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선수에겐 설날인데"…KIA, 감독 없이 무거운 호주행(종합)
(영종도·광주=연합뉴스) 하남직 홍규빈 천정인 기자 = 프로야구 선수단에 스프링캠프 훈련장을 향해 출국하는 날은 '설날'과도 같다.
코치진과 선수, 구단 관계자 모두 걱정보다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2024년 스프링캠프를 차린 호주 캔버라로 떠나는 KIA 타이거즈 선수단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광주에서 출발해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으로 나서는 순간까지 KIA 선수단은 웃지 못했다.
올 시즌에도 KIA 선수단을 이끌 예정이었던 김종국 전 KIA 감독은 이날 인천국제공항이 아닌, 서울중앙지법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종국 전 감독은 구단 후원사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30일 오전 유창훈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신문(영장 심사)에 출석한 김종국 전 감독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선수에게 뒷돈을 요구해 작년 3월 해임된 장정석 전 KIA 단장도 영장 심사에 출석했다.
KIA는 스프링캠프 출국을 하루 앞둔 지난 29일 김종국 전 감독과의 계약을 해지했다.
불미스러운 일로 수장을 잃은 채 스프링캠프를 시작하는 KIA 선수들은 예전처럼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광주에서도, 인천국제공항에서도 선수들은 굳은 표정으로 짐을 챙겼다.
이날 오전 광주 북구 KIA 챔피언스필드에 집결한 선수들은 전지훈련지인 호주행 비행기에 실을 훈련 장비를 옮기기 위해 분주했다.
양손 가득 짐을 나르며 서로 가벼운 대화를 나누기도 했으나 스프링캠프를 앞둔 선수단의 밝은 분위기는 느낄 수 없었다.
취재진의 관심이 부담스러운 듯 일부 선수들은 짐을 옮기는 어수선한 상황을 틈타 주 출입구가 아닌 별도의 출입구를 통해 서둘러 구단 버스에 탑승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심재학 KIA 단장도 이들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기만 할 뿐 별다른 언급은 하지 않았다.
다만 구단 버스에 탑승하기 직전 격려하는 악수 정도만 나눴다.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뒤에도 KIA 선수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올 시즌 KIA 주장 나성범과 타이거즈의 상징 양현종이 동료를 위해 취재진 앞에 섰다.
나성범은 "스프링캠프는 한 시즌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출발점이다. 프로야구 선수에게는 '설날'이어서, 예전에는 웃으며 서로를 반겼다"며 "오늘도 선수단 분위기가 너무 처지지 않게 하고 싶지만, 분위기가 무거운 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양현종은 "광주에서 출발할 때 단장님이 선수들에게 '이런 분위기에서 떠나게 해 미안하다'고 하셨다.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난감해했다.
KIA 팬들은 김종국 전 감독에게 크게 실망했다.
하지만, 선수들을 향한 애정은 전혀 줄지 않았다.
팬 10여명은 챔피언스필드를 찾아와 전지훈련을 떠나는 선수들을 배웅했다.
각자 좋아하는 선수의 모습을 사진 찍거나 유니폼에 사인을 요청하는 등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대학생 김모(27) 씨는 "김 감독 사건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전지훈련을 잘 소화해서 이번 시즌에 좋은 성적으로 팬들에게 보답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천국제공항에도 수십 명의 팬이 KIA 선수들을 찾아 응원했다.
선물을 전하는 팬도 "다치지 말고 오라"고 애정 어린 당부를 하는 팬들도 있었다.
선수들은 팬들을 위해서라도 훈련에 집중할 생각이다.
나성범은 "미팅에서 '동요하지 말자. 우리가 준비한 대로 훈련하자'고 했다"며 "우리를 응원해주는 팬이 계시고, 올 시즌 우리 전력을 높게 평가하는 분도 많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열심히 훈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양현종은 "후배들이 눈치 보거나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올 시즌 우리의 목표를 떠올리며, 훈련에 집중했으면 한다"고 바랐다.
타 구단 코칭스태프와 선수들도 김종국 전 감독이 검찰 조사를 받는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논평은 삼갔다.
구단 관계자들만 "후원사로부터 감독이 돈을 받는다는 건, 정말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라며 "후원 기업은 구단에 '매우 중요한 손님'이다. 혐의가 사실이라면, 어떤 걸 요구하며 돈을 건넸는지 정말 궁금하다"고 의아해했다.
KIA와 달리 다른 5개 구단은 2024시즌 도약을 다짐하며, 30일 출국장으로 나섰다.
이날 한화 이글스, SSG 랜더스, 삼성 라이온즈, NC 다이노스, LG 트윈스가 KIA에 앞서서 스프링캠프 훈련장으로 떠났다.
29일에는 두산 베어스와 키움 히어로즈가 출국했다.
'우승 청부사' 김태형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긴 롯데 자이언츠는 31일 괌으로 떠난다.
kt wiz는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국내(부산 기장)에 1차 스프링캠프를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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