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태원 참사’ 진상조사 막겠다고 거부권 쓴 윤 대통령

한겨레 2024. 1. 3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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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이태원 특별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더욱 문제인 것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이다.

더욱이 다수 국민의 참사 원인을 밝히자는 특별법안에 거부권을 들이댄 것은 참담한 일이다.

이번 거부권 행사의 책임 역시 윤 대통령이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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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특별법’에 재의요구권을 행사한 30일, 유가족들은 시위에 나섰고, 정부를 대표한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은 피해자·유족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이태원 특별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미리 예고한 대로 국회로 돌려보냈다. 지난 19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한 지 11일 만이다. 국회 재의결이 바람직하지만, 기대하기 어렵다. 법안 발의 단계부터 한사코 반대해온 국민의힘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폐기된다고 봐야 한다.

이 법안의 원래 명칭은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 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이다. 이름 그대로 피해자의 권리 보장, 진상규명, 재발방지를 법제도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취지다. 상식적인 순서는 진상규명이 가장 먼저일 수밖에 없다. 유족이 얼음장 같은 길바닥에서 오체투지까지 해가며 간절히 바란 것도 진상규명이다. 왜 159명이나 되는 시민이, 세계적인 도시라는 서울 한복판에서, 그토록 짧은 시간에 희생됐는지는 여태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 참사의 원인과 책임 소재가 명확히 드러나야 나머지도 논의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일부 조항을 침소봉대하며 법안 자체를 거부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피해 지원 종합대책’이란 걸 들고나온 것도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정확한 진상을 모르는데 배상·지원부터 하겠다니 본말전도 아닌가. 유족의 바람과도 거리가 멀고, 피해자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사실 이 특별법안은 정부가 자초한 것이다. 사건 발생 즉시 엄정하고 철저한 조사가 이뤄졌다면 왜 국회가 나섰겠나. 참사 이후 15개월 동안 검경 등 수사기관은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자세로 일관했다. 진상은 물론 책임져야 할 ‘윗선’도 제대로 밝혀낸 것이 없다. 검찰은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처벌을 미루고 뭉개다 기소심의위원회의 공개 권고를 받고 나서야 마지못해 기소했다. 이런데 누가 수사 결과를 믿겠나.

더욱 문제인 것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이다. 이날 거부권 행사는 횟수로 5번째, 법률안 건수로 9번째라고 한다. 취임 1년8개월여 만에 1987년 민주화 이후 ‘최다 기록 보유자’가 됐다. 역대 대통령이 모두 제한적으로 행사한 권한을 윤 대통령은 마구잡이로 동원하고 있다. 더욱이 다수 국민의 참사 원인을 밝히자는 특별법안에 거부권을 들이댄 것은 참담한 일이다. 정쟁을 핑계대지만, 진상규명 요구를 정쟁으로 몰고 간 것은 정부·여당 책임이 절대적이다. “비정한 대통령”이라는 유족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나. 이번 거부권 행사의 책임 역시 윤 대통령이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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