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속지 않기] 尹사진 새겨진 명함이 서랍에 들어간 까닭

2024. 1. 30.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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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전직 의원인 A씨.

그는 얼마 전에 미리 만들었던 총선용 명함을 서랍에 넣어두고 대신 새 명함을 준비했다.

열흘 전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간의 당정 충돌이 벌어졌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아닌 한 위원장을 전면에 내세워 총선을 치러야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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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속지 않기]尹사진 새겨진 명함이 서랍에 들어간 까닭

이상훈 MBN 앵커

국민의힘 전직 의원인 A씨. 그는 얼마 전에 미리 만들었던 총선용 명함을 서랍에 넣어두고 대신 새 명함을 준비했다. ‘사용 보류’된 명함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이 새겨져 있다. 새 명함에는 본인 사진만 있다. 명함을 바꾼 이유에 대해 A 전 의원은 “지지율이나 (김건희) 여사 문제를 감안하면 명함 내밀기가 좀....”이라고 말을 흐렸다.

열흘 전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간의 당정 충돌이 벌어졌다. 대통령실에서 한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했는데 거절했다는 게 핵심. 예상하지 못한 충돌에 여당 사람들은 당황했다. 당시 친윤(윤석열)으로 꼽히는 인사, 친한(한동훈)으로 꼽히시는 인사는 물론 국민의힘의 ‘보통’ 정치인까지도 말을 아끼고 아꼈다. “입장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태반이 “1인자와 2인자가 충돌했는데, 우리가 뭐라고 말을 하겠느냐.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함께 창밖을 내다보며 대화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한 위원장과 윤재옥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투톱’을 대통령실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하며 최근 불거진 당정 갈등을 사실상 봉합했다. [사진 = 대통령실]
최근엔 윤 대통령과 한 비대위원장 사진 가운데 누구를 내걸어야하는지 당에 문의하는 출마자가 있다는 말도 들린다.

한국갤럽이 조사(23~25일, 1001명 자체 조사)한 거대 양당 대표의 지지율(당대표 역할에 대한 긍정 평가 비율)에서 한동훈 위원장이 52%를 받아 35%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압도했다. 이 수치는 이준석 전 대표 시절보다 높고, 성공한 비대위로 평가받은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2012년 3월에 받았던 긍정 평가 비율과 유사하다.

이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31%, 국민의힘의 정당 지지율은 36%였다. 지지율 혹은 긍정평가에서 한 위원장이 가장 높고, 다음이 여당 지지율이며, 그 뒤가 대통령 지지율이다.

선거에 이기려면 텃밭을 굳건히 지키면서도 표밭을 넓혀야 한다. 이념 스펙트럼에서 가운데 표를 더 많이 얻은 쪽이 이긴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대한 중도층 지지율은 각각 25%와 26%다. 그런데 한 위원장에 대한 중도층의 긍정평가는 45%, 부정평가는 43%다.

의미하는 바가 많다. 첫째 긍정이 부정을 앞질렀다. 최근 몇해 동안 국민의힘 소속 리더로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다. 둘째 한 위원장은 증도층으로부터 윤 대통령이나 국민의힘과는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셋째 국민의힘 지지층의 한 위원장 긍정 평가는 89%다. 여당 지지층의 윤 대통령 지지율(70%)을 넘어선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이 지난 18일 총선 1호 공약으로 저출생 대책 ‘일·가족 모두행복’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그러나 소수의 정규직 일자리를 얻기 위해 청년들이 사투를 벌여야 하는 노동시장을 개혁하지 않고는 백약이 무효일 것이다. [사진 출처=연합뉴스]
이쯤되면 국민의힘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한동훈의 얼굴로 총선을 치를 수밖에 없다는 것.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에 한 위원장이 단박에 거절한 것도, 앞서 두 명의 전직 대표가 임기도 못마치고 물러날 때와는 달리 이번엔 친윤 의원들이 연판장을 돌리거나 성명을 내면서 들고 일어나는 모습이 없었던 것, 당정 충돌이 서둘러서 봉합된 것 등은 모두 이 때문일 거다.

국민의힘은 총선을 이겨야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국회 권력까지 장악해야 일을 제대로 해서 성공한 정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아닌 한 위원장을 전면에 내세워 총선을 치러야하는 상황이다. 총선 승리가 가장 절실한 건 대통령인데 그 대통령이 아닌 다른 인물을 내세워서 총선을 치러야하는 게 지금 여당이다.

총선 후보들이 명함과 SNS 프로필에 누구와 찍은 사진을 넣을지 고민하는 건 이런 묘한 상황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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