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책은 콘텐츠 플랫폼”…25년 ‘잡지인생 3막’ 여는 한기호

양선아 기자 2024. 1. 3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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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산업 격주간 잡지 ‘기획회의’ 25년째 발행
공공성·현장성으로 호평…“꼭 필요한 책 낼 것”
한기호 ‘기획회의’, ‘학교도서관저널’ 발행인 겸 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이 30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600호까지 발행해온 ‘기획회의’는 1000호까지 낼 계획입니다. 지난해 하반기 매출이 전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난 ‘학교도서관저널’은 ‘트랜스미디어’ 전략으로 앞으로 더 성장할 것입니다.”

‘잡지의 무덤’이 늘고 있는 시기에, 잡지 두 개를 꾸준히 발행하고 앞으로도 잡지를 계속 발행하겠다며 큰소리 떵떵 치는 사람이 있다. 격주 출판전문지 ‘기획회의’를 25년, 도서관 잡지 ‘학교도서관저널’을 14년 동안 발행해온 한기호(66)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이다. 최근 25년의 ‘잡지 인생’을 담은 ‘잡지, 기록전쟁’(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이라는 책을 펴낸 한 소장을 3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에서 만났다.

“‘팔리는 책’이 아니라 ‘꼭 필요한 책’을 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두 잡지 모두 시대적 소명이 뚜렷한 잡지들이지요.”

한 소장은 두 잡지가 꾸준히 나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공공성’과 ‘현장성’에 있다고 말한다. ‘기획회의’는 단순한 서평지가 아니라 출판의 역사를 기록하는 산업지이고, ‘학교도서관저널’은 교육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출판계 사람들에게 ‘기획회의’의 장점에 관해 물어봐도 한결같이 ‘현장성’을 언급한다. 한미화 출판평론가는 “2000년대가 시작되고 사회가 급변하던 시기에 ‘밀리언셀러’가 많이 나왔고 출판 담론도 많아졌다. 당시 ‘기획회의’에서는 내로라하는 출판인들이 글을 썼고, 그 글들이 관련 종사자에게 파급력이 컸다”고 전했다. ‘기획회의’는 여전히 편집자나 기획자의 가려운 곳을 잘 긁어준다. 최근 발행된 600호만 봐도 출판계에서 마케팅에 대한 관심이 늘자, 최근 마케팅 성공 사례를 찾고 젊은 마케터들의 경험을 생생하게 담았다.

‘기획회의’ 500호 발행 뒤 폐간할 생각도 했다. 그러나 주변에서 다들 말렸고 도움도 주었다. 한 소장은 “‘기획회의’는 500호 이후부터는 편집자와 편집위원들에게 전권을 위임했고, ‘학교도서관저널’도 추천위원 70여명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일체 간섭하지 않았다”며 “일하는 사람들에게 결정권을 넘겨주고 그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든 것도 잡지가 버티는 이유”라고 밝혔다.

최근 일본을 직접 방문해 일본 출판계의 흐름을 파악하고 온 그는 게임·애니메이션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한 고단샤 등 일본 3대 출판사 사례를 들며 ‘새로운 발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책은 이제 하나의 플랫폼이고, 이를 웹·모바일·영상·게임·애니메이션 등과 연결하는 ‘트랜스미디어’ 전략이 필요합니다. 고단샤 등 일본 3대 메이저 출판사는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을 책으로 유입시키기 위한 입구로 생각하고 있더군요.”

지난해 일본에서 연간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쇼가쿠칸의 ‘대핀치도감’은 아이가 세상에서 만나는 다양한 위기를 재미있게 소개하는 책이다. 쇼가쿠칸 누리집 갈무리

한 소장에 따르면, 일본에서 지난해 베스트셀러 1위는 ‘대핀치도감’으로 125만부가 팔렸다. 한 소장은 “일본의 3대 출판사 중 하나인 쇼가쿠칸은 예술(아트), 음악, 인체 도감 등을 계속 내놓고 있는데, 음악 도감이면 300개의 악기가 소개되고 큐알(QR) 코드를 찍고 들어가면 최상의 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영상이 제공되는 식”이라며 “아날로그 종이책을 플랫폼으로 여기고 디지털기술을 마음껏 활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외에도 잡지 ‘주간 소년점프’로 유명한 일본 슈에이샤 출판사도 연재 만화 ‘원피스’ ‘킹덤’ 등이 단행본은 물론이고 애니메이션을 통해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고 전했다. 이처럼 ‘트랜스미디어’ 전략이 살길이라고 보는 그는 오는 3월 김동식 작가가 초등학생을 겨냥해 쓴 소설 3권이 나오면 이를 웹툰, 영상으로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60대 중반의 나이에도 출판에 대한 열정은 청년 못지 않은 그는 “내게 출판은 나를 구하고, 나라를 구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잡지 인생 25년’ 동안 매일 새벽 2~3시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써왔다는 그는 앞으로도 “책에서 길을 찾겠다”며 웃는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고,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그는 이제 ‘인생 3막’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출판의 근본정신은 변하지 않겠지만 책의 정의나 출판의 시스템은 급격하게 변할 것입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종합예술로서의 책도 꾸준히 등장할 것이고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저도 좌충우돌하겠지만 인생이 더 재밌을 것 같아요. 출판에 열정이 있고 재밌게 일하며 성장하는 직원들과 함께 ‘3막 인생’을 의미있고 재밌게 보낼 생각입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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