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이태원특별법 거부권 행사···野 "국민·역사에 죄 지었다"
정부, 참사피해지원위원회 만들고
희생자 영구추모시설도 건립 계획
與 "법 정합성 필요" 재협상 촉구
野는 "유가족 모욕 멈춰라" 반발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 보장과 진상 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 거부권(재의 요구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 이후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 법안 수로는 아홉 건째다. 야당은 즉각 “윤 대통령이 국민과 역사 앞에 죄를 지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올해 초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 관련 특검 도입 법안)’에 이어 한 달도 안돼 윤 대통령이 또다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총선을 70일 앞두고 여야의 대치 정국은 한층 극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실은 이날 “윤 대통령이 오전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 요구안을 재가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1년 8개월 동안 다섯 번에 걸쳐 총 아홉 개의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올해 들어서는 이달 5일 ‘쌍특검법’에 이은 두 번째 거부권 행사다. 재의 요구 시한인 다음 달 3일을 앞두고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함에 따라 정부는 해당 법안을 국회로 돌려보내 재의결을 요구하게 된다.
이달 9일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이태원특별법은 19일 정부로 이송됐다. 국회 통과 기준으로 총 21일이 걸렸다. 거부권 행사까지 걸린 시간으로는 최장 기간이다. 윤 대통령은 해당 법안에 대한 여러 의견을 청취한 뒤 고심했다는 분석이다. 이태원 특별법이 이중 수사 가능성을 내포하고 특별조사위원회에 특검에 준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등 위헌적 요소가 있지만 이태원 참사 피해자와 유가족을 외면하는 것처럼 읽힐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재의 요구안을 의결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그동안 검경 수사 결과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명확한 근거도 없이 특조위를 설치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국가 행정력과 재원을 소모하고 국민 분열과 불신만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신 정부는 유가족과의 협의를 거쳐 피해 지원 종합 대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국무총리 소속으로 ‘10·29 참사 피해 지원 위원회(가칭)’를 구성할 계획이다. 참사 이후 생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피해자를 위한 지원금과 함께 의료비 및 간병비 등도 확대 지원하기로 했다. 아울러 희생자에 대한 영구 추모 시설도 건립할 방침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태원 특별법에 대한 재협상을 민주당에 거듭 촉구하고 나섰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우리 당은 그 법 자체를 반대한다기보다는 이태원 참사를 통해 교훈을 얻고 피해자를 구할 더 나은 방안을 제시하려는 단계였다”며 “그 법은 국회의장이 중재했던 내용보다 훨씬 더 과격한 내용으로 민주당이 통과시켰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도 민주당과의 협상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한 위원장은 “법을 그대로 시행해 국민의 예정된 갈등을 뻔히 보는 것보다 정합성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며 “민주당과 협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도 “민주당이 재협상에 응해서 공정성이 담보되고 전례 없던 독소 조항이 제거된다면 여야 간에 합의 처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유가족에 대한 모욕을 멈추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날 오후 서울시청 앞에 마련된 합동 분향소를 찾아 유가족과 면담한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현장에도 오지 않은 채 유가족의 손 한 번 잡아주지 않고 기어코 거부권을 행사했다”며 “참 비정한 정권”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유가족의 요구는 사건 당일의 진실을 알고 당사자에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라며 “정부는 유가족이 마치 돈과 배상을 원하는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다시 국회의 시간으로 가게 됐다”며 “재의결 때 꼭 특별법이 다시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호소했다. 박주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도 “윤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로 국민과 역사에 죄를 지었다”며 “위임된 권력을 함부로 행사한 오늘을 반드시 기억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태규 기자 classic@sedaily.com김현상 기자 kim0123@sedaily.com유정균 기자 even@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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