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문제 '오프쇼어링'… 伊, 알바니아로 떠넘기고 "알 바 아냐"

진영태 기자(zin@mk.co.kr) 2024. 1. 3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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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장벽 높이는 유럽 주요국
"난민, 알바니아서 심사받아라"
伊, 거액 투입해 이민청 설립
알바니아 헌재도 "합헌" 결정
英도 르완다로 난민 보내기로

이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영국과 이탈리아가 논란의 난민 '오프쇼어링' 정책을 실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주민들의 인권, 안전 문제 등 논란에도 불구하고 각각 르완다와 알바니아에 망명 심사 기관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법원과 국회 동의를 얻는 데 성공했다. 인권단체들은 선진국이 이민을 막기 위해 개발도상국에 돈을 주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2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알바니아 헌법재판소가 이탈리아 이주민을 대신 수용하는 정부 정책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주민에 반대한 알바니아 야당은 이주민 수용시설 법적 관할권을 이탈리아가 보유하는 것은 영토 보전을 규정한 헌법에 위배된다고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날 알바니아 헌재에서 재판관 중 과반수(9인 중 5명)가 합헌 결정을 내렸고, 국회는 곧바로 이탈리아·알바니아 간 이주민 협정 비준에 들어갔다. 이탈리아 하원은 지난 24일 비준안을 통과시켰고, 상원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이민 신청자가 이탈리아에 도착해도 배를 타고 알바니아로 가서 심사를 받는 상황이 연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알바니아 야당의 반대는 새 정책 시행을 약 한 달 늦추는 데 그쳤다.

이탈리아는 지난해 11월 관련 협정에 따라 알바니아 서북부 슈엔진 항구 일대에 2곳의 이주민 시설을 착공할 방침이다. 이탈리아는 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오는 이민·난민 신청자 연간 3만6000여 명을 알바니아로 보낼 계획이다. 이탈리아는 알바니아에 지원금을 주고, 알바니아의 유럽연합(EU) 가입을 지원하기로 했다.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우파 정부는 지난해 이탈리아에 도착한 불법 이민자가 15만5750명을 넘어서며 전년 대비 50% 이상 증가하자 이민자 단속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이탈리아는 알바니아 이민센터에 대해 비용 부담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알바니아는 발칸반도에 위치한 작은 산악 국가로, 수 세기 동안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아 이슬람교인이 50% 이상인 나라다. 특히 1992년 공산주의 통치를 종식시킨 뒤에는 정정 불안과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면서 많은 알바니아인이 일자리를 찾아 유럽 각국으로 떠났다. 이들이 본국으로 송금하는 임금이 국가의 주요 수입원이 될 정도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는 올해 이민센터 설립 대가로 알바니아에 1650만유로를 지불하고, 약 5300만유로 규모로 예상되는 이민센터 건설·운영 비용을 부담할 전망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도 각종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합의안을 환영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해 12월 EU 지도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 합의안은 중요한 이니셔티브"라며 "제3국과 공정한 책임 분담의 원칙에 기초한 획기적인 사례"라고 밝혔다.

영국도 이주민 심사를 무려 6500㎞ 떨어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하는 정책 실행을 목전에 두고 있다.

영국의 르완다 이민법은 일단 체류를 허용한 뒤 심사하는 과정을 무시하고, 망명 신청이 허용된 이주 신청자도 르완다로 보낸다는 정책이다. 영국 대법원이 지난해 11월 "르완다는 영국법이 규정하는 인도주의적으로 '안전한 나라'가 아니므로 다른 법과 상충해 무효"라고 판결하며 정책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르완다 이민법에만 국내법 예외를 적용해 국회 표결에 올렸다. 영국 하원은 지난 17일 해당 안건을 통과시켰으며, 상원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타임에 따르면 르완다 법안에 대해 여당인 보수당 내부에서도 '너무 지나친 조치'라거나 '영국이 선출된 독재 국가로 향하는 법안'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수낵 총리는 지난해 르완다와 협상을 위해 이미 3억달러의 지원금을 전달하는 등 올해 있을 선거를 앞두고 이민정책의 오프쇼어링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영국과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점점 이민정책에서 강경 노선을 택하고 있는 유럽은 이민·난민 거부를 위한 새로운 정책을 내놓고 있다. 독일을 포함한 다른 EU 국가들도 유사한 협정의 타당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6월 EU 선거를 앞두고 각국에서 반이민주의를 앞세운 우파 정당들이 득세함에 따라 이민 '오프쇼어링'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서유럽으로 밀려든 이민자들은 경제난과 폭력 사태 등을 겪고 있는 발칸반도나 아프리카 대륙으로 재배치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진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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