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과학적” vs “의사 패권주의” 한방난임지원 두고 양·한방 격돌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2024. 1. 3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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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보건법 일부개정 법률안' 9일 국회 본회의 통과
의협·산부인과학회 '모자보건법 일부개정안' 철회 촉구
“임신성공률 낮고 되려 유산율 높아···안전성 우려” 제기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산부인과학회는 30일 서울 이촌동 의협 회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지 않은 한방 난임치료지원법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사진 제공=대한의사협회
[서울경제]

정부가 전 세계 유례 없는 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는 가운데 최근 국회를 통과한 '모자보건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놓고 양·한방 갈등이 극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산부인과학회는 30일 서울 이촌동 의협 회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9일 국회 본 회의를 통과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하다며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보건복지부가 6억 2000만 원 상당의 연구비를 들여 시행한 연구에서조차 한방 난임 치료의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했으며, 안전성을 담보하기도 힘들어 공적 자금을 투입해선 안된다는 게 이들 단체의 주장이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보조생식술위원회는 이날 행사에서 "한방난임치료지원법의 국회 통과는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모체와 태아의 건강에 대한 안정성을 무시한 판단"이라며 "해당 법률안의 통과를 반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복지부가 2019년 한방난임치료의 근거 확보를 위해 동국대일산한방병원·강동경희대병원·원광대광주한방병원에 의뢰해 진행한 연구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비판했다. 한방난임치료의 효과를 비교해야 할 대조군(자연임신 시도군) 자체가 없어 연구 설계부터 잘못됐으며, 치료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20~44세 여성 1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7개월간 실제 참여자 90명 중 13명이 임신했고, 그 중 7명이 출산했다. 이를 임신율로 환산하면 14.4%, 출산율은 절반 수준인 7.8%다. 최 교수는 "해당 연구의 학술지 등재를 검토한 영국의 의료통계학자 잭 윌킨슨은 개인 SNS에서 '과학이 아니다'라고 공개 저격했다"며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의미 없는 연구 결과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한방난임치료를 통한 임신율을 단순 계산하면 1개월당 2%로 1년 이상 원인불명 난임으로 진단된 부부에서 기대할 수 있는 자연임신율 2~4%와 큰 차이가 없다"며 "되려 절반에 가까운 6명이 유산한 것은 일반적인 임신 후 유산율에 비해 높은 수치다. 한방 난임 치료가 유산의 위험을 높임으로써 산모와 태아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도 꼬집었다. 한약재가 포함한 성분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미국의학협회지(JAMA)에서도 납·수은·비소 등 중금속 오염이 보고된 사례가 있어 사용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최 교수는 "정부와 국회는 지금이라도 한방 치료의 안전성을 객관적으로 규명하고 국민 누구나 알 수 있게 공개해야 한다. 이후 비용대비 편익을 분석하고 효용에 따라 적절한 치료 적응증을 명시해야 할 것"이라며 "국민의 세금이 근거없이 무분별하게 남용되는 것을 막고 난임부부가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만을 제공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 하라"고 촉구했다. 이중엽 함춘여성의원장도 "일반적으로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임신 후 8~10주 사이에 약을 먹고 유산 위험이 높았다면 개연성이 있다고 의심할 여지가 충분하다"며 "의학적인 근거가 불충분한 상황에서 법으로 이를 밀어붙이는 것은 국민 안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달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모자보건법 일부 개정안은 한의약육성법 제2조 제1호에 따라 한방의료를 통해 난임을 치료하는 한방난임치료비를 국가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기존에도 인천 등 일부 지자체가 조례를 통해 한방난임치료를 지원하고 있었는데,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할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의협은 국회와 복지부에 객관적인 자료 제공을 요청하는 한편, 각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과 만나 한방난임치료의 위험성을 알리고 지원 확산을 막겠다고 예고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이날 오후 즉각 입장문을 내고 "국회의 입법 활동마저도 방해하고 비난하는 것은 의사만이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안하무인의 '의사 패권주의'"라며 응수했다. 한의약 난임 치료는 10여 년 넘게 지자체의 수많은 사업을 통해 효과가 검증됐으며, 난임부부의 96.8%가 한방난임치료에 대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는 게 한의협의 논리다. 이들은 "합계 출산율 0.7명대가 붕괴 직전에 놓인 상황에서 극단적 직역 이기주의의 행태로 딴지를 놓고 방해하는 일부 양의사 단체의 행태는 국민의 아픔과 대한민국의 미래마저도 오직 자신의 눈앞에 놓인 밥그릇으로만 보는 이기적이고 편협한 시선"이라며 ""한의약 난임 치료를 폄훼하기 전에 국정감사에서도 문제가 된 임신 성공률 0% 의료기관들에 대해 자성하고 반성하는 기회를 가지기 바란다"고 전했다.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realglass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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