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깡’으로 삭발된 채 구조된 딸…겨우 7년이라니” 울분

정윤경 기자 2024. 1. 3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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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강간 등 공소 사실 전부 유죄…징역 7년 선고”
피해자 변호사 “검찰의 양형 부당, 즉각 항소 계획”

(시사저널=정윤경 기자)

'바리깡 사건' 피해자 박수정(가명·20대 초반)씨가 피고인 김아무개(26·구속 기소)씨로부터 바리깡으로 머리카락을 잘린 모습 ⓒ박씨 가족 제공

"아빠 살려줘요. 연락 못 해요."

"엄마 빨리 와. 오면 내 몸 확인해야 해."

교제하던 여성의 머리를 바리깡으로 밀고 강간한 '바리깡 사건' 피해자와 가족은 지난해 7월11일을 잊지 못한다. 피해자 박수정(가명·20대 초반)씨 아버지 박승욱(가명·50대)씨는 30일 시사저널과 만나 "딸에게 '살려달라'는 문자를 받고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날부터 우리 가족의 삶은 완전히 부서졌다"며 그날의 악몽을 되새김질 했다. 

'바리깡 사건'은 지난해 7월 경기도 구리시의 한 오피스텔에서 김아무개(26·구속 기소)씨가 여자친구인 수정씨를 4박 5일간 감금하고 폭행, 강간 등을 저지른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수정씨의 머리카락을 '바리깡'으로 자르고, 얼굴에 소변을 보고 침을 뱉는 등 엽기적인 행각을 저질렀다. 또 수정씨를 알몸 상태로 만들고 무릎을 꿇려 불법 촬영을 하는 등의 범행도 일삼았다.

이날부터 수정씨 가족의 일상은 완전히 망가졌다. 수정씨 어머니는 '30분 안에 와야 해'라는 딸의 문자를 받고 급히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폐차에 이를 만큼 큰 사고였지만, 딸의 재판에 전념하느라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했다. 수정씨 아버지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단기직으로 일하면서 딸을 간호하고 있다. 피해자인 수정씨는 현재 정신적인 고통이 극심해 폐쇄병동에 입원해있다. 그날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아 환청·환시에 시달리고 수면제 없이는 잠들 수 없다.

'바리깡 사건' 피해자 박수정(가명·20대 초반)씨가 어머니(왼쪽)와 아버지(오른쪽)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박씨 가족 제공

"7년이면 겨우 30대…보복범죄 두려워"

수정씨 부모님은 이날 바리깡 사건의 1심 선고를 지켜보기 위해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으로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방청석 가장 앞줄에 앉은 박씨 부부는 굳은 표정으로 재판부의 판결을 기다렸다. 잠시 뒤 녹색 수의 차림의 김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장 180㎝에 이르는 김씨는 덥수룩한 머리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재판부를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판사가 판결문을 읽어내려 가자 수정씨 어머니는 두 눈을 감고 고개를 떨궜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피고인이 자신과 가족, 반려견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한 채 피고인의 요구에 응해온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는 이 사건으로 인하여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현재까지도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피고인이 자신과 가족들에게 보복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폭행과 성관계가 합의에 의한 것이라는 피고인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인의 모든 주장과 제출한 모든 증거에 의하더라도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고 일축했다. 김씨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수정씨 어머니는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방청석에 있던 수정씨 고모, 박씨 부부 지인 등도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판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특수협박, 감금, 폭행 등 김씨의 공소사실을 전부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씨에게 징역 7년에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80시간 이수, 아동·청소년·장애인 관련 기관 5년간 취업 제한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범죄 전력이 없고, 피해자를 위해 1억5000만원을 공탁했지만 피해자가 받아들이지 않은 점 등을 양형에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바리깡 사건' 피고인 김아무개(26·구속 기소)씨가 피해자 박수정(가명·20대 초반)씨에게 작성을 지시한 메모 내용 ⓒ박씨 가족 제공

재판이 끝난 뒤 부축을 받으며 가까스로 법정을 빠져 나온 수정씨 어머니는 털썩 주저앉아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수정씨 아버지는 "7개 혐의를 전부 유죄로 인정해 준 재판부에 감사하다"면서도 "피해자 가족 입장에서는 형량에 만족할 수 없다"고 입을 뗐다. 그는 "김씨는 우리집 주소, 주차장 등 개인정보를 아주 상세하게 알고 있다"며 "7년형을 받고 출소하면 고작 30대인데 보복범죄라도 할까 봐 두렵다"고 토로했다.

이어 김씨가 법원에 공탁금을 내고 반성문을 제출한 것도 참작 사유로 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방청석을 향해 단 한 번도 사죄의 의미로 고개를 숙이지 않았고, 재판부가 아닌 피해자 측에 반성의 뜻을 전한 적도 없다"며 "1억이든 10억이든 합의금으로 한 푼도 받을 생각이 없다. 돈으로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피해자 측 변호사인 조윤희·마태영 변호사는 "피해자가 합의를 원하지 않는 상황을 피고인이 알고 있으면서 선고 기일 직전에 공탁한 것은 본인의 감형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추가적인 고통을 주는 것"이라며 "피해자 변호사들은 피해자와 가족 뜻에 따라 검찰의 양형 부당을 이유로 즉각적으로 항소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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