성과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한방 난임 치료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산부인과학회는 30일 서울 용산구 의협 4층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초저출생 시대 난임 부부 지원책이 대폭 확대돼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지만, 한방 난임 치료의 안전성과 효과 입증이 우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한방 난임 치료가 난임 부부에게 적절한 치료 방안이 되려면 안전성과 효과성 등 명확한 과학적 입증이 우선돼야 한다"면서 "비과학적인 한방 난임 치료에 대해 국민의 혈세가 과다 지출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회는 본회의를 통과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철회하고, 한방 난임 치료의 안전성과 효과성에 대한 근거를 엄격히 규명해야 할 것"이라면서 "정부는 이제라도 한방 난임 치료 사업의 시행을 즉각 중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근 의협 상근 부회장은 "보건복지부가 2019년 공모한 한방 난임 임상 연구 결과 100명의 원인불명 난임 여성 중 13%만이 임신에 성공했고, 한의계에서는 이를 한방 난임 치료 사업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입증하는 근거라고 주장한다"면서 "그러나 해외에서도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도 없어 과학적 임상 연구로 볼 수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방 난임 치료는 표준화되지 않은 절차와 처방으로 이뤄져 있다"면서 "각 한의원마다 사용되는 처방의 성분, 복용 기간, 치료 방법 등이 제각각이고, 한방 난임 치료로 주로 사용되는 한약재인 목단피로 인한 자연 유산율이 30%를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또 "복지부는 최소한 기존 연구에 대한 사후 추적 연구나 적절한 대조 평가 등을 거쳐 한방 난임 치료가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는 점을 반드시 소명해야 하고, 난임으로 고통 받는 난임 부부에게 적절한 치료 방법으로 인정되기 전에는 한방 난임 치료 사업의 시행을 중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교웅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한방 난임 치료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할 수 있는 대조군 임상시험 근거가 없다는 사실은 한의대 교수들도 논문(2017년 대한한방부인과학회지)에서 인정하고 있다"면서 "최근 발표된 대만 연구팀의 논문에서도 엄밀하게 설계된 임상 시험이 없어서 한방 난임 치료의 효과는 여전히 불명확하다고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한방 난임 치료 지원 사업이 임신 성공률은 높여주지 못하고 오히려 유산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한방 난임 치료 지원 사업 결과에 대한 논문들을 분석한 결과도 밝혔다.
그는 "2019년 동국대 김동일 교수가 발표한 한방 난임 치료 임상 연구 결과와 2016년 연세대 원주의대 김춘배 교수팀의 보고서를 통해 한약 복용 시기에 따른 유산 및 사산 비율을 비교하면 임신 시기가 복용 후 3개월 이내이면 3개월 이후에 비해 출산 실패율이 3.6배나 됐고, 이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또 "난임 치료에 사용되는 여러 한약재들이 동물 실험에서 유산이나 기형을 일으키는 독성을 나타냈다는 국내외 연구가 있다"면서 "사업기간 종료로 조사하지 않은 임산부들의 출산 성공 여부, 한방 난임 사업으로 태어난 아이들의 현재 신체적, 정신적 건강 상태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추적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한방 난임 치료가 난임부부의 임신율을 높인다는 근거도 부족할 뿐 아니라 오히려 유산의 위험을 높여 모체와 태아의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최영식 연세대 의과 대학 산부인과학교실 교수는 "한방 난임 치료로 인한 유산율은 일반적인 임신 후 유산율에 비해 상당히 높다"면서 "동국대일산한방병원 김동일 교수팀의 연구 결과를 보면 원인 불명 난임으로 진단된 20~44세 여성 100명 중 중도 탈락한 10명을 제외한 90명 중 13명이 임신해 임신율은 14.4%였고, 이 중 6명(46.2%)이 유산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난임 부부를 지원하기 위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늘어나는 것은 환영하지만, 난임 부부가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객관적 연구와 자료 확보, 투명한 공개가 선행돼야 하고 이런 근거가 없는 한방 난임 치료비 지원에 대한 법률안은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지자체 한방 난임 치료 지원 사업의 데이터를 제공받을 수 있다면 한방 난임 치료에 쓰이는 한약의 안전성 규명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는 "초저출산과 난임 부부들의 안타까운 상황을 외면하고 있다"며 "난임 가정을 위해 국가에서 반드시 한방 난임 치료비를 지원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한의협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한방 난임 치료비 지원은 초저출산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존폐가 달린 상황에서 출산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가정을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반드시 지원해야 할 필수 사업"이라면서 "난임부부 역시 96.8% 응답률로 정부 차원의 한방 난임 치료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 역시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 출산의 의지가 있는 국민이 한의약 난임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 저출산 해결에 일조하기 위해 모자보건법을 개정한 것"이라면서 "난임 가족을 지원하는 것은 개인적인 아픔을 치유하는 일이자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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