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이탈리아의 대규모 투자 계획에 “우리는 거지가 아니다”
무사 파키 마하마트 아프리카연합(AU) 집행위원장이 이탈리아가 대규모 이민 억제 목적으로 마련한 아프리카 투자 계획을 발표하자 “우리는 거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가디언은 파키 위원장이 29일(현지시간) 로마에서 열린 이탈리아·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에게 이같이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정상회의에는 아프리카 대륙 45개국의 정상 또는 대표가 참석했다. 멜로니 총리는 이 자리에서 아프리카 대륙에 55억유로(약 8조원)를 투자하겠다는 ‘마테이 계획’을 발표했다. 대규모 투자 계획이 발표되는 외교무대에서 날선 한 마디를 던진 것이다.
‘마테이’는 이탈리아 국영 에너지 기업 초대 회장인 엔리코 마테이의 이름에서 따왔다. 아프리카 대륙을 착취하지 않고 공동번영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취지를 담았다. 아프리카가 러시아를 대신해 유럽의 주요 에너지 공급국이 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로 구성돼 있으며, 이탈리아가 유럽의 새로운 에너지 허브로 거듭나겠다는 구상도 담겨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이민 물결의 교두보에 해당하는 이탈리아는 아프리카에 일자리를 창출하고 젊은이들이 지중해를 건너 위험한 이주를 하는 것을 막을 안보 및 경제적 조건을 조성하는 방법으로 개발 계획을 추진해 왔다.
멜로니 총리는 정상회의 개회사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거부되어 온 젊은 세대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아프리카 에너지를 해방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 자기 고향을 포기하게 만드는 원인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대량 불법 이민은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며 인신매매범(불법이민 브로커)들은 절대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며 “인신매매범들과 전쟁을 선포하는 한편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기회, 일자리, 훈련, 합법적 이민으로 구성된 대안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파키 위원장은 “이탈리아와의 관계 강화를 환영하지만 (발표에 앞서 내용이) 사전에 논의됐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말로만 하는 약속이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8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한 데 대한 불만을 반영한 것이다. 그는 “우리는 거지가 아니다”라며 “패러다임의 전환에는 더 공정하고 일관성 있는 세계로 가는 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멜로니 총리 역시 “(마테이 계획은) 평등한 관계에서의 협력을 기반으로 할 것”이라며 “아프리카에 대한 약탈이나 자선과는 거리가 멀다”고 강조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도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가디언은 이번 정상회의는 유럽이 이탈리아를 내세워 아프리카와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라파엘레 마르체티 루이스대학 교수는 이탈리아가 아프리카에서 ‘약탈적이지 않은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국가’로 간주된다고 가디언에 전했다. 프랑스나 독일처럼 아프리카에 대대적 식민지를 경영하지 않았던 역사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이 여전히 경제 지원을 미끼로 아프리카나 동유럽 등 인접한 비EU 지역을 편의적으로 활용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영국 정부가 지난해 4월 르완다 정부와 협약을 맺고 경제지원을 하는 대신 난민 신청자를 르완다로 보내서 난민 심사를 받게 한다는 계획을 내놓았으나 유럽인권재판소의 개입과 영국 대법원 판결로 제동이 걸린 것이 단적인 사례이다.
이탈리아 역시 발칸반도 국가 알바니아에 최대 3만6000건의 망명 신청 처리를 아웃소싱한다는 협정을 맺었다. 이탈리아 헌재는 이날 협약에 대해 합헌 결정을 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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